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인문과학 코스모스 1
앙리 피렌 지음, 강일휴 옮김 / 삼천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볼테르, 에드워드 기번 등 근대 계몽사가들은 3세기에 시작하여 4세기 본격화된 게르만의 침략으로 인해 고대 로마 문명이 멸망하고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들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게르만의 침략이 오히려 로마 문명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고대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서양 세계에 중세를 가져온 것은 이슬람이라는 저자 앙리 피렌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서양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사를 갖는 고전이다. 유럽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물음에 중요한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내용 요약 ▼

 

  1장은 게르만의 침입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르만은 3세기부터 기후 변화로 인해 서아시아의 훈족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이주해옴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로마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찬란한 로마 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개했으며 그 숫자도 로마인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그들 중 일부는 로마를 동경하고 로마인이 되고 싶어하기도 했다. 로마 황제의 대는 끊겼지만 로마는 지속되고 있었다. 실제로 교황의 동의 하에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간 동로마는 로마의 영향력을 그대로 행사하고 있었다.

 

  라틴어는 유지되었고 사회경제의 기반인 토지, 재정 정책도 유지되었다. 행정직은 로마 귀족들이 도맡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라도 그들은 로마가 필요했다. 그들이 로마 지배체제를 붕괴시키기는 했으나 게르만족은 본래 유목민이었고 로마에 정착하면서부터 더욱 복잡한 행정적 체계가 필요해짐에 따라 로마의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부분은 게르만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의 지중해 문명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는 지중해를 통해 동방 세계와 활발히 교역하고 있었고 헬레니즘 문화는 로마의 문화와 맞물리며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르만의 침입은 이와 같은 동방 문화를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했다. 동쪽에서 이주해오면서 동방의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게르만은 비잔티움을 바탕으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저자는 게르만 침입 이후에도 지중해의 동방 교역이 여전히 활발했다는 증거로 비단, 향신료, 파피루스, 금이 풍부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2장은 8세기 이슬람에 관한 내용이다. 게르만의 왕국들이 보기에, 이슬람족은 상당히 미개했고 게르만인들은 그러한 그들에게 거의 위협을 느끼지 않은 듯하다. 이베리아 반도는 무방비 상태였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상징적인 포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그가 죽은 뒤에는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팽창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슬람은 게르만 국가들 사이에서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신속한 승리를 거둬 나갔다. 게르만은 이슬람의 생소한 전투 전술을 바탕으로 한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슬람은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만의 발전된 종교였다. 이슬람교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슬람의 침입이 종교적인 측면을 수반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게르만의 침입과 본질적 면에서 달랐음을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이슬람의 침입은 지중해 문명을 파괴했다. 지중해 문명의 핵심은 서방과 동방과의 교역이다. 그러나 이슬람이 비잔틴 제국 함대의 거센 저항에 서지중해 지역만을 차지하게 되자 전례없던 동서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비단, 향신료, 파피루스는 더 이상 수입되지 않았고 사치스러웠던 왕실은 검소해졌다. 파피루스는 양피지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실의 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금화에는 은이 섞이기 시작했으며 풍부한 금을 바탕으로 권력을 잡았던 왕은 경제적 생활의 원천이 토지로 전환됨에 따라 토지 소유 귀족들에게 실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의 교황은 더 이상 서방 세계를 향한 비잔틴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게르만 프랑크 제국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 제국의 샤를마뉴는 교황의 영예를 등에 업고 기독교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로써 중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기독교의 세속 권력에 대한 우위가 이루어졌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슬람의 침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