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 고대 중세 편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지음, 윤병언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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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움베르토 에코와 리카르도 페드리가 편집한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저자가 움베르토 에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자이자 동시에 편집자에 가깝지요. 벌써부터 아쉬워 할 움베르토 에코의 팬들이 많을 텐데요. 사실 이 책의 강점은 오히려 여기에 있습니다. 


  이토록 방대한 철학의 계보를 제 아무리 움베르토 에코라고 어떻게 혼자서 덤벼들겠습니까. 차라리 에코는 최전방에서 전두지휘를 맡고, 그 방대한 사료들을 정갈하게 정돈하는 역할이 걸맞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움베르토 에코라는 거장의 저술들을 볼 때 이처럼 정돈하는 일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다른 누구도 할 수 없을 일로 보이는 점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국내에 저같은 일반 대중들에게나 낯선 저자들이지, 사실 학계에서는 저명한 교수들이 저마다의 힘을 모은 책으로써 함의가 상당히 큰 책입니다. 그리고 이 방대한 양이 고대와 중세에서 끝나는 1권에 불과하다는 점도...역시 놀랍지요.


  움베르토 에코라는 큰 별이 진지 그새 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의 영향력이 이처럼 세계 곳곳에 남아 많은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역시 경이롭달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목차를 보겠습니다.








2.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됩니다. 각 장은 5개에서 7개의 작은 단원으로 구성되고요. 각 단원을 이탈리아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수들이 담당해 철학의 계보를 설명해나갑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움베르토 에코는 몇몇 단원에서 추가로 외연을 확장해내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11장은 '철학자와 신학자'라는 테마로 묶여 있는데요. 이 중 7단원에 해당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세상의 영원함>같은 글은 추라고 에코가 저술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움베르토 에코라고 해서 어떻게 모든 연대기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겠습니까. 특정 연대에서는 얼마간 움베르토 에코보다 더 전문적이고 통찰력 있는 저자들에게 글을 맡긴 것입니다. 에코의 기획 아래 편집된 글이니 얼마간 그의 시선들이 남아있기도 하고 당연히 얼마간 신뢰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셔도 될 것입니다.






3.

  우선 이 책이 아르테 출판사에서 나와서 참 다행이다 싶은 게 편집이 상당히 깔끔합니다. 아마 움베르토 에코도 국내에서 번역된 이 책을 보았으면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책 자체가 굉장히 고급스럽고 예쁩니다. 당장 기획부터 방대한 이런 책의 경우 표지랄지, 편집이 난잡하면 정말 펼쳐보기도 싫은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자꾸만 열어보고 싶게 생겼어요. 


  가격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굉장히 무의미한 논의가 아닐까 싶어요. 우선 이런 기획 자체가 귀한 것이고 심지어 편집자로 나선 게 움베르토 에코이므로 책의 함의는 큰 것이겠지요. 이 방대한 양을 어쨌든 한 데 묶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철학사라는 학제에서 이 책의 포지션은 이미 대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가격으로 폄하되기에는 조금 귀하달까요. 72,000원이라는 가격은 물론 부담스럽지만 얼마간 전공자들에게나, 한 권으로 철학사를 깊게 들여다보려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낌없이 투자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철학'의 역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사실 수많은 사상과 사상가를, 당대의 문화적인 흐름과 연결시키는 일종의 문화사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역사를 훑는 게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주체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에요. 각 분야의 전문가 83명이 저술에 참여한데다가 대체가 불가능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미 가격에 관한 논쟁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4.

"고대로부터 인류가 지식을 전승해 온 가장 일반적인 방식 중에 하나는 백과사전 혹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논문들이다. 백과사전은 일련의 과학적 정의들을 제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개는 태반 포유류와 개과에 속하는 육식동물이다'라는 식의 정의...이러한 분류법은 개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해 주지 못한다. 

실제로 이처럼 상세한 설명은 뒤늦게 등장했고 17세기만 해도 크루스카 사전을 살펴보면 개는 그저 '잘 알려진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개 혹은 낙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아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러한 종류의 정보들을 모아 놓은 것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umberto eco, p355






  그러니까 움베르토 에코가 '고대인들의 지식 보존과 백과사전'이라는 테마로 첨언한 글입니다. 사려깊은 예시와 문장들을 각 단원 곳곳에 담아내고 있어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철학과 문화사 일반의 흐름에서, 중간중간 움베르토 에코가 결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비단 에코뿐만 아니라 각 참여자들 역시 단순한 역사를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철학자들이 살았던 그 시대와 문화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어딘가 비장하고 거대하게만 들려서 쉽사리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잖아요. 이 책은 기획단계에서부터 그 방대한 철학사를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어나가기 좋습니다. 


  더불어 이 책은 얼마간 발췌독을 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스토아 학파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5장,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과 학문으로 들어가서 303페이지를 열어보는 방식으로 읽어나가는 독법도 좋을 것입니다. 



  결국 철학이란 것은 결코 대답되지 않을 질문들일 텐데요.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관심사별로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능동적으로 사유해보게끔 하는 멋진 책입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겁부터 잔뜩 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음을 열고 차분히 읽어나가면 제법 재밌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을 것이고요. 관련 전공자들에게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서재에 철학사를 다루는 한 권의 책을 남겨두라면 망설임 없이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시리즈를 남겨두지 않을까. 많은 분들께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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