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왈츠 - 2023 북스타트 선정도서 The Collection
박은정 지음 / 보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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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사무보조 알바를 하며 질리도록 봐온 사물들이 춤을 추고 있다. 클립, 고무줄, 스테플러, 테이프 등 손에 질리도록 익은 사물들이다. 그렇다고 그 사물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감만큼이나 호감도 없다. 사물들은 일상 속에서 정형화된 의미, 그 이상을 쉽게 잃는다.

 

어쩌면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볼펜으로 무엇을 쓸지, 그릴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클립으로 어떤 글을, 그림을 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그 너머로 볼펜이 굳이 무언가를 쓰고, 그리거나 클립은 굳이 무언가를 모아두어야만 할까?

 

존재에 대한 의심은 왈츠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인형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무용품에게 즐거움을 부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도 철학 수업과 함께 언급한 적이 있지만, 당연한 것에 대한 반론의 가장 쉬운 첫 단계는 부정이다. 연필깎이는 꼭 무언가를 깎아야 하는가? 컴파스는 항상 원만 그리고 있어야 하는가? 이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복합성인 인격을 주어 그들을 관찰한다. 연필깎이는 연필을 깎지 않는다. 컴파스는 원을 그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왈츠를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영감이 유추되는 이 책에서 사물은 모두 본래의 모습이되 즐거움을 얻어 왈츠를 춘다. 강렬한 색의 대비와 사물 배치의 규칙성이 리듬을 가미하며 춤추는 그림이 되었다. 음악은 높은음과 낮은음의 대비를 기초로 하니, 그림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그리고 이 구성의 백미는 리듬과 박자가 모여들어 마지막 장에서 클립들이 추는 마티스의 이다. 언뜻 탄성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빌드업이었달까. 그 엔딩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덮고도 머릿속에서는 클립들이 빙그르르 춤을 춘다.

 

앞으로 클립과 볼펜을 보면 그들이 춤을 추고 있지는 않은지 유심히 살펴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전과는 다르게 보겠다는 태도이다. 물론 이걸 사물에만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의 정형화된 역할 너머로 달려가 거짓말처럼 푸른 초록 위에서 춤이나 추고 싶은 마음이다.

 

* 보림 출판사 대학생 서포터즈 아티비터스 11기로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동화를 이해하려는 국문학도로서 솔직한 배움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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