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란 1 기란 3
비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윤은 황제입니다. 그는 비록 황제의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항상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황권을 다시 세워 어리석은 선황들의 치세와 두명의 태후의 다툼속에 어지러워진 진을 재건하는 것.

그런데, 그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서촉에서 정략혼의 대상으로 보내온 양기란, 그녀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영민하고 솔직합니다. 혈육인 휘를 제외하곤 자신을 이용하려 하거나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만을 접해왔던 윤은 그를 황제로서 존중하지만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를 대하는 기란에게 빠져듭니다.

지극히 황제다운 계산으로, 그러나 황제답지 않은 방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가 음모에 그녀를 잃어버린 윤은 이번에는 지극히 황제다운 방법으로, 그러나 황제답지 않은 목적인 '기란을 되찾는 것'을 달성하기로 합니다.



기란을 다른 황궁배경 로맨스와 차별시키는 요소로는 먼저 캐릭터를 들 수 있습니다.
 

윤은 굉장히 매력적인 남주입니다.

사실 그동안의 가상국 로맨스 남주들은 윤보다는 휘에 가까웠지요. 사랑을 위하여 나라를 기울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타입이었지요. 결국 위기를 극복하긴 합니다만 사실 제가 남주의 충신이라면 여주부터 제거해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

몇몇 남주들이 '위정자'로서의 냉철함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이런 경우 비호감 남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드디어 이상적인 위정자와 만족스러운 로설남주라는 양다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남주를 보았네요.
사실 윤만큼 자신이 만들어나갈 국가의 청사진, 이상적인 황제의 모습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를 확립한 군주 캐릭터는 권력다툼이 단골소재인 국내 판타지 소설에서도 찾기 힘들겁니다. 2권에서 자신의 과연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을 기란에게 토로하는 윤의 모습은 정말 좋았답니다. 

게다가 기란 앞에서만은 '나'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라니. 아주 '남들한테는 칼날같지만 여주앞에서는 봄바람이라는' 로설독자의 로망을 충족시켜 주더군요. 기란 앞에서는 뻔뻔해지고 때로는 상처입으며 때로는 협박도 불사하는 황상께 어느새 만세만세 만만세를 외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더라는.(먼산)


기란도 자주 볼 수 없는 타입의 여주였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본래의 성격이나 심정의 변화과정 모두가 현실감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착하지도 너무 올곧지도 않지만 정이 가더라구요. 기란이 애써 유지하고 있던 '적당히'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자불태후에게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했구요.

사실 저는 기란만큼이나 젊은시절의 효열, 즉 완안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두사람이 다른 결과를 맞게 된 이유의 큰 부분은 윤이 몹쓸 태종과는 많이 다른 바람직한 남자여서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기란 이 효열과는 다른 의미에서 강한 여자여서 였다고 생각합니다. 완안은 황궁의 담이 세워지기도 전에 황궁의 생리에 굴복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는 강자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기란은 달랐으니까요.(자세히 쓰자니 스포의 우려가.)


그외 조연 캐릭터들도 모두 성격이 잘 잡혀있습니다. 갑자기 딴 사람으로 변화하는 일도 없지요.(솔직히 로설에서 개과천선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란은 황궁이라는 배경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사는 곳, 황궁의 붉은 담은 황궁을 바깥공간과 철저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황궁은 야맥의 눈을 빌리자면 가장 보잘것 없는 시녀까지도 좋은 옷을 갖춰입는 곳이지만
기란의 눈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이 맞는 걸 보면서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곳입니다.
천하의 부와 권력이 집결되어 있고, 욕망은 넘쳐나는 대신 인간미는 결여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공간.

기란에는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만 이들이 황궁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니 이해가 되더군요(메두사에서는 히로미 검사는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오히려 이런 성격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들과 음모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해주었습니다.


흥미진진한 사건과 음모도 기란의 재미에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인물들에게 계략과 음모가 거의 생활화되어 있다고 할까요. 따라서 2권을 읽고 난후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의 수도 많습니다. 3권에서 드이어 음모가 풀려나가는 과정도 굉장히 극적입니다.(몇몇 마마님들도 누구를 의심하셨을 테지만,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호오가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워낙 음모가 방대한 까닭에 두사람의 사랑을 다룬 분량이 줄어드는 감이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점 때문에 오히려 '3권 보고싶어, 우엉우엉' 모드가 되어버렸습니다만, 로설은 남주와 여주의 사랑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아쉬우실 수도 있겠어요. (음모의 해결과정에서 한사람이 너무 부각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또한 작지만 아쉬운 점입니다.) 


표지는 저는 매우 좋았습니다. 책이 좀 얇긴 한데, 파란과 A5사이즈의 책들이 글자간격이 조밀한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설원의 연인 사이즈로 2권이 나와줬으면 고마웠겠지만 일단은 그쪽보다 페이지수가 더 많으니까요.


줄이자면  이정도의 흡입력과 포만감을 준 로설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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