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 POWER made easy - 미국 대학 최고의 영단어 명강의 WORD POWER made easy
노먼 루이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윌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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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책은 많지만 실용도가 높았던 단어책은 사실 만나보지 못했다. 단어와 뜻, 예문이 끝인 단어 책이 많았기 떄문인데 이 책은 특별해보였다. 단어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어휘력을 키워주는 방식은 단순히 단어 암기 뿐만 아니라 영어의 전반적 이해를 돕는다니 너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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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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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두께에 금방 읽겠구나 생각하고 책의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내 자그마한 책 속에 펼쳐진 미묘한 세계를 만났다. 



우리 인생에 아이러니가 얼마나 많은지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별자리 운세, 손금, 타로점과 같은 점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점을 믿는 사람을 만나면 무시한다. 자신이 처음부터는 아니어도 어느 순간 믿어버린 점을 타인이 믿고 있으면 무시하고 심하면 비난하기까지에 이른다. <느빌 백작의 범죄>에서는 대부분이 저지르는 '아이러니'를 이용하여 진정한 풍자를 보여주겠다고 초반부터 선포하고 있었다. 

예언이라는 말 한마디의 효력이 큰 이유는 가장 행복하거나 가장 불행한 시기에 드라마틱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이 힘들면 점을 보러 가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괴상한 징크스와 함께 하는, 그 모든 것이 이와 같은 작용이다. 느빌 백작이 만난 예언도 자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을 팔아야 하는 시기에 마지막 파티를 앞두고 듣게되었다. 이런 상황이었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 지점에서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느빌 백작은 자신의 살인 예고를 이렇게나 두려워하고 고민했을까? 아마도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진 못했을 것이다.



<귀족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권리, 그리고 훨씬 많은 의무를 진다는 걸 의미한다.>

살인 예언으로 이어진 미스터리에 집중이 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귀족들의 고질병 같은 이상한 집착에 초점이 갔다. 자신의 살인을 기획하는 단계까지 다가갔던 느빌은 어떻게 해야 가장 귀족다울지 고민하게 된다. 결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느빌 백작이 어떤 누구를 살인해도 상관이 없었고 예언이 틀려서 아무도 죽지 않게 되더라도 괜찮았다. 그의 삶에 연민이 생겼고 귀족들의 지긋지긋한 삶에 진절머리가 나던 것이 어느순간 웃음이 새어나왔다.



'범죄'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이만큼 맹탕 같은 소설이 있을까 싶을 것이다. 읽고 난 후에는 우화나 동화를 읽은 듯한데 그만큼 '범죄'는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도화선일 뿐, 중요한 주제는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느빌 백작의 완전한 성장기로 보이기도 하는데 어릴 적 겪었던 느빌의 아픔과 더불어 그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돌보지 않았던 지난날의 자신을 토닥여주고, 아름다운 두 자녀와 동떨어져있는 세리외즈의 르상티를 궁금해하는 아버지로서의 면모까지 다듬고 있다.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는데 <느빌 백작의 범죄>로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다. 깔끔하고 정갈한데 유쾌하고 익살스럽다. 많은 소설들에서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래도록 찾고 있던 풍자의 유희를 오롯이 풀어낸 듯하다. 아멜리 노통브 작가의 작품은 처음으로 접하는 것인데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가였다. 

<괴물 같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다운 소설에서 무기가 나오면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느빌의 상식을 총을 빼앗아 던지는 세리외즈의 비상식으로 부수는 장면에서는 묘한 쾌감까지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의 상식과 비상식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괴물 같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작가가 강조하는 말 또한 우리가 어떻게 그를 받아들이느냐의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괴물 그 자체로서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고 괴물이 그 어느 날엔 상식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느빌 백작의 범죄>는 시종일관 딱딱하지만 유쾌하고 매력적인 문장들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는 마치 비극과 희극의 양날을 가진 검을 만난 것과 같다. 그 검은 깊게 내면을 파고들어 아멜리 노통브라는 미묘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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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이니
배영익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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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눈길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나'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매우 필사적이고 절실해 보였는데 그만큼 폭설은 그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프롤로그가 내게도 폭설로 인해 꽉 막혀버린 상황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눈이 녹은 후에, 혹은 눈을 이겨낸 후에 맞는 진실이 더욱 궁금해졌다. 베일에 가려져있기에 더 흥미로운, 그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 어느새 나 또한 함께하고 있었다.



이 책이 비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자면 설화를 인용했다는 게 첫 번째다. '도깨비감투'는 감투를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사람이 점점 더 욕망에 부풀어 범죄를 일삼다가 결국 벌을 받는 설화다. 이 설화를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이라는 소재의 소설에 적용시킨다면 보통 범죄자에게 감투를 선물하지 않을까? <내가 보이니>는 '기담'이라는 인물에게 감투를 먼저 선물한다. 그가 범죄자일지 아닐지 모를 혼돈의 열쇠를 하나 쥐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이는 '나'와 '기담'의 이야기가 챕터별로 번갈아가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될지, '기담'은 대체 어떤 사람일지 한 번에 여러 개의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 동떨어진 듯한 선들을 어떻게 엮어서 그물을 만들어야 할지는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는 우리의 몫이 되었다. 

작가는 그물을 촘촘하게 만들어 범인을 찾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다. 다만 범인은 교묘하고도 똑똑하여 쉽사리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여러 번의 상황들이 실제로 범죄심리학자들이 그려내야만 하는 범인의 윤곽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 권으로 프로파일링을 간접경험하는 기회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용의자가 확실해? 확인해봐!








책의 절반 정도가 지났을 무렵, 범인의 윤곽은 뚜렷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책장이 절반가량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니던가, 범인을 놓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꽤나 많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었다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재미로 추리를 하며 읽던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진짜 범인을 만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위 사진에 내용은 책을 거의 다 읽어갈 4분의 1 정도 남았을 때 나온다. 저 생각은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지겹도록 따라붙는 불안함이었다. 용의자가 눈앞에 있다면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렐까, 놓칠 것 같아 두려울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감정 없이 미친 듯이 그를 잡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일까. 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책 속의 인물들이 실존 인물들처럼 느껴졌다. 이는 분명 소설인데 이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는 행동까지 이어질 정도로 너무 생생한 이야기였다.




"방금 우리가 본 게 뭐였죠?"
"모르겠어요. 저 괴물이 뭐가 될지. 어떻게 변할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인물들을 괴물이라고 한다. 근데 그런 괴물이 괴물 같은 물건을 갖고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서는 '절대반지'라는 절대적인 물건이 나오는데 이 책에서는 그 물건을 '도깨비감투'라고 말했다. 외국의 영화를 먼저 떠올렸는데 우리나라의 설화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도깨비감투'를 떠올리니 또 다른 영화 해리 포터에서 해리가 이용한 망토가 연상됐다. 자꾸만 외국의 영화나 이야기만 생각나니 이토록 우리나라에 관심이 없었나 싶기도 했다. 작가가 던진 조그마한 돌이 거대한 파장을 만들어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절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평행선이 사실은 사선 두 개가 겹쳐진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다. 모든 장면들이 허투루 넘어간 적이 없을 정도로 촘촘히 짜여 있었는데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인용되어있는 글들이 그중 하나였다. 인용을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계속 흘러갈 수 있었는데도 작가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흥미를 돋우는 역할인 줄 알았으나 소설이 아닌 현실 그 자체로 보이도록 만들었고 챕터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기도, 더불어 설명해주는 해설서의 역할도 해주었다. 꽤나 중요하게 보이던 조건들이 결국엔 쓸모없는 것이 되는(소위 말하는 맥거핀 효과) 이야기를 기피하는 나로서는 흩뿌려져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질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책을 읽을 당시, 나는 링거를 맞을 정도로 꽤나 아픈 상태였다. 책이 두툼한 편이라 느껴지는 무게감에 팔이 저릴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장을 읽으면 다음 장이 궁금했고 그 다음 장을 펼치면 다음 챕터가 궁금했다. 그렇게 한두 장 읽다 보니 결말에 도달했다. 내가 아픈 게 거짓인가 싶을 정도로 몰두해서 책장을 넘긴 것인데 읽고 나니 몰려오는 통증에 이 책은 진통제 기능까지 겸비한 것인가? 실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보이니>를 단순한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맞닿아있는 현실과 마주치는 순간이 많다. 그렇다고 현실로만 보기엔 이는 명백한 소설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유난히 책을 읽으면서 물음표를 많이 붙인 책이었는데 그만큼 특정한 곳에 초점을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폭설을 이겨내고 만난 놀라운 작가에게 박수를 치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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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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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한 장을 넘기기가, 한 글자를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웠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직업, 상황 속에서 이뤄지는 것들이라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속 그들의 삶 또한 내가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은 흥미롭고 새롭지 않다.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이 받는 부당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불리한 상황에 분노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뿌리내리고 있던 선입견을 만났다. 그 혼돈 속에서 그들이 받는 부당함의 괴리를 이겨내는 과정이 시간이라는 요건을 필요로 했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어떠한 위로를 받는다던가 희망을 얻는다던가 그런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립되지 않은 공간에 이상한 규율만 존재하는 것과 같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오하고도 무거운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책 한 장 읽는 게 이렇게 많은 체력을 요할지 몰랐지만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 복합적인 감정이야말로 이 책이 정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내 생각을 차차 정리해보려 한다.



우리는 선과 악 중엔 선을 선택하고 악과 절대악이 있다면 악을 응원한다. 상대적으로 선한 사람을 응원하고야 마는 심리 때문인데 그런 심리를 이 책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 속에서 피폐해졌다. 그리고 종잇장만큼이나 가벼운 존재들로, 노예들로 부려졌다. 그곳에서 나는 노예들을 응원하고 있었는가 하면 희망과 기대라는 것이 생길 수도 없을 만큼 황폐한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무겁고 어두운, 그들의 피부색만큼이나 짙은 그림자가 깔린 악(惡)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 또 다른 개념과 부딪힌다. 그곳을 악이라고 한다면 악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노예들을 모두 선한 개념으로 넣을 수 없었고, 악 속에 있다고 모두를 악으로도 볼 수 없는 이 공간에 대한 가치를 다시 판별해야 했다. 이제껏 갖고 있던 선과 악을 구분하던 개념을 부수고 새로운 정의가 정립되어야만 이 이곳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한 가지의 불행이 앞을 가로막을 때 또 다른 불행도 짝을 지어 함께한다.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힘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불행에 취약한 이유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힘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 내 불운이 유별난 일이라는 생각.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만 인간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무리 타인을 이해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진짜로 끔찍한 상황은 세상에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하기에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넌 자유야."

자유시간을 가지세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우리가 말했던 자유는 진정한 자유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코라가 너무도 원하던 교육, 책,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백인들은 너무도 쉽게 썩히고 있을 때 우리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학교 수업을 들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그때. 내 멋대로 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을까 하는 사춘기와 같은 것들. 이는 결국 우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자유 속에서 또 새로운 일탈을 꿈꾸는 정도였을 뿐이다. 삶이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있기에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소유물, 재산, 물질 정도로 치부된 채 일생을 사는 그들에겐 '나의 삶'을 가지게 되는 것 자체가 자유였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순서는 순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적당한 규칙성을 가지고 순행, 역행을 반복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또 다른 이름들. 별명이나 누구의 엄마와 같은 것들의 활용성이 너무도 높아서 책장을 넘겨야만 이 이름을 가진 인물이 내가 아는 인물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앞장, 뒷장을 펄럭이며 읽어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책이다. 이 이상한 반전은 극의 반전이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들만 아는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책은 신기하게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면, 흘러가는 대로 놓아버리면 읽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책의 앞장, 뒷장을 펄럭이는 행동 자체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호흡하는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지하철도'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있는 지하철을 떠올리기 쉬운데 나는 광산을 지나다니는 레일을 상상하며 읽었다. 무척이나 비밀스러운 공간이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 책 속에 나오는 지하 철도는 원래는 진짜 철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책의 끝부분을 읽고 나서야 노예들을 돕는 사람들만의 은어였고 그를 작가가 상상력으로 풀어낸 것이구나, 실은 책 속에서보다 더 기구한 운명들이 많았겠구나. 한 장을 읽기가 힘들었던 이 책은 실제보다 극적이고 어찌보면 더 아름다웠던 거라는 걸 알게되었다. 허구의 황폐함을 잊으려 진실을 찾으니 진실은 허구보다 비참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는 명확해졌다. 우리가 말하던 자유와 그들이 갈구하던 자유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 모두가 자유다. 나는 자유 속에서 또 다른 자유를 외칠 것이고, 그들의 완전한 자유를 염원할 것이다. 그게 내가 내린 자유의 정의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맑고 희망찬 세상을 마주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 전보다 세상을 보는 식견이 넓어질 것이다.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대입하지 말고 책 속에 스며들어 한 자 한 자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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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1 : 1954~1956
토베 얀손 지음, 김민소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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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미래를 고민하기보단 지금 당장에 즐거움을 찾았다.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들이 펼쳐지고 내가 꿈꾸는대로 세상이 움직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일까. 하고싶은게 있다면 직접 만들어가야하고 갑과 을, 모든 관계속에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민 코믹 스트립1>을 읽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지라도 즐거웠던, 책임의 무게보다 행복한 감정이 우선시였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하얗고 둥그런 생김새만큼이나 티없이 맑고 순수한 무민이 등장했을 때 마냥 귀여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귀여운 아이는 어떤 성격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자신의 집인데도 손님을 대접하느라 눈치보고 고생하며 축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았을 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감정이 드리웠다. 귀여운 외모만을 보고 그의 삶도 발랄하고 꽃향기가 가득한 날의 연속이겠거니 속단해버린 것이다. 그 때 편안하게 눕듯이 앉아있던 포즈에서 자세를 바로잡는 시기가 되었다. 만화라고해서 만만하게 보거나 쉽게 볼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첫 챕터부터 느꼈기 때문이다.



위 글까지만 읽는다면 무민이 무겁기만 한 이야기가 아닐까 조바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조바심은 내려놔도 좋다. 깊이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진지하게 웃음기 하나없이 할 수도 있고, 재치있고 가볍게 내용을 말할 수 있다. 깊이있다고 해서 무거울 필요만은 없다는 것이다. 무민의 엉덩이를 보고 폭탄이라고 말하는 섀도만 봐도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당장 웃음기 서린 얼굴을 하고있다고해서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 서술하더라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장화가 너무 크다고 왜 말 안 했어. 무민마마가 작은 신발을 준비해 줄 거야.'
'제 발이 엄청 감사하대요!'

문장으로만 봤을 때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이 매우 익숙하다고 느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조건적인 존칭으로 물건과 같은 사물에도 높임말을 쓴다. 또한 생각보다 많은 상황 속에서 애완동물이 사람보다 더 대우받는 세상 속에서 살고있다. 그렇기에 사람이 아닌 것에도 인격화하는 게 익숙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러한 이유때문에 저 표현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발이 감사하단 표현이 이것 저것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귀엽게만 느껴진다. 그건 이 문장이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순수한 표현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로 저 표현에 웃음 짓고 말았다.



섀도는 꾸준히 책 속에 등장한다. 그런데 섀도의 역할이 대체 어떤건지, 섀도는 누구인지,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 때 무민은 이런 작은 아이에게 눈길을 준다. 이 상황은 주연이 조연도 카메오도 아닌 지나가는 행인1에 관심을 주는 것과 같은데 순식간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깨버린다. 지나가는 행인1이 단숨에 씬스틸러, 감초가 되어버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무민에게는 많은 일들이 생긴다. 슬프고 우울한 상황들, 상처받고 화내는 모습들. 다양하다. 그 많은 부분들이 있지만 무민을 위해서 스노크메이든을 찾는 섀도를 보고 눈물이 났다. 까맣고 특징 없지만 죽는 한이 있어도 무민을 위하겠다는, 작지만 거대한 마음을 가진 작은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감동을 받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우수한 작화도, 빈 곳 하나 없이 완벽한 것들이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고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는 그런 작품들에 우리는 마음을 연다. 조금은 부족한 모습이 나와 같고, 왠지 볼품없는 처량함이 나를 닮았다. 그런 공통점에서 시작해, 그 끝에 이들이 행복해진다면 내게도 희망이 생긴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나를 닮은 네가 잘된다는 건 나도 잘될 거라고 말해주는 묘약과도 같은 것이다. 이 책에서 강렬하게 존재감을 어필하는 건 그러한 공통점이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지만 또 다시 웃고, 웃다가도 슬픈 일 앞에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잊고 산다. 지금 당장이 힘들면 세상이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파하고, 지금 너무 행복하면 미래까지도 반짝거릴거라고 믿고만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어도 상관없다. 무민의 가족과 함께하면 몰상식이 상식을 이기고 어쩌면 그것이 상식이 된다. 그 누구도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말이 되는 일들로 변하는 마법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무민 가족들과 함께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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