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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한 장을 넘기기가, 한 글자를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직업,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라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속 그들의 삶 또한 내가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은 흥미롭고 새롭지 않다.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이 받는 부당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불리한 상황에 분노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뿌리내리고 있던 선입견을 만났다. 그 혼돈 속에서 그들이 받는 부당함의 괴리를 이겨내는 과정이 시간이라는 요건을 필요로 했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어떠한 위로를 받는다던가 희망을 얻는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립되지 않은 공간에 이상한 규율만 존재하는 것과 같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오하고도 무거운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책 한 장 읽는 게 이렇게 많은 체력을 요할지 몰랐지만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 복합적인 감정이야말로 이 책이 정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내 생각을 차차 정리해보려 한다.
우리는 선과 악 중엔 선을 선택하고 악과 절대악이 있다면 악을 응원한다. 상대적으로 선한 사람을 응원하고야 마는 심리 때문인데 그런 심리를 이 책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 속에서 피폐해졌다. 그리고 종잇장만큼이나 가벼운 존재들로, 노예들로 부려졌다. 그곳에서 나는 노예들을 응원하고 있었는가 하면 희망과 기대라는 것이 생길 수도 없을 만큼 황폐한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무겁고 어두운, 그들의 피부색만큼이나 짙은 그림자가 깔린 악(惡)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 또 다른 개념과 부딪힌다. 그곳을 악이라고 한다면 악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노예들을 모두 선한 개념으로 넣을 수 없었고, 악 속에 있다고 모두를 악으로도 볼 수 없는 이 공간에 대한 가치를 다시 판별해야 했다. 이제껏 갖고 있던 선과 악을 구분하던 개념을 부수고 새로운 정의가 정립되어야만 이 이곳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한 가지의 불행이 앞을 가로막을 때 또 다른 불행도 짝을 지어 함께한다.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힘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불행에 취약한 이유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 내 불운이 유별난 일이라는 생각.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만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무리 타인을 이해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진짜로 끔찍한 상황은 세상에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하기에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넌 자유야."
자유시간을 가지세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우리가 말했던 자유는 진정한 자유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코라가 너무도 원하던 교육, 책,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백인들은 너무도 쉽게 썩히고 있을 때 우리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학교 수업을 들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그때. 내 멋대로 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을까 하는 사춘기와 같은 것들. 이는 결국 우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자유 속에서 또 새로운 일탈을 꿈꾸는 정도였을 뿐이다. 삶이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있기에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소유물, 재산, 물질 정도로 치부된 채 일생을 사는 그들에겐 '나의 삶'을 가지게 되는 것 자체가 자유였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순서는 순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적당한 규칙성을 가지고 순행, 역행을 반복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또 다른 이름들. 별명이나 누구의 엄마와 같은 것들의 활용성이 너무도 높아서 책장을 넘겨야만 이 이름을 가진 인물이 내가 아는 인물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앞장, 뒷장을 펄럭이며 읽어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책이다. 이 이상한 반전은 극의 반전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만 아는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책은 신기하게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흘러가는 대로 놓아버리면 읽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책의 앞장, 뒷장을 펄럭이는 행동 자체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호흡하는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지하철도'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있는 지하철을 떠올리기 쉬운데 나는 광산을 지나다니는 레일을 상상하며 읽었다. 무척이나 비밀스러운 공간이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 책 속에 나오는 지하 철도는 원래는 진짜 철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책의 끝부분을 읽고 나서야 노예들을 돕는 사람들만의 은어였고 그를 작가가 상상력으로 풀어낸 것이구나, 실은 책 속에서보다 더 기구한 운명들이 많았겠구나. 한 장을 읽기가 힘들었던 이 책은 실제보다 극적이고 어찌보면 더 아름다웠던 거라는 걸 알게되었다. 허구의 황폐함을 잊으려 진실을 찾으니 진실은 허구보다 비참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는 명확해졌다. 우리가 말하던 자유와 그들이 갈구하던 자유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 모두가 자유다. 나는 자유 속에서 또 다른 자유를 외칠 것이고, 그들의 완전한 자유를 염원할 것이다. 그게 내가 내린 자유의 정의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맑고 희망찬 세상을 마주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 전보다 세상을 보는 식견이 넓어질 것이다.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대입하지 말고 책 속에 스며들어 한 자 한 자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