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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 - 폭력과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의 기원
로버트 거워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1.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세계사의 한가운데로 불러낸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을 우리는 과연 알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소개드릴 책은 로버트 거워스의 <왜 제1차 세계대저는 끝나지 않았는가>. 2018년 11월 11일은 종전 100년이 되는 날이라고 해요. 한 세기만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고 잊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에코 세대의 후손들이 세상의 축을 쥐게 됐으니까요. 그렇다면 수천만명의 사상자를 낳은 세계대전은 과연 끝난 것일까요?
2.
책은 페이지 전반에 걸쳐 "승전국의 평화가 아니라 패전국의 혼돈을 직시해야 20세기의 얼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저자는 로버트 거워스. 역사학자인데요. 종전 후로 찾아온 표면적인 평화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과 자리를 맞바꾼 새로운 폭력의 논리를 얘기해요. 왜냐하면 패전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패전국의 주변을 감싸도는 그 엄혹한 분위기. 특히, 독일, 불가리아, 지금은 사라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에서 새로운 세대가 물려받아야 했던 유산은 참혹하기만 했거든요. 아직까지 그것은 트라우마로 남아 전국민을 괴롭히지만,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 입장에서는 갑갑하기도 할 겁니다. 그 참혹함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본인들의 손에다 어떤 원죄가 떠맡겨진 꼴이니까요.
3.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한 심층 보고서랄까요. 그리고 1부의 이름은 '패배'. 그러니까 그동안 우리는 어쩌면 당연스레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세우는 데에만 열중했던지도 모릅니다. 혹은 전쟁 후의 장밋빛 미래나 서툴게 그렸는지도요. 이 책은 패배와 패전국의 이야기에서 틈을 벌리게 됩니다. 2부 '혁명과 반혁명'을 거쳐 3부 '제국의 붕괴'에 이르면 제국의 몰락과정과 패전국의 비참함을 다루게 되는데요. 이쯤 오게 되면, '전후'상황과 20세기 중반의 유럽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안목이 생겨납니다.
4.
악명 높은 헝가리 민병대장이자 호르티 호위대의 임시 수장이었던 팔 프로너이 남작은 회상했다. “이럴 때면 나는 뒤틀린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에 취한 이 광신적 인간 짐승들한테 50대의 매질을 추가로 지시했다.” 프로너이와 다른 우파 민병대장들에게 비인간화되고(‘인간 짐승’) 비민족화된(‘볼셰비키’) 적은 아무런 가책 없이 고문하고 죽여도 되는 존재였으니, 이런 행위들은 거룩한 대의에 의해 그 필요성이 요청되고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룩한 대의란 사회주의적 심연과 영토 분할의 위협을 받는 국가의 구원이었다....
책은 이처럼 상당 부분 스토리를 구성해서 끌어쓰고 있으므로, 책의 깊이에 비해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부에 수록된 몇몇 장의 이름은 '봄의 기차여행', '판도라의 상자' 등, 시종 문학적인 수사를 마련해 두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더이상 전쟁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어쩌면 전쟁의 역사와 엄혹함은 지금이야말로 주목받아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강력히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