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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같은 걸출한 작품들로 유명한 줄리언 반스의 신작입니다. 맨부커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이미 팬층이 두텁지요. 줄리언 반스가 '사랑'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은 처음인 것 같군요. 어디까지나 줄리언 반스의 세계관에서 사랑이라고 한다면...어디까지나 양념같은 것이지 메인디쉬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연애의 기억>은 연애소설인가. 글쎄요.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통속적이고 신파스러운 소설은 아닙니다. 우선 주인공의 연령대부터 국내정서와는 괴리가 있어요. 19세 청년과 48세 유부녀의 이야기거든요.
2.
그렇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쉽게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요. 문장들은 여전히 수려하기에 쉴 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와중에 머리 속에서는 자꾸만 이상적인 이미지가 형성이 되거든요. 그러다가도 여주인공의 나이가 48세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몇번이고 산산조각이 나요. 제 경우, 이건 얼마간 의도된 설정같기도 한데 확실히 국내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해요. 후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쳐도 작가가 의도했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 줄리언 반스는 그 괴리감을 이용해 일종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테면 금지된 사랑같은 것이죠. 순탄한 사랑 이야기같은 걸 누가 보고 싶겠습니까....
3.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건 단 하나의 이야기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꾸지람을 들은 기분이다.
수전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게 아니다. 인생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거다.“
3.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사랑을 아예 전면에 내세운 소설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설정을 해두고는 그걸 작가만의 문체와 능력으로 해체하고 있어요. 거기서 굉장히 울림 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결국 두 주인공의 사랑에서 시작해서 독자들의, 혹은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옮아가게 돼요. 그래서 줄리언 반스의 소설들이 넓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장에 이르면 이 단 하나의 기억은 유일하게 가치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이 소설이 수많은 연애소설 중에 유독 하나남을 여운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