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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박지향, 김일영, 이영훈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2005년 8월, 주간 <교수신문>이 각 분야 전문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광복 이후 학문적으로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한 저서는 어떤 책이라고 보는가?’가 질문 요지였다. 이 설문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이 6등을 차지했다.

  

1979년 말 1권이 발간된 후 1989년 6권으로 완간되기까지 10여년의 시공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격동기에 해당한다. 유신 독재정권이 종말을 고했으며 뒤이어 들어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이 사상과 양심 그리고 학문의 자유를 극도로 제약하던 시기였다. 이 때 <해전사> 6권이 순차적으로 발간된 것이다. 글을 쓴 사람들이나 출판사 모두에게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라는 책으로 세상이 다소 시끄럽다. 현대사 연구에 물꼬를 틀었다고 평가되고 학문적 성과물로도 인정받고 있는 <해전사>를 비판하고 나섰다고 해서 세간에 집중 조명을 받은 탓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내용이 너무 진부하다는 것이었다. 기존 보수 우파적 역사인식을 그대로 따온 데다 대부분 특별히 진전된 내용도 없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아니라 재탕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몇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려고 한다.

  

먼저 필자들의 비전문성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해방전후사는 분명 역사이고 우리와 가까이 닿아있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참가 필자 중 한국 현대사를 연구한 사람이 극소수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책임지고 엮었다는 편집위원들 중에도 우리의 해방전후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은 현상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체 필자들 중 편집위원을 비롯한 몇 명이 책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선전하는 것도 문제이다. <재인식>은 기존에 발표되었던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해전사>를 일정한 틀에 근거해서 비판하는 것이 못된다. 어떤 논문은 오히려 <해전사>의 연구를 뒷받침해주는 것도 있다. 그런데 보수 우파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편집위원 몇 사람이 자신들의 공격적인 글 속에 다른 논문들을 종속시켜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 세분화되겠지만, <재인식>은 크게 세 가지 논점에서 <해전사>를 비판하고 있다. <해전사>에 담긴 역사인식이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 필연론’, ‘좌파적 편향’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전인수식 주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족지상주의라는 것은 우리 민족만을 위해서 다른 민족을 희생시키고 이용하는 것일 텐데, <해전사>에 실린 글들은 외세에 휘둘리기만 해온 우리 민족이 다른 강대국과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혁명 필연론에 대해서도 그들은 선입관을 갖고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초한 민중혁명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들의 시야가 몹시 협소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국민이 잘못된 정권을 비판하고 바로 잡는 것은 민중혁명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장기 독재 정권에 시달리던 국민이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추구해 나가는 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닌가.

  

학문 연구는 진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다. 우에 장점만 있을 수 없고, 좌에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좌우의 장점을 찾아 조화롭게 또 균형 있게 굴러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데 <재인식>은 <해전사>를 좌파적 편향의 역사 서술의 책으로 미리 상정해 놓고 군사독재 시절에나 위력을 발휘했을 반공 이데올로기 중심의 우편향적 시각으로 시비를 걸고 있다. 역사 연구에서의 ‘균형 잡기’와 ‘업그레이드(Upgrade)’라는 외피를 씌우고 말이다.

  

<재인식>에서 보여주고 있는 몇 개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한국전쟁의 원인을 미소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스탈린의 세계 전략 결과로 <재인식>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일천했던 7,80년대 구미 학계 일각에서는 주장했던 설이다. <해전사>는 이와는 달리 6.25전쟁이 내부의 권력투쟁과 항일 무장투쟁경험의 연장선 위에서 김일성이 선택했던 전쟁노선의 산물로 보고 있다. 전쟁의 원인을 김일성이 이니셔티브를 쥔 전쟁으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고 있는 이 주장은 국내외 학계로부터 폭넓게 인정을 받고 있다.

  

일본군 성 피해 여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인 학자의 논문 형식을 빌리긴 했으나 종군 위안부 피해 책임을 조선 사회의 모순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위험한 시각이다. 그들을 고통과 희생으로 내몬 것은 조선 사회의 양성적 불평등, 가정 폭력 그리고 가부장적 문화도 주요 원인이며 조선인 업주에 의한 동원도 있었다고 본다. 이것은 일제가 자행한 구조적 횡포를 조선 내의 문제로 돌려서 개별화 파편화해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자칫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아직 과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면죄부를 안겨 줄 우려도 없지 않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왜곡되어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전례를 많이 남긴 인물이다. 현대사 연구자들은 대체로 그를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 부정적 인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재인식>은 이승만을 약소국 대한민국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한미방위조약 등을 최대한 활용한 마키아벨리스트이고,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달러를 얻어내 그것으로 경제자립화를 이루려 했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시각의 한 편린에 다름 아니다.

  

조선어학회 활동에 대해서도 기왕의 입장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어학회가 일제에 저항한 대표적 민족문화단체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재인식>은 이 단체를 조선총독부 정책에 협조했기 때문에 식민지 권력과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총독부의 전면적인 행정력은 조선어문통일을 정당화하는 실제적 권위의 근거가 되어 조선어학회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증적인 논구가 더 수반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말을 매개로 간접적 항일을 한 문화운동 단체인 조선어학회를 직접적 항일운동(무장투쟁) 단체와 같은 선상에서 운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친일파의 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춘원 이광수를 ‘친일 민족주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위만 보지 말고 친일한 동기까지 고려하면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어의 유희에 다름 아니다. 즉 형용모순이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 ‘친일적 민족주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재인식>의 필자들은 랑케식의 역사 독법에 근거해서 주장을 펴고 있다. 랑케의 역사관은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견해나 해석이 가미되어서는 안 되며,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말한다. 실지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유물과 문헌(문자)인데 이것은 주로 지배 계층을 설명해 주는 좋은 소재들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한다면 지배계층만의 역사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랑케의 역사 독법은 매력을 잃었다. 모든 사람의 역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든 주어진 조건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면서 토론하는 것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로 주장이 다를 때 정확한 논거를 찾아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재인식>은 <해전사>와 대립 구도를 만들어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언짢다. 탈냉전의 흐름이 세계사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도 한참 지났고, 남북 관계도 교류와 협력을 통한 상생 발전의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또 대통령을 북한 김정일 정권의 앞잡이라고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내도 잡아가지 않을 만큼 민주주의도 성장했다. 이러할 때 <재인식>의 출판은 냉전시대의 잣대를  들고 나와 시대를 역류시켜 보겠다는 발버둥처럼 생각되어 보는 사람을 무척 안쓰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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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u 2021-06-2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게 안쓰겠습니다. 우선 해뱡전후사의 인식을 쓴 백기완씨는 그럼 역사연구의 전문가입니까? 제대로 학교공부도 안한분인데.. 위의 글은 ˝해뱡전후사의 인식˝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하는 방식으로 되돌려 드릴 수 있는 글에 불과합니다. 님의 글은 ˝내로남불˝이란거죠.

voyant 2024-01-2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약이 지나치심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에도 수십 종의 새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을 책의 홍수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모처럼 좋은 책을 읽고 기쁨을 누리는 행운을 맛보았다.

이 책을 읽기 전, 신경림이 참여시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 수록 시인 선정에 균형을 잃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 참여 모더니즘 등 유파를 가리지 않고 1권에서는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22명의 시인을, 또 2권에서는 김지하에서 안도현까지 23명의 현역 시인의 훌륭한 시들을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균형감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1권에서는 거의 신 시인이 직간접적으로 교유를 나눈 사람들을 중심으로 글을 썼고, 2권에서는 직접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대담을 나누는 등 발로 뛰면서 쓴 것들이어서 그만큼 현실감이 있었다. 따라서 읽기가 편했고 감동도 진했음은 물론이다. 신경림 시인의 교우 폭이 얼마나 넓은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전에 사석에서 신 시인이 사회문화운동 단체의 감투를 자기만큼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도 부지런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신경림 시인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리라.

시를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순수해진다. 그 순수함 속에서 진실과 정의, 밝고 맑음을 그려보고 추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시들은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사여구의 나열, 심한 비약과 상징에서 오는 언어의 유희는 오히려 감정을 혼돈시키기만 했고 나아가 시를 소수 사람의 소유물로 만든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신경림이 위의 책에서 소개한 시들은 다르다. 감화와 생기와 영감으로 힘을 북돋아 주는 시들을 모아 소개하고 있어 이 책은 나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시는 슬픔으로 눈물을 머금게 하고, 어떤 시는 조용히 사색에 잠기게 하며 또 다른 시는 감정을 응축시켜 불의한 사회를 향해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시들에 깔려 있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은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하찮은 것들에 대해 덩달아 애정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뭉쿨한 감동의 교차는 신 시인의 쉬운 문장력과 현장감 있는 해설이 뒷받침하는 측면도 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권하고 싶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감정을 순화시켜 공의에 입각해 깨끗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교직에 있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풍요로운 지침서로 삼기 위해, 농민들은 농촌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열등감의 극복을 위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못 배운 것이 죄가 아니라는 사실의 확인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 회복을 위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그 외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도 이 책을 읽고 계산적인 삶으로부터 순수함을 되찾는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의 논리와 물신 숭배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와 겸양 그리고 양보와 진실의 미덕이 인간적 삶에 큰 장점임을 이 책은-소개한 시인들의 삶과 시를 통해서 그리고 글쓴이의 해설을 통해서-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 못난 사람끼리 만나면 아무도 못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쉬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이 책은 분명 이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책을 읽고 맛본 순수한 감정이 나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들어 줄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순화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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