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 어두운 세상을 향한 사랑의 원자탄, 목회 믿음의 거장 13
김학중 지음 / 넥서스CROSS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어두운 세상이다. 사위(四圍)가 깜깜하다. 정치도 경제도 앞이 안 보인다. 문화라고 예외인가. 그래도 우린 절망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선진들에게 길을 묻는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삶에서 어두운 터널을 뚫고 간 방법을 배운다. 이 책을 통해서… .

 

문고판보다 조금 큰 책(4×6판 변형), 쪽수도 150밖에 안 되니 결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손양원을 통해 사랑과 화해, 그리고 진리가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 보인다.

 

이 책 <손양원>의 저자는 김학중 목사이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386세대 목회자이니 아직도 젊다. 안산 꿈의교회 담임으로 적지 않은 규모의 목회를 하면서 이런 묵직한 책까지 저술하는 그의 저력이 부럽다.

 

그는 '믿음의 거장 시리즈'란 주제로 20 명의 인물을 선정 단계적으로 책을 발간하고 있다.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거장들의 전기(傳記)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이다. <손양원>은 그 시리즈 13번 째 책.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많이 공급한다.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책 앞 머리말과 생애 개관, 책 뒤 생애 연보와 참고 문헌이 덧붙어 있다. 앙증맞은 예쁜 소책자에 담을 건 다 담고 있는 셈이다. 형식(예쁜 외모)에 붙들려 책을 손에 잡긴 오래간만이다. 이 책 각 장의 제목은 이렇다.

 

1장 / 올곧은 믿음의 씨앗을 뿌리다. 2장 / 이 땅에서의 사명을 깨닫다. 3장 / 믿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품다. 4장 /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 5장 / 오직 믿음으로 살다 간 하나님의 사람.

 

각 장 제목만으로도 손양원 목사의 삶 전체가 눈에 잡힌다. 손양원 목사는 신앙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해 만 5 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것에서, 말씀에 충실한 신앙인에 더해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손양원을 다시 읽는 기쁨이 적지 않다. 이기주의가 극도로 팽배하고 사회의 윤리 도덕이 형편없이 추락한 세태에 손양원을 책으로 만나는 일은 소중하다. 그의 삶을 통해 사회를 둘러 볼 수 있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인 나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양원이 실천한 '원수사랑'이 삶의 진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학중이 쓴 이 <손양원>은 각주를 생략해서 그렇지 중후한 연구 도서에 속한다고 봐도 좋다. 연구 도서는 다소 딱딱하고 건조하기 쉬운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손에 잡으면 자연스럽게 술술 넘어가는 책이다. 쉽게 씌어졌다는 것, 이 책의 특장(特長)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평신도 신학생 목회자 등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딱 맞다. 글을 쉽게 썼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물 연구는 역사성을 갖게 마련이고 한자(漢字)를 써야 할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고유명사 몇 곳 이외엔 한자 사용을 극히 자제하고 있다. 쉬운 접근을 배려한 결과일 것이다.

 

손양원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보도 들어 있다. 가령 손양원의 창씨개명 대촌양원(大村良源)은 일제가 일방적으로 정한 호칭이었다는 것(87쪽), 손양원 목사가 1944년 9월 9일 교우들에게 쓴 편지는 유실되어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인데, 이 책에 소개되어 있어 반가웠다(102쪽).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런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것은 나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김학중의 <손양원>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정의가 상실되고 진리가 왜곡되어 횡행하는 때여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손양원을 읽음으로 우리 마음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다.

 

오탈자에 띄어쓰기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저자와 출판사가 같이 신경을 많이 썼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몇 곳은 꼭 지적해야 하겠다. 책이 판을 거듭해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손영준(11쪽)은 손연준(孫燕俊)으로(손양원의 옛이름이 아니라 호적명임), 김은주(19쪽)는 김은수(金恩洙)로(손양원의 모친) 고쳐야 한다. 그리고 경남성경학교(52쪽)는 경남성경학원으로, 범태고(90쪽)는 범냇골로, 손양원의 목사 안수 연월 1946년 3월(111쪽)은 1946년 2월로 수정해야 할 것들이다.

 

손양원 목사는 세계 기독교사에 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진이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도 '옥중 성자'로 불리었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 삼은 그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 이외의 것으로는 설명 불가하다. 이것을 저자 김학중은 손양원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의 승리라고 단언한다.

 

맞다. 손양원도 위대하지만 그의 가족도 함께 위대하다. 책을 읽으면 그 이유가 나온다. 손양원 목사가 남긴 정신을 이어받음으로써 그 위대함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시라. 이것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 <손양원>의 일독을 권하는 근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양원의 옥중서신
임희국.이치만.최상도 편역.해제 / 넥서스CROSS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명성에 비해 미진한 손양원 연구
 
명성에 비해 연구가 미진한 경우가 있다. 물론 그와 반대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는 전자의 예가 되지 않나 싶다. 신앙인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손양원 목사에 대한 연구는 생각보다 훨씬 미진하다.
 
그의 출생 날짜에서부터 각종 학교 입학과 졸업 날짜 그리고 목회 관련 일시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다음과 같은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에 대한 전기(傳記)가 먼저 나오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 되었다는 것.
 
전기는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 칭찬 일변도)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실성(事實性)이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손양원의 경우엔 그가 살아 있을 때 이미 전기가 나왔다. 안용준이 쓴 <사랑의 원자탄>은 그의 순교 1년 전인 1949년에 1부가 출간되었다. 1952년에 2부가, 그리고 1980년에 1부와 2부를 합해 한 권으로 출판했다.
 
이 책이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국내뿐 아니라 수개의 외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졌으며 영화로도 제작 방영되어 신앙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그들의 연구에서 <사랑의 원자탄>에 의존한 바가 컸다.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전기물에 의존해 인물을 연구할 때의 한계는 많이 지적되어 왔다.
 
손양원을 소개한 몇 가지 도서들
 
이런 손양원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방면에서 여러 사람들이 노력해 왔다. 손양원 연구의 기본 자료는 그가 쓴 일기, 옥중 서신, 설교문 그리고 체형조서(경찰 진술, 검찰 신문 조서)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손 목사와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증언도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런 자료의 실체적 접근으로 손양원 연구가 더욱 진전되기를 바란다.
 
손 목사의 친구 안용준에 의해 오래 전 출판된 <산돌 손양원목사 설교집(상․하)>(1962년)이후 여러 권의 관련 책자가 출판되었다. 손 목사의 장녀 손동희가 엮은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2002, 보이스사)를 비롯해 작년 10월에 출판된 이만열 엮음 <산돌 손양원 목사 자료선집>(2015,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 이르기까지의 책들은 각 부분을 선별해서 소개하는 성격이었다.
 
이번에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이사장 이성희 목사)에서 간행한 <손양원의 옥중서신>은 손 목사의 글 중 편지를 전부 모아 소개했다. 손 목사가 주로 옥중에서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 총 93편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2012년 자료 보관소인 손양원순교기념관 내부를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20편이 훼손 소실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많은 노력 끝에 출판된 <손양원의 옥중서신>
 
그래서 현재 73편만 남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자가 바래져 판독 불가의 우려가 있었다. 이번에 이것을 디지털 작업으로 사진을 찍어 싣고 현대어로 풀어서 붙인 것이 <손양원의 옥중서신>이다. 권두 해제를 포함해서 1부가 144쪽, 2부 260쪽으로 모두 404쪽에 이르는 적지 않은 분량이다.
 
시간적으로 볼 때 1941년 9월부터 1945년 7월까지, 그러니까 손양원이 광주형무소에 있을 때 그리고 종신형과도 같은 장기 구금을 언도 받고 경성구금소와 청주보호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주고받은 서신들이다. 손양원이 아내 정양순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은 옥중서신이 아니지만 포함시켰다.
 
서신의 형태는 우편엽서와 봉함엽서 그리고 봉함편지이다. 형태에 따라서 내용의 다과(多寡)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짧은 내용은 우편엽서를 그리고 긴 내용은 봉함편지를 사용했다. 봉함엽서와 봉함편지는 검열에 걸려 전달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편집 순서는 작성 일자, 소인 일자, 수신 날짜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손양원의 옥중서신> 1부는 편지를 현대어로 고쳐 누구나 읽기 쉽도록 했고, 2부는 이것을 디지털 작업으로 사진을 찍어 실었다. 또 그 옆에 원문을 활자화해서 함께 실었다. 해제자는 1부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그리고 2부는 전문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둘 다 일반인과 연구자들이 교차해서 읽으면 또 다른 유익이 있을 것이다.
 
이 편지에 송수신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손양원을 비롯해서 모두 19명이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교회 신자들과 주고받는 서신 속에서 손양원의 인간됨과 신앙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감옥에 있으면서 부모님께 갖는 효성의 마음, 지아비의 역할을 못하는 데서 아내에게 갖게 되는 미안함, 자식들에겐 자상한 아버지이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문장 하나하나에 그대로 서려 있다.
 
시대의 참 스승 손양원 목사
 
그것뿐 아니라 한 교회의 담임 목사로써 옥중에 갇혀 있는 자신으로 인해 성도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영적 손실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다짐을 아울러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손 목사는 6.25 전쟁 때 주위의 간절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피난을 가지 않고 애양원의 한센인 성도들과 함께 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승다운 스승이 드문 시대, 목자다운 목자가 귀한 시대에 손양원 목사가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서 갖게 되는 언행이 불일치, 믿음과 실천이 따로 작동하는 모습이 일반화된 때문이 아닐까. 우리 목회자들뿐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신행일치의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손양원 목사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것도 신행일치의 결과이다. 독립운동가 손양원과 믿음의 보수자 손양원, 둘 가운데 후자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 문제엔 타협의 여지가 있었지만 신앙 문제엔 결코 타협하지 않은 데서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본 책에 실려 있는 손양원의 편지에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한 참 목자의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 있다.
 
<손양원의 옥중서신>은 편지 자료를 모아 놓은 책이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원문을 현대어로 옮긴 것도 편역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한 작업이어서 오역(誤譯)뿐만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편역에 참가한 임희국 이치만 최상도 교수는 손양원 연구 권위자들로서 이 방면에 무게 있는 성과물들을 생산해 온 사람들이다.
 
권두 해제를 중심으로 제기하는 몇 가지 지적 사항
 
어려운 작업을 잘 감당한 세 사람의 연구자들을 치하하면서 권두 해제를 중심으로 몇 가지 지적하는 것도 서평자의 몫이겠다. 이것은 책의 가치를 낮춘다기보다 내용을 보완하여 튼실하게 하며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자료집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평가의 여지가 넓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먼저, 손양원의 이름에 대한 것이다. 본명을 연준(燕俊)이라고 한 것은 현재 쓰고 있는 이름을 양원(良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준과 양원 두 개의 이름은 본명과 현재 명의 관계가 아니라 연준은 호적상의 이름이고 양원은 족보상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두 번째, 손양원의 생년월일을 과연 1902년 7월 7일로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손양원은 호적에 1902년 6월 3일 출생으로 되어 있다. 6월 3일은 음력이고 그 해 이날의 양력 날짜는 7월 7일이다. 지금까지 써 오던 6월 3일을 본인의 이력서 한 장(권두 해제 앞에 등재)에 의해 양력(7월 7일)으로 바뀐다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칠원공립보통학교 재학 기간을 1914년에서 1919년으로 적고 있다. 재학 기간이 6년인 셈인데, 손양원이 보통학교를 다닐 때의 학제는 4년제였다. <칠원초등학교 100년사>에 1919년 졸업생 명단에 손양원(호적명 손연준으로 되어 있음)이 있다. 졸업으로부터 6년 전이 되는 입학 연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넷째, 칠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그 해 서울 '중동중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그 학교의 정식 명칭은 '사립중동학교'였다. 이 학교 중등과에 입학해서 1년을 수학하다가 아버지 손종일의 옥고로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내려 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학교 명칭 등 고유명사에 대한 적확한 기록은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책을 통해 얻은 의외의 소득
 
이 책의 서신들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기대 밖 수확이다. 장남 동인이 광주에서 '성경학원'을 다니다가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가정 형편 때문에 그만 두었다는 것(29쪽 주1.), 또 동인이 부산 범일정 소재 통 만드는 공장(富士工場, 주인 박신출 집사)에 다니기 전 잠시 해운대 '백남주' 장로가 운영하던 '백일상점'에서 일 했다는 것(32쪽), 여기서 광주 성경학원 수학과 백일상점의 주인 장로의 이름이 백남주라는 것은 내게 새로운 정보가 된다.
 
또 손양원 목사의 처남이 동경대학을 다녔다는 것(64쪽)도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당시 함안 대산면에서 동경대학에 유학 갈 정도면 실력도 실력이겠거니와 가세(家勢)도 탄탄하지 않았을까 싶다. 할아버지(손종일 장로)가 생명보험금을 얼마나 탈 수 있을지를 언급한 데서 가난 속에서도 최소한의 문화생활(생명보험 가입)을 했다는 것(137쪽)을 알 수 있다.
 
감옥을 '영어(囹圄)'라고 한다. 법(令)을 어긴 개인(吾)을 가두어 둔다는 말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갇혀 생활한다는 것은 고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양원은 감옥에서도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체형조서 진술을 보면 감옥 안에서도 찬송과 말씀 묵상 그리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복심법원에 항소한 것도 형의 감량보다 법원 관계자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손양원은 감옥 안에서도 인간적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의 편지에는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참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또 아버지에 대한 불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성도들을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행간마다 배어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제 강점기 감옥에서 겪은 신앙인의 이중 고통
 
일제 강점기, 감옥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데엔 많은 제약이 따랐을 것은 뻔하다. 사상범들에겐 더욱 그랬다. 가족 외엔 편지 내왕을 할 수 없어서 일가친척으로 위장하고 서신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었다. 손씨 가족으로 위장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손양선(본명 황양희)과 손수남(본명 김수남)이 그런 예에 해당된다.
 
손 목사도 가급적 교회 관련 내용을 빼고 일상적인 소식만 전하라고 부탁할 정도이니 검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손양원 목사의 편지 중 검열에 걸려 전해지지 않은 것도 있고 또 몇 줄씩 먹줄로 지운 뒤 전달된 것도 있다(315쪽).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서러움에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이중의 아픔을 겪은 옥중 생활이었다.
 
<손양원의 옥중서신>을 읽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지 않다. 손양원 목사가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大村良源), 그리고 편지 곳곳마다 교도관에 대한 고마움과 일본에 충성하는 말이 들어가 있다는 것 등은 읽는 내내 마음에 거슬렸다. 물론 검열을 의식한 형식적 문구이고 그것이 일제 강점기 감옥생활의 풍습이었다고 해도 '손양원'을 바라보는 시각에 호의적일 수 없다.
 
손양원을 독립투사보다는 굳건한 신앙의 보수자라고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6.25 때 끝내 순교를 당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하고 애쓴 분들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많은 시간과 공력을 쏟아 부은 장면들이 페이지마다 읽혀진다.
 
손양원 전집 발간을 기대함
 
손양원 목사의 편지들을 번역 주석하려면 한글과 한자 그리고 일본어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편역 및 해제를 맡은 분들이 이 일을 훌륭하게 해 냈다. 손양원 목사가 직접 남긴 기록들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편지에 이어 일기와 시, 산문 그리고 설교문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잔존한다.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에서는 손양원 목사가 남긴 자료들을 디지털로 사진 현상하고 활자화해서 전집 형태로 계속 발간한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다면 손양원 연구가 갈수록 속도감이 붙을 것이고 체계화 될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우리가 내 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인물이다.
 
역사에서는 인물에 대한 왜곡과 폄하의 기술은 배척해야 한다. 또한 미화 일변도의 기록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가에게 최상의 덕목은 정직과 진실"이라는 지적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손양원의 옥중서신>이 출판되기까지 수고한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독자 제현들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돌 손양원 목사 자료선집 한국기독교역사연구 자료총서 47
이만열.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엮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자료집에 대해 서평을 쓰기는 처음이다. 서평의 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또 자료집은 그만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쓸 수 있다는 뜻도 되리라. <산돌 손양원 자료선집>은 지난 10월 손 목사의 고향인 함안군 칠원읍에 소재한 손양원기념관 개관에 맞춰 출판되었다. 기념사업회 회장인 이만열 교수 편으로 되어 있지만 기념사업회 엮음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결합된 자료집인 것 같다.

 

산돌 손양원 목사는 참 목자요 기독교인뿐 아니라 전 국민의 스승이 되는 사람이다.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반대해 5년 간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는 것, 여순사건 때 공산주의자 청년들에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빼앗겼다는 것(순교), 그 뒤 6.25 전쟁 때 여수 애양원교회에서 양떼들과 끝까지 함께 하다가 인민군에 의해 그 역시 총살당했다는 것 등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다. 이런 단편적 내용 뒤에 숨어 있는 그의 기독교적 사랑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가톨릭 침례교를 시작으로 장로교단이 1938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일제의 종교 정책을 따랐다. 그러나 평양의 주기철, 경남의 한상동, 호남의 김형모 등을 비롯해 소수의 목회자들은 이것은 십계명 제1, 제2의 우상숭배 계명에 위배된다며 참배를 거부했다. 손양원 목사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제는 신사비종교론(神社非宗敎論), 즉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애매한 명분을 내세워 목회자들을 회유했다.

 

손양원 목사의 참된 목자로서의 모습은 순교당한 두 아들에 대해 임한 자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 청년 안재선을 처형 직전에 구하여 양아들로 삼았다. 이 때 한 말이 순교한 두 아들은 천국 갔지만 저 죄인(안재선)이 죽으면 지옥 갈 것이 뻔한데 그대로 둔다면 목자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 된다며 그를 구해 양자로 삼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결과이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의 원자탄'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28일 퇴각하는 인민군들에 의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함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피난 가라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한센인 성도로 구성된 애양원교회를 끝까지 지키다가 순교당한 것이다. 삯꾼 목자가 판을 치고 있는 이 때 그의 행동은 참 목자 상(像)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박형룡 박사는 손 목사의 추도식 때 설교를 통해서 그를 '성자(聖者)'로 존호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우리가 세계에 내 놓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자이다.

 

이런 손양원 목사에 대한 연구는 생각보다 훨씬 미진하다. 일찍이 안용준 목사가 <사랑의 원자탄>을 출판한 이래 그에 대한 글들이 종종 발표되었지만 종합적인 연구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 보니 손 목사의 출생 연도부터 수세(受洗) 날짜 각급 학교 입학과 졸업 날짜, 목사 안수 받는 날짜 등 어느 것 하나 통일된 것이 없다. 연구의 부진의 결과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자료집의 출판은 그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손양원 목사에 대해 연구할 자료들을 집대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자료 선집이라고 했지만 손양원 연구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망라하고 있다. 전국을 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을 이 자료집 발간으로 수고를 덜게 되었다. 이 자료 선집은 국판 555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담고 있다. 분류하자면 1.일지 일기 2.편지 3.설교 4.재판 기록의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문투를 현대문으로 일일이 바꾸어서 정리, 읽는 이들의 편리를 도모해 주고 있다. 각 편을 읽으면서 손양원 목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일기는 그야말로 개인의 사소한 기록이다. 손양원 목사는 기록을 해서 보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성자 손양원 목사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일기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접할 수 있게 한다. 동인이 머리 깎음, 이 날 양원도 머리 깎은 날(32쪽), 지갑 산 날(46쪽), 일기장 산 날(50쪽), 남창 교우 일동 사진 박은 날(62쪽), 양 새끼 낳은 날(66쪽),영순 양 이 해 넣은 날(73쪽), 목욕 새 옷 입음(新衣着, 76쪽) 등의 내용을 읽을 땐 웃음이 피어오르기조차 했다. 성자의 인간적 면모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손 목사가 야학을 했다는 것('금야부터 야학 시작' 29쪽), 손양원 목사의 아호를 '산돌'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자 '활석(活石)'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라는 사실(35, 41쪽), 손 목사에게 처제가 있었음('처제에게 편지 온 날', 43쪽), 그가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이전 그러니까 경남성경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할 때부터 이미 사찰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1931년 9월 21일 2인 시찰인(視察人) 돌아감', 61쪽) 등.

 

또 동생 문준과 갈등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쓰고 있고(87쪽), 손 목사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는 그 해 목사 안수 받기를 바랐으나 신사참배 반대 문제에 부딪쳐 해방 후인 1946년 2월에 가서야 안수를 받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해방 뒤 국기배례도 일제 때의 신사참배와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에 속한다고 하여 그가 적극 반대 의견을 개진 급기야 당시 대통령 이승만을 만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며 예를 표하는 주목례로 바꾸게 했다. 신앙이 민족 위에 있다는 예증이 될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많은 설교를 기록으로 남겨 두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던 것을 이번 자료선집에 모아 221편으로 정리했다. 어떤 이는 손 목사의 설교에 대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내용이 초보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이어서 특별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설교를 정독한 나의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평이(平易)하지만 그 가운데 영적 파워를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성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그대로 회중에게 전해도 될 정도로 설교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손양원 목사가 구속된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이다. 신사참배 반대가 주 이유가 되겠지만 그가 한 설교도 꼬투리를 잡으려 했다. 본인 손양원 목사가 경찰서와 검찰에 자주 불려가 피의자 심문조사를 받았지만 그 주위 인물들, 예를 들어 애양원교회의 장로 집사들도 증인으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일제의 검찰과 경찰은 두 개의 설교를 문제 삼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것은 '현하 교회가 요구하는 교역자'와 '주의 재림과 우리의 고대'라는 설교였다. 일제 천황제를 비판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은근히 강조한 설교이다.

 

원문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심문 과정에서 증인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는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계 대전과 천재지변으로 조선 교회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함으로써 우리를 괴롭힌다. 이런 일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의 정세 하에서 조선 교회가 요구하는 교역자는 재림 주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를 돕기 위해 말씀 위에 바로 서 있어야 한다."('현하 교회가 요구하는 교역자', 505쪽에서 정리한 것).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공중 권세 잡은 사탄 마귀가 멸망하고 악한 정치가 사라질 때가 되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각국을 통치할 심판장으로 오셔서 세상을 평정하신다. 전쟁과 한재, 수재와 악병이 사라지고 또 애양원교회 성도들인 나병 환자들도 전쾌(全快)된다. 따라서 영원히 평화롭고 행복한 하나님 나라가 출현하게 된다."('주의 재림과 우리의 고대', 505-506쪽에서 정리한 것). 그의 설교를 일별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유난히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를 연구하기 위해서 제공되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체형조서(體刑調書)이다.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만 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심에서 받은 형량은 1년 6개월이었지만 전향, 즉 신사참배를 계속 거부함으로 위험 분자로 찍혀 전향할 때까지 구속 생활이 이어지게 되었다. 체형조서는 그가 일제에 잡혀 가서 경찰과 검찰로부터 받은 심문 조서를 말하는데, 손 목사의 답변에서 그의 신앙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일찍이 <사랑의 원자탄>을 쓴 안용준 목사를 비롯해서 손 목사에 대한 중요한 글은 많은 부분이 이 체형조서에 근거한 것들이다. 손 목사의 장녀 손동희 권사는 체형조서를 시기별로 정리해서 <사랑의 순교자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보이스사, 2001년)라는 제목을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체형조서 발굴에는 원택연 장로의 도움이 컸다. 해방 후, 그가 광주지방검찰청장으로 근무할 때 안용준 목사가 원 장로에게 특별 부탁을 해서 발굴해 낸 것이다.

 

일제 하 구속되었던 사람들의 체형조서를 살펴보면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상당량 발견된다. 일반적인 죄를 지어 구속된 사람들은 죄를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는 일이 많다. 또 독립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확신범(確信犯)들은 모든 것을 조국 독립에 맞추어 진술했기 때문에 사실과 배치되는 것들이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는 목회자로서 신앙 양심에 근거해 진술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만큼 사료적 가치가 뚸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선집을 많은 이들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교양을 확보하고 정신적 자산을 구축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세상이 점점 팍팍해져 간다. 개인의 잘못이 물론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의 변형인 신자유주의는 사람보다 물질, 상호보완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며 심한 이기주의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위라면 더불어 살기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 교재로 <산돌 손양원 자료선집>을 권하고 싶다. 신앙과 민족을 위한 삶은 이타적인 삶을 살 때 가능하다. 산돌은 그런 전형을 보여주고 이 세상을 뜬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찬믿음 1
찰스 M.쉘돈 외 지음 / 예찬사 / 198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기독교의 추락 속에 손에 잡은 책 한 권

 

기독교의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누굴 탓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경각심을 갖고 거듭남의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교계에 희망이 없다. 이럴 즈음에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사회복음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미국의 월터 라우센부시(Walter Rauschenbush)를 피해갈 수 없어 그에 대한 글을 읽었다. 라우센부시가 영향 받은 사람 중 찰스 M. 쉘던(Charles M. Sheldon)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쉘던은 미국의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 목사이자 저술가로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조항래 역, 도서출판 예찬사, *이 책 제목이 눈에 거슬린다. 아무리 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책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을 인성적 측면만 생각하고 정한 제목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뒤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로 표기하겠다. 실제로 10 종이 넘는 한국어 번역본 중 대부분이 이렇게 책 제목을 달았다)는 소설에 속하는 글이다. 원 제목은 In His Steps이고 부제(副題)가 'What Would Jesus Do?'이다. 그러니까 부제를 한글 역(譯)의 책명으로 삼은 것이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보다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가 더 설득력 있는 제목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책의 발단 부분에 나오지만 주인공 헨리 맥스웰(Henry Maxwell) 목사가 주일 예배 때 베드로전서 2장 21절을 본문으로 '주의 발자취를 따라서'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다(*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It was to this that God called you, for christ himself suffered for you and left you an example, so that you would follow in his steps."). 이 본문이 쉘던의 소설 In His Steps에서 시종일관(始終一貫) 긴장 속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의 가치 기준이 혼란스럽고 윤리 도덕이 추락할수록 사람들은 절대적인 잣대를 요구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은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는 설의법적 표현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성행했던 WWSD(What Would Jesus Do?) 물결은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올바른 신앙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오늘날도 이 소설을 쓸 때와 비슷한 가치 혼란의 시대이다. 절대 진리가 발붙일 여지가 없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곧 진리라는 전도(顚倒)된 가치관이 횡행하고 있는 사회아다. 따라서 찰스 쉘던의 소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가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그리스도인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보다는 안락하고 부담 없는 세속적 신앙생활을 원하는 추세이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행해 달려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한낱 자기 필요에 의해 달았다가 떼어내는 장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 소설은 신앙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찰스 쉘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체코의 헨리크 시엔크비치(Henryk Adam Alexander Pius Sienkiewicz)가 쓴 Quo Vadis와 함께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가 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보아도 좋다. 또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강조하는 책으로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The Cost of Discipleship('나를 따르라'는 제목으로 출판)과 함께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어떤 비평가는 본회퍼의 책은 식자층에게 그리고 쉘던의 이 소설은 다중(多衆)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In His Steps의 시대 배경은 19세기 중반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여파가 미국에도 몰아닥쳐 부(富)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었다. 빈곤층이 양산되어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만 했다. 공간적 배경은 레이몬드(Raymond )이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의 삼포(三浦)처럼,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공간적 무대 무진(霧津)처럼 가상의 도시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예수님 닮기(Imitation) 운동이 사람들을 통해 전개된다.

 

상류층 신앙인들의 기득권 내려놓기

 

이 책은 전부 31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심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레이몬드 제일교회 담임 헨리 맥스웰 목사, 건전한 기독교 언론을 추구하는 레이몬드 데일리 뉴스(Raymond Daily News) 사장 에드워드 노만(Edward Norman), 기업의 부정을 고발하며 개혁하고 한 철도회사 간부 알렉산더 파워즈(Alexander Powers), 미성(美聲)의 성악가이며 자신의 재능으로 빈민 선교 집회 찬양 사역에 헌신하는 레이첼 윈슬로우(Rachel Winslow), 많은 재산의 상속녀이며 그 재산을 사회복지 사업에 쏟아 붓는 버지니아 페이지(Virginia Page), 링컨 대학 학장이며 이후 레이몬드 시의 금주운동을 주도하는 도날드 매쉬(Donald Mash).

 

면면을 살펴 볼 때 사회의 상류층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거룩한 주일 날, 이들이 출석하는 경건해야 할 예배당에서…. 그 이름은 잭 매닝(Jack Manning), 이 사람은 인쇄공이었는데 공장 자동화의 물결이 밀려오는 과정에서 실직을 당한 노동자이다. 즉 자동식자기(自動植字機, linotype)의 도입으로 사람의 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구직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 사이 아내는 숨을 거두었고(영양실조에 의해였을 것) 아이는 동료 인쇄공의 집에 위탁해 놓고 있었다.

 

그 실직자가 예배 시간에 강대상 쪽으로 나와서 던진 말은 지금까지 평온하게 신앙생활을 해 오던 제일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고 말았다. 마치 바리새인들을 나무라던 예수님 같았다고나 할까.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아까 여러분은 '주와 함께 가려네'라고 찬송을 부르셨는데 과연 그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의 행적은,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스스로 고난을 당하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길 잃은 자와 고통 받는 자를 구원하려고 노력한 것이었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 제 아내가 뉴욕 시의 한 셋방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어린 딸을 함께 데려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 여러분,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21쪽).

 

산업혁명의 여파 속에 실직한 인쇄공의 죽음

 

믿는 자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Following In His Steps)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What Would Jesus Do?)는 앞의 말을 반복 강조한 것이다. 이런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인쇄공 실직자의 장례를 치르고 맥스웰 목사는 획기적인 선언을 한다. 1년간 온전히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로. 교인들의 호응도 커 약 50 여 명이 이 운동에 동참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에 헌신하기로 서약한다. 위에 예거한 사람들이 그 운동의 주축들이다.

 

데일리 뉴스 사장 에드워드 노만은 주일에도 발행하던 신문을 쉬기로 하고 술과 담배 광고를 금지하며 흥미 본위의 기사를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철도회사 간부인 알렉산더 파워즈는 자기 회사가 연방정부의 주간통상법(州間通商法)을 조직적으로 어기는 것을 고발함으로써 해직된다. 뛰어난 음성으로 고액의 연봉 제의를 뿌리친 레이첼 윈슬로우는 렉탱글 빈민 마을에 들어가 찬양으로 봉사한다. 고액 재산의 상속녀인 버지니아 페이지는 자신의 재산을 기독교 사회복지 사업에 쾌척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정신으로 신문을 발행해 적자 경영에 빠진 데일리 뉴스에 거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대학 교수로 자족하던 도날드 매쉬 학장도 상아탑을 벗어나 지역의 금주 운동에 뛰어 들어 지도력을 발휘한다. 이 사람들이 내걸고 실천한 슬로건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였다.

 

소설은 픽션(fiction)의 영역에 속한다. 즉 허구(虛構)이다. 그러나 있을 법한 허구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찰스 M. 쉘던의 In His Step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30개 언어로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면서도 신학자들과 문학평론가들이 도외시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진리는 허구와 공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작가 찰스 쉘던은 복음을 보다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의 방식을 택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재평가의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 현실 안주형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교계 상황을 직시할 때 이런 형식의 글로 사람들을 예수 앞에 바로 세울 수 있다면 비판이 아니라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될 것이다.

 

재조명되어야 할 찰스 M. 쉘던의 소설들

 

쉘던의 In His Steps는 17세기 존 번연(John Bunyan)이 쓴 <천로역정(Pilgrim Progress)>과도 비교된다. 존 번연도 침례교 목사이자 작가였다. <천로역정>은 우화소설로 역대 신앙서적 중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졌다는 점도 그렇다. 찰스 쉘던은 미국 회중교회 목사였고, 교회의 대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이 소설 외에도 이것의 속편에 해당하는 Jesus is Here 등 여러 권의 소설을 출판했다. 모두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적 삶을 강조한 것들이다. 쉘던은 In His Steps를 쓰기 전 직접 실직한 인쇄공으로 가장하여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말과 행동과 믿음의 불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신자유주의의 풍랑 속에 세상적 윤리와 질서가 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어 예수님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맘몬주의(Mammonism), 승자독식주의, 인본주의 등이 주님의 자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다. 기독교인의 윤리 의식조차도 희미해져 무딜 대로 무디어진 상태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 모두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묻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저술가인 에이든 윌슨 토저(Aiden Wilson Tozer)는 현대의 그리스도인을 회색 지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경고의 말이다.

 

찰스 M. 쉘던은 이 소설의 대미를 이 땅에 이루어질 이상적 사회 건설과 함께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환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동안 등장했던 인물들을 총 출동시켜 맥스웰 목사가 바라고 등장인물들이 생각하고 독자들이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해피 엔딩이다. 교회의 문간마다 성도들의 가슴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란 표어가 붙어 있는 것 같다. 이 땅에 천년왕국의 도래를 꿈꾸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한 마디 덧붙일 것, '고통을 다른 이에게 대신 받게 하려는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사업가든 시민이든 간에 반드시 예수님에게로 가는 희생의 행로를 따라 그 분의 발자취를 밟아가야 할 것입니다. 맥스웰 목사가 마지막 설교에서 강조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자본주의의 폐악 속에서 벗어나야 할 그리스도인

 

얼마간의 헌금과 몇 시간의 봉사 활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으로 주님께서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득권을 내 놓고 가진 것을 솔선해서 나누어야 한다. 초대교회처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행 2:44-46)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초대 교회 정신이 우리 기독교가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쉘던이 이 소설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상류층 사람들이 자기 것을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하라는 것이다. 목회자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소설의 에드워드 감독(Bishop Edward)과 나사렛 에비뉴 교회의 칼빈 브루스(Calvin Bruce) 목사처럼 자신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사역한 교회를 내려놓고 주님이 걸어가신 고통의 길을 기꺼이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일일까. 우리와 같은 연고주의가 뿌리 깊은 교계의 상황에서.

 

교계가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 있다. 세속적 삶에 신앙을 편승시켜 나만을 위한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 소설에서 시종 주창하고 있듯이 거룩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할 일만 남았다. 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서구 기독교의 과거를 그대로 닮아가는 모습이다. 지금 유럽의 기독교는 어떤 상태인가. 외형만 덩그러니 남고 텅텅 빈 예배당,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간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란 물음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서 WWJD 운동이 이 땅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하는데 쉘던의 이 소설이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n His Steps의 마지막 '단어'로 글을 맺는다. '아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복더위에 의미 있는 피서를 했다. 마른장마 속 폭서(暴暑)에 쿠바 여행을 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던가. 아열대에 위치해 있는 쿠바, 그 나라를 나에게 소개해 준 사람은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Aleida Guevarb March) 박사였다. 그녀는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5일이었다. 서울대 의대 행정관 3층 대강당에서 강연 하나가 열렸다.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서 주최한 강연이었는데, 강사는 위에서 밝힌 알레이다 게바라였고 주제는 '쿠바의 1차 의료'였다. 의료는 생명과 관련된 것으로 국민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분야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지 않는가.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국가 GDP로 따진다면 개발 도상 국가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의료와 교육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뒤지지 않아 여러 나라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보건 의료 관계자들과 정치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 보면 좋겠다.

 

알레이다 게바라는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해 2시간 강의를 하고 30분 정도 청중의 질문을 받고 답했다. 스페인어 강의에 영어 통역이어서 전체 내용를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해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국가의 의료 보험 체계와 나 개인의 건강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여름 피서를 이 책 읽기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쿠바의 1차 의료에 대한 강의 내용을 보완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의료 민영화 문제가 국민 각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욕심도 작동했다. 그 책 제목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이다.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가난한 나라 쿠바에 '천국'이란 수식어를 붙일 정도의 의료체계라니!

 

이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한 사람이 알레이다 게바라이니 그녀가 쿠바 여행을 소개한 사람이 되는 셈이고,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의료천국 쿠바를 재미있게 읽었으니 내겐 쿠바 여행을 다녀 온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음으로써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좋은 피서가 되겠다.

 

이 지구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건강하게 지켜 주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민 다수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쿠바의 의료 정책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철저하게 국민 다수를 위해 확립 운영되고 있는 의료 정책, 그들에겐 '돈'이 아니라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시스템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인 관리이다. 요시다 타로는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쿠바를 방문했고, 유기농 관련 문제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해서 관찰 탐구한 것을 리포트 형식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미 쿠바를 여행하고 의미 있는 여러 권의 책을 공간한 바 있다. <200만 도시가 유기채소로 자급 가능한 이유>, <세계가 쿠바의 고학력에 주목하는 이유>,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등 주로 리포트성 글들이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도서출판 파피에, 2011년)는 '들어가며','마치며'를 포함해서 총 5부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좋아했던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간적 의료가 아름답다'는 제목의 추천서도 따사로왔다.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읽어 볼 것을 권하지만, 우선 각 부의 제목에서 책에 담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도록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부 '단연 돋보이는 쿠바의 지역예방의료' 2부 '외화획득의 수단-전문의료와 의약품' 3부 '대체연료와 전자정보 네트워크' 4부 '국경 없는 의사단' 5부 '지속 가능한 의료와 복지사회 구조 만들기'로 되어 있다.

 

쿠바의 의료체계는 국가의료시스템이다. 국가에서 모든 의료 행위를 책임지는 체계이다. 암 수술에서부터 심장 이식까지 모든 의료비는 무료이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살펴볼 가치가 있는 의료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쿠바는 1차, 2차, 3차로 의료 체계가 나뉘어 있다. 이런 의료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이다. 쿠바 전체 의사 6만7천 명의 47%를 차지하는 가정의는 1차 의료 조직을 책임지고 있으며 환자의 98%를 커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쿠바 예방중심 의료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쿠바 혁명(1959년)을 성공하기 전의 의료체계는 순전히 미국식이었다. 철저히 가진 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스트로는 병원 갈 돈이 없어 죽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보고 소외 받아온 농촌 지역에서부터 의료체계를 정비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촌 지역에 의료 시설과 서비스를 집중 지원하고, 이런 곳에 양질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파견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과거 소련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1989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위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이 '쿠바 민주화법', '헬름스버튼 통상금지법' 등을 통해 대 쿠바 봉쇄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쿠바 정부는 이 기간을 '특별시기(special period)'로 명명하고 전체 국민이 연대하여 어려움을 공동 대처했다.

 

미국과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상황 아래 놓여 있었지만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교육과 의료 등 복지 예산은 늘렸다. 여기에 더해 의학 과학 기술에 대해 투자를 확대했으며 지진과 해일 등 재난 발생 국가에 대해 의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쿠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 솔선수범했다. 모두 꺼리는 체르노빌 원폭 피해자들을 적극 도왔고, 2005년 파키스탄에 지진이 났을 때, 그 이듬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 지진에 맨 먼저 달려가서 가장 나중에 의료진을 철수한 것도 쿠바였다.

 

그것뿐만 아니다. 헨리 리브 국제구조대를 조직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이웃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의료 지원을 아까지 않았고, 학생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인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LAM)을 세워서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1만~1만2천 명의 학생들을 무료로 교육시키고 있다. 의학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형편이 닿지 않는 우리나라 학생들도 ELAM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면 어떨까.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를 자급자족 경제로 진입하게 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나 할까. 의료 산업도 외국 의존에서 탈피해 대체 의료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접종되는 13종의 예방 백신 가운데 12종을 국산으로 대체했고, 항 콜레스테롤제, 수막염 백신, B염 간염백신도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쿠바의 바이오테크인데, 이런 자체 백신들을 개발도상국에 무상으로 지원까지 해 주고 있다.

 

쿠바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국민 소득도 높지 않은 가난한 나라지만 의료에 관해서만은 부자인 나라이다. 아프면 누구나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 전에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의료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유아 사망률(1천명당 5.2명)이 세계에서 가장 낮으며 평균 수명도 78세로 선진국 수준이다.

 

지금 우리는 의료 민영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의료 민영화는 미국식 의료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다. 흔히들, 미국식 의료체계는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첨단 의술을 가능하게 하지만,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이는 의료 체계라고들 말한다. 돈이 생명을 좌우한다는 얘기이다.

 

미국식 의료 민영화가 되면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맹장 수술을 할 때, 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은 6만 엔(약 80만 원), 우리나라는 평균 72~216만 원인데 비해 민영 의료 서비스가 발달한 미국은 244만 엔(약 3천2백만 원)의 병원비가 있어야 한다.

 

영국과 뉴질랜드의 복지 의료 제도가 무너져 내렸다. 공립병원 의료 서비스가 약화되고 이익이 나지 않는 지방 공립병원은 거의 폐쇄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대도시 몇 개뿐이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민간 주식회사 병원이다. 이들 민간병원은 이익 창출을 제일의 목표로 한다. 과잉 진료와 과다한 의료비 청구는 불은 보듯 뻔하다. 의사의 능력도 수익을 얼마나 올리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쿠바의 의료 제도는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이다.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류(潮流) 속에서 쿠바가 이런 생명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특유의 '호혜와 평등, 참여와 연대'라는 사회 가치에 기인한다. 의사도 생물학적이고 기계적이 아니라 주민 생활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연대의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쿠바의 의사는 지역 공동체에서 신뢰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쿠바의 국가의료시스템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쿠바의 의료 시스템은 3가지 주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고 둘째, 모든 국민은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무상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지며 셋째, 의료 지원은 지역에 상관없이 어디에 살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의료체계이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는 의사 혁명가였다. 혁명 성공 후 쿠바의 의료 체계를 확립하는 데 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체 게바라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 배나 더 가치가 있다.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은 높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축재할 수 있는 모든 황금보다도 훨씬 결정적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민중이 갖는 감사의 마음이다"​

 

우리와 비록 다른 환경과 조건이지만 그들 삶의 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의료정책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그것 외에도 사람을 위하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사람은 왜 가난한 나라 쿠바를 의료 천국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