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함께하는 여름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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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우주의 소립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덧없이 주어진 시간을 소모하며 죽음을 향해 가는 이미지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던 탓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은 더 나은 쪽으로 항로를 틀어보려는 의지가 생긴 건 독서의 영향이 크다.



이 책 또한 기존의 생각에 변화를 줄만한 주제들이 꽤 있었다.

파스칼의 저작 원문에서 인용한 구절들에 저자의 생각을 덧붙인 구성의 이 책은 

얇고 가벼운 물성과 달리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치열한 사색의 흔적들이 묵직하다.

만약 당신이 여름을 겪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홀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면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은 인간에 대한 서늘한 지적 사고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내용상 특별한 점을 꼽자면 저자인 앙투안 콩파뇽의 태도이다.

그가 인용글마다 덧붙인 자신의 생각을 보면 파스칼과 논쟁을 벌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는 동조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다중적 태도가 파스칼이 강조한 '중용', '균형'을 잃지 않는 '이중 사색' 처럼

읽혀 나만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중 사색은 파스칼의 '이중 사고'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역할로서의 나, 진짜 존재로서의 나 두 가지가 공존하는데 사회적 역할은 역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 역할에 치우치는 일은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자신에게 불성실한 일이라고 말한다.)

 

파스칼에게 중요한 일생의 주제가 여럿 있었지만 그 중 무한과 인간, 진리의 주제를

꼽고 싶다. 이 세 가지는 나 또한 삶을 살아가고 탐구하면서 답을 얻고자 하는 

평생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무한의 끝없음에 놓인 인간의 존재를 불확실하게

여기면서도 인간이 결국 진리를 찾아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놓지 않는 것 같다.

모순되지만, 인간이 자신을 미워하고 사랑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믿을 때 자기 안에 있는 행복을 만들 능력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와 불가해한 세상 속에 우리는 주사위처럼 던져졌다.

중심이 없는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서 있을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내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필요조건이다. 

그의 말을 약간 비틀어본다.


'내'가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를 찾지도 않게 될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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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멜랑콜리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장문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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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이것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20세기 이탈리아의 토리노라는 도시는 오로지 단 하나를 주조해내기 위한 용광로와 마찬가지였다.
 그 용광로 안에는 토리노, 나아가 이탈리아 국가의 역사에 순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 '피아트'라는 자동차 생산 기업이자 작은 국가를 세운 아녤리 가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탈리아 최초로 대중 소비를 염두에 둔 대량 생산 설비를 구축한 기업인 피아트는 1차 세계대전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뒤 본격적으로 미국 '포드' 사의 경영·생산방식을 가져와 토리노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대량 생산은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고 여기서 비롯된 계급 투쟁은 후에 토리노가 '불이 꺼지지 않는 투쟁과 혁명의 도시'라는 부연을 낳게 만든 시초라고 볼 수 있다. 


 토리노가 혁명의 도시가 된 데에는 '국가 속의 국가' 피아트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한 여러 관찰자, 참여자들의 시선이 있었는데 그 중 걸출한 두 사람은 그람시와 고베티이다. 
 반파시즘이라는 공통의 이념 아래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위해 비타협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들의 결사와 행동은 두 사람이 사망한 뒤에도 긴츠부르그, 포아, 보비오와 같은 지식인들과 행동당의 저항으로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파시스트는 토리노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파시즘이 물러난 뒤 1969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깨달아 시작된 '뜨거운 가을'에서 피아트가 노동자와의 힘의 투쟁에서 최종적으로 국민과 함께 승리한 '침묵의 행진'까지 이탈리아 20세기의 마지막 남은 길은 토리노로 향했다.


 파시즘이 토리노에 엄습했을 때 피아트가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 양 측에 지원을 하여 미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점과 후대의 교육과 진실의 전달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겉으로는 파시스트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 지식인들의 모습은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과연 긴츠부르그가 말하는 작은 덕을 지금의 어디에 빗대어 두고, 큰 덕은 얼마나 많은 것 을 모아야 하는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일상적 덕이 모두에게 유용할 큰 덕이 될 수 있으려면 내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복기해야 할 정언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결여에서 나온 상실을 추구하는 멜랑콜리한 종이며 그럼에도 개인의 작은 혁명이 이어질 때 시대의 상한 부분을 도려내는 큰 혁명이 언젠가 도래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에게로 향하는 한 도시의 역사적 초상이며 끝까지 추구할 큰 덕, 자유를 위한 끝나지 않는 행진곡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 서포터즈 이벤트 참여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내게 ‘사회주의‘라는 이 말은 정치적이기 전에 도덕적 지평의 열림으로서, 오늘 여기로부터 미래를 향해 투사되는 정의의 의지로서의 어떤 것을 뜻했다. 그 말은 작은 것들에 머무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 P119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것을!Che cosa vogliamo? Tutto! - P160

멜랑콜리적인 주체는 상실한 대상에 원래부터 있는 결여를 응시하며 " 자신이 실패한 장소들로 되돌아가려는 충동"이 강하다고 한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멜랑콜리는 애도를 통해 상실의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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