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꾼 만들기
송기섭 지음 / 갈릴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아내로 인하여 유익을 얻는 일이 많다. 아내가 관계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가족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면 목회자인 남편도 그 안에 포함되게 마련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남편인 나에 대해서 좀 포장을 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고마워하면서도 또 좀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에 대한 기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무엇이든 배우기를 즐긴다. 마음에 드는 교육은 거리와 규모 또 강의료 등은 생각지 않고 열심을 보인다. 이번 숙대 상담교육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오백여리 길을 새벽 기차를 타고 갔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 일정이 피곤한 것임에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피곤함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신 그 날 있었던 재미 있었던 일, 소개하고 싶은 사람, 역까지 태워준 선행 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보고하기(?)에 바쁘다.

이 책은 아내가 상담 교육을 함께 받는 목사님으로부터 전달받은 선물이라며 가지고 왔다. 나는 책 선물을 제일 좋아한다. 이 책을 전해 받은 지는 한 달 포 가량되는 것 같다. 모양과 표지 색상이 먼저 예쁘고 자그마한 책이다. 안 페이지에 저자 송기섭 목사가 직접 전하는 기념 글까지 써넣는 정성을 보였다. 

"목양에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졸저를 드립니다. 송기섭 목사 드림" 

나는 가끔 저자로부터 그 책을 선물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반드시 읽어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감동받은 책은 서평을 쓰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 저것 바쁜 일이 중첩해 나는 며칠 전에야 이 책을 정독했다. 책 제목이 벌써 도발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도발적인 전도 이야기"로 정했다. 

이런 제목을 정한 것은 저자의 책 제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책 내용도 그것에 뒤지지 않았다. <전도꾼 만들기>라. '-꾼'이라는 접미사는 좋은 뉘앙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보통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을 폄하하여 일컬을 때 이 '-꾼'자를 붙인다. 노름꾼, 씨름꾼, 장사꾼, 술꾼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접미사를 거룩한 주님의 귀한 일 뒤에 붙이다니!

그런데 이런 단어를 쓸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일을 강조하기 위해서 반대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수사법에서는 반어법이라고 하는데, 이런 반어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확신이 있어야 하고 절대적 신념이 따라야 한다. 또 그런 경험을 풍부하게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이 강조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니 저자 송기섭 목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30년 넘게 목양 일념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특히 전도를 생명으로 알고 실천해 온 노고가 책 곳곳에 서려 있었다. 과연 송기섭 목사이니 이런 '-꾼'을 붙여 책 제목을 정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이 책은 모두 3단계 총 16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 임상 전도학 교재로도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만 해도 전도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접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1단계 기초원리는 전도에 대한 이론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장점은 그 근거가 모두 성경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에서 전도의 원리를 이끌어 내고 있어 먼저 신뢰가 갔다. 가끔 전도 소개 책자를 읽을 기회가 있는데, 어떤 책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관념만 난무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책은 실천 경험은 풍성한데 그것에 이론이 담지되지 않아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송기섭 목사의 <전도꾼 만들기>는 이런 점에서 독자의 욕구를 균형있게 충족시켜 주는 책이다. 즉 이론과 실천에 동일한 비중을 두며 전도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또 솔직히 말해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고 있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글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으면 읽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우려도 잘 반영된 책이다. 읽기가 편하고 쉽다. 먼저 그의 단문 위주의 글솜씨가 돋보이고, 글자 크기와 대중소 제목을 돌출로 처리한 것도 쉽게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시각적 요소들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정보 소통이 고도화되어가는 사회일수록 전도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특히 도회지 아파트를 주거 공간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파트 전도를 나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외면하는 바람에 전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송 목사는 이것에 대해서도 별 걱정하지 않는다. 기도가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있고 또 십자가의 영성이 있으면 전도 대상자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전도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일의 길목을 다 열어주시기 때문에 말씀에 의지해서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좀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그렇지 않은 것은 송 목사의 경혐으로 뒷바침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 소개하고 있는 전도 방식으로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그 부흥된 교회를 다른 후배 목회자에게 맡기고 다른 도전의 장으로 옮긴 사실은 그가 프로 전도꾼이 아니면 쉽게 보일 수 없는 행동이다.

그는 간간히 교회의 문제를 촌철살인의 정신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령 요즘 교인들을 이야기할 때 성경 말씀을 빌려 '알곡과 가라지'로 많이 비유하고 있다. 신실한 알곡 신자가 있는 반면에 그에 못지 않는 가라지 신자, 교회에 주님의 일에 방해가 되는 없어도 될 교인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좀 더 과학적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즉 교회 신자들 중에는 율법 시스템에 젖어 있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은혜 시스템을 따르는 신자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매사에 율법을 드리밀며 사람을 재단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의 바리새파 사람들의 부활이라고나 할까? 불평불만에 능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며 늘 교회 분란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혜의 시스템을 추구하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완해주려고 하고 약점을 채워주며 잘못을 용서해서 그를 주님 앞에 은혜로 바로 세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교회에 율법 시스템이 아니라 은혜 시스템이 작동되어 모든 교회가 부흥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읽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다. 전도는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한시도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일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중 앞자리에 위치한 것이 전도라고 하지 않는가. 기도, 말씀 묵상, 찬양 등 이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믿음의 지체들이 행하는 것은 천국 가서도 할 수 있지만, 전도는 이 세상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천국 가서는 더 이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모두 구원받은 영혼들로 이루어진 천국이기 때문에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도에 대한 말은 무성하되 열매가 많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올바른 전도 방법은 시대와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통하는 진리와도 비슷한 것이다. 송기섭 목사의 <전도꾼 만들기>가 전도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전도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책임감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꼼꼼이 읽고 전도에 나선다면 그만큼 결실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목회자 평신도 구분할 것 없이 이 책을 읽고 교회를 살찌우는데, 또 주님을 기뻐시게 하는데 이바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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