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지음 / IVP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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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에게 들어온 경로는 이렇다. 지난 학기 대학원에서 ‘영성’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이 책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책을 훑어보니 발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그냥 덮어두고 있었다. 지난 주일(12월 27일) 낮 예배 설교 ‘삭개오의 믿음’(눅 16:1-10)을 준비하면서 김 목사의 이 책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스도인, 부자로 살아도 되는가?’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기독교인들의 재물관에 대해 잘 정리해 놓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김영봉 목사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쓴 책도 처음 접한다. 지은이 소개 글을 보니 그는 대학 학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려운 경제 용어를 신앙과 쉽게 연결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 지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돈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돈이다. 이런 관계는 기독교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믿는 자와 재물과의 관계성을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시대와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아전인수로 해석해 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철저한 금욕생활부터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부 축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해 혼동을 자초케 한 측면이 없지 않다.

몇 년 전,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정리해 준 것이 ‘청부론’이다. 정당하게 돈을 벌어 십일조와 사회 구제 몫을 빼고 난 나머지는 개인과 가족을 위해 맘껏 사용해도 가하다는 것이 ‘청부론’의 요점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재물관 정리는 일단 환영을 받았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청부론’의 이런 주장은 부담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일단 사람 중심의 재물관 정리였다는 데 일정 부분 위안을 받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또 하나님 소유라는 원칙론에 일정 부분 부담을 안고 있던 사람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 준 것도 사실이다.

김영봉 목사는 이러한 ‘청부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 질서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사회는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환경과 조건도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사회인데, 경쟁이라는 논리가 지배함에 따라 부가 한 쪽으로 치우쳐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의 재물관은 한층 중요성을 띠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 목사의 논지는 이렇다. 우리의 수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어서 그것을 나와 가족이 쓸 것을 빼고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헌금했다고 해서 그리고 사회 구제에 일정 액수를 기부했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지나친 주장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것이 성서적이라는 그의 주장에 별로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돈에 대한 반듯한 생각, 제2부 욕망으로부터 자유한 삶, 제3부 나눔으로 풍성한 행복, 제4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섬김, 제5부 세상을 바꾸는 참된 힘이 그것이다. 각 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인과 재물의 관계에 대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도 각 부의 주제를 명확히 해서 독자의 이해를 쉽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나눔과 섬김’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 모더니즘 사회는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나눔과 섬김’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 당위성은 인정하더라도 사실 실천까지 잇기에는 쉽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만큼 쓰고 나머지는 섬김의 용도로 나누라는 그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에게 여간한 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기독교에 대한 내외의 비난 목소리가 높은 시점이다. 그 소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데 그것이 말로만 풍성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자본주의의 맹점인 매머드, 즉 큰 것만 추종하는 흐름에 기독교가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기독교가 변해야 한다. 그 변함에는 금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앞자리에 위치해 있다.

나는 김 목사의 재물관에 대한 주장이 그 변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부론’으론 부족하다. ‘청부론’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생각과 자본주의의 타협의 산물같이 보여 찜찜하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가 사회와 때로는 협력하고 또 때로는 긴장 관계를 이어 왔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흐트러진 기독교 물질관은 다시 사회와의 긴장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즉 ‘청부론’과 같은 타협책이 아니라 김 목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어렵지만 성경적 이해의 바탕 위에 설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김 목사의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한다면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교리로 말씀을 풀고 신앙의 맥을 이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시대는 지났다. 진정 말씀에 충실하게 복무하며 사랑을 갖고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행동이 따르는 사랑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김 목사의 이 책은 어렵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감동을 엮어내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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