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윤중진 지음 / 고려의학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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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법의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몇몇 형사물의 다큐멘터리나 외화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단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중진박사의 저서 <법의학>은, 법의학에 관해 강한 매력을 느끼지만 막상 전문적인 지식에 접근할 수 없어 답답했던 분들께는 가뭄에 단비내리듯 느껴지는 최고의 안내서가 아닌가 싶다.

저자인 윤중진박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법의학자로, 일선에 선지 30년을 넘기는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제껏 다뤄온 사건들과 주변 연구기관의 자료들을 합해 체계적인 법의학 입문서를 만들어내셨다. 책을 면면이 살핀다면 누구나 저자의 꼼꼼하고 치밀한 자료와 예시를 보며 그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법의학은 법과학과는 조금 다르다. 법과학이 모든 과학적 접근방법으로 범죄를 밝혀낸다면, 법의학은 오로지 사체와 사체 주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법의학은 일반적인 외과의가 아닌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법의학자가 다뤄야할 부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반의가 사체의 검시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작금의 상황이다. 법의학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일선 경찰의 인식 역시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이다.(근래에 밝혀진 개구리소년실종,사망사건에 대한 법의학자들의 사인규명에 경찰이 냉소적으로 반응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법의학자들이 타살로 규정하자 내심 사고사를 기대한 경찰은 '그러면 당신들이 범인을 잡으면 되겠다'고 비아냥거렸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의학 분야는 상당히 침체되어 있다. 사망사건에는 자동적으로 관여하게 되어 있는 선진외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사체가 여러 단계를 거치며 복잡한 수순을 밟기에 법의학자들이 소신 있는 의견을 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치과의사모녀살인사건'으로, 스위스 법의학자에 의해 한국 법의학자들의 소견이 반박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한국 법의학의 위신이 손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장에 접근할 수 없어 단순히 건네받은 자료로 2차적인 유추를 해야만 했던 한국 법의학자들의 한계가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만약 법의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저자가 머릿말에 올린 안타까움에 쉽게 공감하실 것이다.

글을 맺기 전에 한가지 주의드릴 것은, 절대 호기심으로 보는 것은 말리고 싶다. 현장에서 찍은 생생한 희생자들의 사진은, 분명히 호기심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법의학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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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3-11-2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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