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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가와카미 가즈토 지음, 김해용 옮김 / 박하 / 2018년 9월
평점 :
1.
빌 브라이슨이라는 수식을 달고 나온 책 중에서 정말 괜찮은 책이 나왔습니다. 쓸데없이 재밌는 책이랄까요. 사실 조류학자에 관심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쓸데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번 책을 펼치면 시종 킬킬대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그리고 그 탁월한 유머는 이내 조류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안착하게 해주어요. 완벽합니다. 그러니까 조류학 입장에서는 축복같은 작가를 만난 셈이지요.
2.
저자는 사실 도쿄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농업학자입니다. 현재는 삼림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사는 조류의 보전과 관리를 도맡고 있다고 해요. 이력이 상당히 특이하죠. 조사지역 가운데는 니시노시마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들어보셨을 텐데요. 다름아닌 현재 화산 분출 지형입니다. 조사지역이 용암으로 인해 녹아 사라지는 등의 희귀한 체험을 끊임없이 겪고 있다고 하고 그런 사례들이 글들에 멋지게 녹아있어요. 사실 이런 특이한 약력은 어디까지나 조류학에 대한 소개와 보급을 목적으로 하게 될 텐데요. 이 책은 그런 일들은 뒤에 숨겨두고 사탕과 벌꿀을 들고 다가옵니다. 책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에세이로 프로모션이 됐으면 훨씬 많이 읽혔을 책입니다. 연구에 밤을 지새우는 일상이 기술되다가, 위에 소개드렷듯 조사지역이 사라진다거나, 귓속에 나방이 들어간다거나, 흡혈생물과 격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중심을 조류학이 아니라 그러한에피소드에 두고 있어요. 자질구레한 여담들을 읽으며 낄낄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조류에 대한 지식이 자리잡는 것입니다.
3.
"골격 표본을 모은다.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다. 조류학자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새의 형태는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골격계만큼 기능미를 구현시키고 있는 부위는 없다. 새의 최대 특징인 비상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날개지만 그 날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골격이다. 날개의 제어에는 근육의 작용을 지지하는 골격이 꼭 필요하다. 마초인 터미네이터도 늪이나 용광로처럼 발 디딜 곳이 없는 장소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오슨 웰스가 라디오에서 묘사한 화성인조차 문어 다리 속에는 뼈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근육이 발생하는 부하를 견디기 위해 골격에는 강도와 유연성이 필요하다. 위팔뼈는 속이 비어 가볍고....."
그러니까 이처럼 시종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부분과 명칭들도.... 이처럼 곳곳에 유머와 함께 곁들이고 있어요. 저는 과학자들의 저술들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 이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줍잖은 폼을 잰다거나, 비장하게 지식을 나열하는 방식은 이제 진부하고 불필요해요. 이런 멋진 작품이 일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괜스레 질투나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마음을 담아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