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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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기 전부터 표지그림이 들어왔다.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이 그림의 제목은 에드가 드가의 <압셍트, 카페 안의 소녀>. 그녀의 표정에서 알듯 모르듯 풍기는 분위기는 책을 읽지도 않은 나에게 보들레르의 느낌을 느끼게 해줬다. 그런 여인을 빤히 쳐다보는데 굉장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책장을 넘겼다.

지금까지 배워 알고 있듯이 산문시로 이루어진 『파리의 우울』은 보들레르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댄디즘의 빠져있던 그의 삶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은 파리라는 그 시대의 대도시를 풍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이 발표된 때의 파리는 예술의 도시로, 많은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었다. 그런데 보들레르에게 있어 파리 안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상황은 그저 그런 ‘권태’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도시에서의 삶은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가난한 자들과 어린 아이, 늙은이들이 즐비 하는 곳이면서 유혹적인 것들도 즐비하는 곳으로, 그들의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는 인간이라는 동물을 ‘죄 없는 괴물’로 만들었다. 결국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괴물’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이유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우울(멜랑꼴리)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서 우울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울이라는 것은 대상상실로 인한 병이다. 쉽게 말하면, 왜 우울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왜 우울한지 안다면 그것은 애도(哀悼)라고 본다. 이렇게 어떤 대상을 상실했다는 면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한 괴물로 보이니, 보들레르의 말에 수긍이 간다. 우리가 주기적으로 겪는 우울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우울증을 없애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권태와 우울은 도회인들이 느낀다는 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으며, 보들레르는 작품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권태와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들레르는 퇴폐적 에로티시즘이라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소비시킨다. 퇴폐적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소비함으로써 파리라는 도시사회에서 일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우울과 권태의 원인은 도시라는 근대적 산물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도시에 등장하는 인간은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자들이다.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에 대한 통찰을 강조한다. 그는 퇴폐적이고 에로티즘적인 모습 속에서 도시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자신을 탕진하고 소비하는 것은 괴물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기회이다. 퇴폐적인 것은 술과 마약(여송연, 대마초)으로, 성적 욕망은 쾌락을 넘어서 죽음의 충동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의 ‘디오니소스의 도래- 보들레르도 바그너를 좋아했다'와 바타이유의 ‘에로티시즘’을 관련지을 수 있겠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작품의 한 부분을 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배받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 - 33. 취해라


이렇게 보들레르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붙이면서 도시 속의 우울을 비통하고 서글픈 삶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나는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작은 휴머니즘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 끝에 실행한 자이다. 지금까지 적어본 거와 같이 보들레르의 문학적 위치는 중요하다. 그는 어두운 세상 속 하나의 등불, 아니 담뱃불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그의 열정에 박수가 나온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못하는 나는 나도 모르게 도시의 다를 것 없는 권태에 물려 구역질을 한다. 그래서 보들레르가 좋다...

그의 마음을 알고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앞에서 압셍트 한잔 같이 마시고픈 심정이다. (나도 똑같은 도회인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그를 위로하랴! - 꽤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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