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수학은 96점, 영어는 92점입니다. 언어는 공부를 덜 해서 90점이고, 과학은 생물1과 생물2는 얼마쯤 자신이 있는데 화학엔 아직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모의평가 뒤 찾아온 한 수험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8개월 만에 180점을 올리거나, 3개월에 100점이 뛰어오른 학생도 보았지만 이 학생의 점수 상승엔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30등쯤 했고 군대에 다녀와서 머리 속은 고교 때보단 더 비어 있었다던 학생이 넉 달 만에 의대 합격권에 근접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공부를 했냐고 물었다. 아침 6시 기상, 운동 30분, 학원 도착 7시10분이었고, 이후 학원 문을 닫는 밤 11시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15시간씩 공부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목표하는 올해 의대 합격은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길 듣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

 

이런 학생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수능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고 불안해 하는 학생들에겐 아직도 가능성이란 단비를 내려 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고 1·2학년 학생들에겐 새 학기부터라도 성실하게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레인메이커’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부 방법을 참고한다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빠르게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공부법이다.

 

■ 자기 주도 학습이 중요하다

 

성적이 급상승하는 학생들에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학원이나 과외 등으로 공부 시간이 과도하게 분산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길다는 것. 좋은 선생님에게 지도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머리를 회전시키고 정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앞서 말한 의대 지망생은 초기에 수학이 약하다고 생각해 하루 8시간씩 공부했다고 했다. 강의는 2시간쯤 듣고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썼다는 설명. 풀다가 막히면 고민하다 다음 문제로 넘어간 뒤 한 시간쯤 지나 다시 도전하기를 수 십 차례. 어떤 문제는 이틀 넘게 고민한 끝에 겨우 풀었지만 그때의 희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반면에 최근 만난 한 재수생은 하루에 수학 공부를 7시간이나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수학 성적은 떨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차근차근 원인을 찾아보았더니 자기 공부 시간은 30분도 안 됐다. 기숙 학원의 하루 수학 공부가 3~4시간이었고, 특강으로 수학 강의를 2시간 더 듣고 있었다. 그 뒤엔 동영상 강의 한 시간.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느라 자기 손으로 풀고 생각하는 시간은 짧았던 것이다.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정리해 머리 속에 차곡차곡 채우는 과정은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시간 배분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듣고 보며 무작정 선생님에게만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를 되돌이켜 보아야 한다.

 

학기 중에는 학원이나 과외를 일주일에 3회 이상 이용하면 자기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학교 공부 복습도 해야 하고 중간고사·기말고사 준비에다 수행평가도 해야 하는데, 과외나 학원 공부가 많으면 자기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아니, 그저 듣는 공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성적 향상은 자기 머리를 돌리며 정리하는 시간에 비례한다.

 

■ 계획표의 중요성

 

도면이 없이 좋은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계획표를 작성하지 않고 무작정 한다면 그 공부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가 하루에 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고, 과목별로 몇 시간씩 하는지를 모른다면 시험을 보고도 성적이 오른 이유를 분석할 수 없다. 하루 평균 1시간씩 영어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하락했다면 공부 시간을 1시간 반으로 늘리고, 그래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혹시 공부 방법의 문제점이 없는가도 살펴보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 합리적인 과목별 시간 배분을 위해선 시간표가 꼭 필요하단 얘기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 단위로 계획표를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과 후 시간이 5시간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날마다 모든 과목 공부를 하기 어렵다. 주먹구구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만 편중해 공부하기 십상이다.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한 뒤 시간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 하루 4시간씩 6일과 일요일 10시간을 합해 봐야 34시간에 불과하다. 학교 복습에 10시간, 학원 공부에 4시간, 학원 복습에 4시간을 배정한다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에 불과하다. 하루 한 시간, 일주일에 6시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라도 과목별로 잘 분배해 공부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을 짤 때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한 시간에 불과한 자기 공부 시간에 수학 30문제 풀기, 영어 지문 10개 해석과 단어 정리 식으로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시간에 열심히 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반복되면 자칫 공부에서 멀어질 수 있다.

 

■ 짧더라도 집중하는 공부가 좋다.

 

 

공부 방법과 공부 시간, 그리고 집중력이 성적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요인이다. 그런데 1등을 하는 학생이나 중간을 하는 학생이나 실제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비슷하다. 집중력의 차이가 성적을 좌우하는 것이다. 똑같은 시간 공부하더라도 잡념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과, 공상을 하고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 열심히 답해 주는 학생의 성적은 달라진다.

 

신경을 분산시키는 요소를 줄여야 학습의 효율이 오른다. 공부할 때는 휴대전화를 끄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책상을 잘 정리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재미있는 소설책이 눈 앞에 있고 참고서 문제집 더미가 책상을 어지르고 있는 상황에선 정신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 공부에 왕도는 없다

 

 “교과서 위주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잠도 푹잤다”는 말은 수석 합격생들의 3대 거짓말이라며 수험생들이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이 말에 대부분 공감한다. 성적이 상위 0.1%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이 말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82%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답했고, 6시간 넘게 잠잤다는 학생도 80%나 됐다. 학교 공부 과목과 수능 공부 과목이 똑같으므로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4시간만 잤다는 학생도 5%였지만 대다수는 잠자는 시간이 줄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며 잠자는 시간을 줄이기보다 자투리 시간을 줄여 공부 시간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비판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획기적으로 뒤집는 비법은 있을 수 없다. 공부를 잘하는 비법은 이미 모두에게 공평하게 공개돼 있다. 다만 그 공개된 방법을 실제로 자기 몸으로 실천하느냐에 성적의 높고 낮음이 결정된다. 자신감을 가지고 실천하면 보람찬 새 학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황치혁/황앤리한의원 원장, 수험생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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