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들레 사랑방'과 '우주인'은 탈학교 청소년들이 모여 영화를 본 뒤 바로 그 느낌을 별로 달아 주는 공간이다. 서울시 중구 수표동 서울시립청소년수련관 4층에 둥지를 튼 '민들레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그곳에 모인 탈학교 청소년들의 표정이 밝았다. 학교를 계속 다닌다면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중학교 2학년 때 자퇴를 결정한 정현도,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킨 후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감쪽같이 소지품 검사를 했던 그날 배신감에 울었다던 종선도 해맑은 소녀의 낯빛이었다.

"세상의 초점이 학생이냐 아니냐에 맞춰져 있다 보니 공원을 산책하는 일도 겁이 났어요. 그날은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나갔는데 재수없게 순찰 중이던 경찰관과 마주쳤어요. 그 경찰관도 다른 어른들처럼 순서 하나 틀리지 않고 나이를 묻더니 어느 학교 다니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학교에 안 다닌다고 하자 '쯩'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가출 소녀로 단정해 버렸어요. 이런 일은 아마 탈학교 청소년으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거예요. 누구나 청소년이 밤에 돌아다니면 가출로 단정해 버리잖아요."

대구에 있는 청소년 쉼터 '우주인'에 다니는 탈학교 청소년들도 정현이처럼 '쯩'이라는 한마디에 목소리를 높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는 효주가 그랬다. 대개 탈학교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로 채워지는 주유소에서 효주는 서울의 정현이가 그랬던 것처럼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막돼먹은 아이 취급은 고사하고 복구마저 불가능한 불량소녀로 낙인찍힌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탈학교 청소년에, 나이마저 어린 터라 손에 쥐는 돈마저 착취를 당해야 했다.

교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사회의 냉대와 수모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나마 자퇴는 아름다운 이름에 속했다. 문제아를 시작으로 불량소녀, 날라리에 이르면 거기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쯩'이었다. 우리나라는 쯩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다닐 수 없다고 말하는 효주는 학생증도 주민등록증도 없기 때문에 원동기 운전면허증을 땄다. 최근에 발급된 청소년증은 버스를 탈 때마다 교통카드와 함께 내밀어야 하고, 그나마 지하철을 탈 때는 소용이 없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을 해 보면 대개 학교가 갑갑하거나 장벽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하는데 어른들의 세계라고 해서 이와 다를까요. 그래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그와 같은 눈으로 탈학교 청소년을 보아 달라고요. 개성이 좀 강할 따름이지 우주인에 드나드는 탈학교 청소년들은 다른 청소년들과 다른 점이 없거든요." 신영희 소장의 말이다.

후쿠오카 켄세이는 『즐거운 불편』이라는 책에서 정말 시간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은 뭔가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 세대도 부추김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자신감이 없고, 숫자나 성적, 세속적인 평가와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자아가 흔들려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이 말은 곧 소통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집 안에 있든 집 밖에 있든, 학교 안에 있든 학교 밖에 있는 우리는 모두 부모이자 자식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