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유수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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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제목 때문에. 현재 스물 세 살의 5월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 제목이 주는 느낌은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뭔가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 기로에서 몹시도 망설이는 스물 세 살에, 스물 세 살의 선택이 성공적이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일렬로 맞춰 살아간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조목조목 공감가지 않는 글이 없었다. 저자가 스물 세 살에 느꼈던 현실이, 내가 생각하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물 세 살 여대생일 적부터 잘 나가는 영어강사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구비구비의 이야기에서 배울만한 것들이 많았다. 힘든 환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해 언어를 배우고 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환상을 갖고 있는 유학 생활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한국식 영어공부의 허점과 대안 등 실로 '건질 것' 이 많은 책이다. 무척 솔직히 적어내려간 글이라 글쓴이의 인간적 매력을 한껏 느끼는 재미도 있다.

글쓴이처럼 앞뒤 안재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어느 정도의 모험심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종의 도박을 하던지, 안하던지 간에 때로는 현실에 치여 무력해지는 우리에게 정말로 젊다는 게 무엇인지, 도전의 가치가 무엇인지 이 책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떠나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만하면 충분한 '인생선배'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전국의 스물 세살들이여. 이 책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젊은 시절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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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손석춘 / 개마고원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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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문이 내 삶에 들어왔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그 전엔, 논술엔 사설이 좋다기에 무슨 쓴 약을 먹듯 사설을 읽었고, 심심풀이로 신문을 뒤척였다. 원래 책은 좋아했으니까 종이에 글씨 박힌 신문이 싫지 않은 정도였달까. 1학년 때 수업 중에 기사를 써보는 시간이 있었고-비록 풋내기 대학생들의 기존 기사 흉내내기 정도였지만-그 후부터 신문은 내 관심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 때부터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 항상 신문을 끼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이젠 제법 기자의 꿈이 여물어가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린 신문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걸까?

신문읽기의 혁명은 그 제목만큼이나 혁명적인 책이다. 특히 신문을 읽기만 했지, 그 신문이 나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보통의 우리네들에게는 말이다. 매일 아침 배달되어 오는 따끈따끈한 새소식들 이면에 뭔가가 있다? 그렇다. 저자는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편집을 읽으라고 말한다. 편집을 통해 비로소 '신문'이라는 입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설을 바로 보라고 말한다. 사설에서 그 신문사의 편집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 그는 신문 지면은 살아있다고 말하며, 신문 안의 정보들을 바로 보고 가려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신문을 보는 모든 독자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신문만 봐서는 신문을 바로 볼 수 없다. 신문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문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고 다음 날 신문을 받으면, 신문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이 상당부분 깨져나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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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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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향이 진한 차를 한 잔 타서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주변은 고즈넉하니, 이 책을 읽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듯, 박완서만의 차분하면서도 생명력 있는 글들을 듣는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회고와 추억담이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기억들이 책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그 기억 속의 어린 소녀가 지금은 인생을 돌아볼 나이가 되어 과거와 현재의 삶을 수묵화처럼 그려낸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름의 꽃이나 나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고, 삶을 바라보는 혜안을 통해 멀리 보는 여유를 배운다.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이야기,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고도 유쾌해서 저자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지나칠 수 있는 한 가지 작은 소재를 놓고 어쩌면 그렇게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나가는지 모르겠다. 그게 예나 지금이나 탄탄한 글들을 써내는 박완서의 힘이다.다만, 책 전체를 놓고 볼 때 중간 부분부터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전원생활에 대한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되어 흙과 함께 자라지 않은 젊은 세대라면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아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창 밖의 푸른 나무들도 한 번 쳐다보며 곰곰히 글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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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음악사 이야기 - 문화길라잡이 시리즈 문화길라잡이 시리즈 5
신동헌 지음 / 서울미디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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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게 느껴지는 수학서나 역사서라도 일단 '재미있는'이라는 꼬리표가 있으면 다시보게 된다. 음악사라는 것도 하나의 역사이니만큼 마냥 재밌지만은 않을 터인데 역시나 나의 눈을 붙잡은 것도 '재미있는'이라는 수식어였다. 책 두께가 얇지는 않은데, 매쪽마다 익살스러워 '만화에 가까운' 삽화가 관심을 끈다. 저자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데도, 본업인 '그림'을 특기로 내세워 각 시대별로 음악가 위주의 역사를 조목조목 잘 정리했다. 이 정도의 글을 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갖추었으며, 얼마나 많은 음악적 지식을 쌓았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저자의 클래식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 것인가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제목처럼 무턱대고 '재미'있지는 않다. 선사시대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를 아우르자니 꼭 필요한 시대배경과 음악가만 죽 늘어놓는데도 책 한 권 분량으로 벅찰 지경이다. 한번에 통독을 하기에는 약간 지루한 감이 있는데 흥미롭고 재치있는 삽화가 글의 무게를 훨씬 덜어준다. 음악사를 한 번 훑고 싶은데 전공서는 부담스럽다면 이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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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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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나는 그녀가 부럽다. 여행을 하고 싶다고, 무작정 떠나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할일 많은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런데 그녀는 세계여행을 7년 하고, 안방같은 제나라로 돌아와서 또 여행이다. 물론, 그녀가 하는 여행은 단지 눈 즐겁자고 하는 호사스런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기본이고, 별의 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행복해하는 표정을 그녀의 책 곳곳에서 본다. 그녀의 오지여행을 장문의 글로, 혹은 책 속 몇 컷의 사진으로 상황과 배경을 짐작하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었나. 나도 이렇게 다른 세상과 만나고 싶다고...

그녀가 도보로 우리 땅을 걸을 생각을 하고, 단촐한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우리 땅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나 정겹다. 걸쭉한 사투리들이 튀어나오고, 각박한 도시에서 잊혀졌던 한국 전통의 인심들이 마음을 훈훈케 한다. 한국, 내 땅이라고 걷는 것이 마냥 쉬우리냐마는 그녀는 걷는 고생보다 더 큰 무엇이 있음을 입증한다. 오지 여행기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눈을 통해 보는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모습들하며, 저자와 함께 나누는 내 나라에 대한 생각의 교류하며, 맛깔스런 한비야만의 글을 조목조목 읽어나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도보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그녀 안의 외로움이나 고독을 엿보기도 하고, 그녀가 주장하는 인생철학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할 일이다.부지런히 이 땅을 걸어 목적지에 선 그녀의 모습에 꿈 하나를 이룬 뿌듯함이 보이고, 그 자리에 나도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땅에 대해 느껴보지 못했던 애정을 이 책을 통해서 한 번 느껴봄이 어떤지. 여행을, 우리의 땅을, 그리고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그녀가 나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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