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의 모든 역사 - 지구와 생물, 인간에게 일어난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
크리스토퍼 로이드 지음, 윤길순 옮김 / 김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1.


  오늘 소개드릴 책은 김영사에서 펴낸 <지구 위의 모든 역사>입니다. 거창한 제목입니다. 얼마간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빌 브라이슨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경우 저자가 저널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수록하고 있는 과학사적 내용들을 수려하게 풀어낸 것으로 이미 획을 그은 걸작입니다. 저널리스트라는 이력이 핸디캡은 커녕 도리어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무력감을 선사해주었지요. 그렇다면 저널리스트에 대한 얘기를 갑자기 왜 꺼내오느냐. 제가 저널리스트들의 과학교양서적들을 신뢰하는 편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자 소개를 할까요. 이름은 크리스토퍼 로이드. <선데이 타임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이기도 하고, 컬리지에서는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책은 서두에서 빅뱅을 비롯해 생명의 탄생을 다루게 되는데요. 이 부분에서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이력은 역시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그럼 책의 가장 첫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라. 아주 강력한 분쇄기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집어넣어라. 식물과 동물, 건물, 여러분의 집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사는 마을까지 모두.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다른 것들도 그 안에 넣어라. 우리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1천 배나 큰 태야오 집어넣얼. 우리 은하, 은하수도 집어넣어라. 우리 은하에는 우리 태양 말고도 다른 태양이 약 2천억 개 있다. 다 넣었는가?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분쇄기에 들어가 벽돌만 한 크기로 줄어드는 것을 보라. 이것이 다시 줄어들어 테니스공만 해지더니 이제는 완두콩만 해졌다......그리고 그것이 사라진다.


과학자들은 즐겨 그것을 '특이점'이라 불렀다."







  명문이죠. 과학자들의 두 손을 모으게 하는 서술입니다. 이 밀도 높은 특이점은 이제 폭발하게 됩니다. 바로 빅뱅이죠. 전공서적들에서 지루하게 답습해 온 137억년 전의 현장을 이처럼 생생하게 호출해내는 저자의 문장들이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앞으로도 매 단원의 앞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게 됩니다. 모든 장의 앞부분은 대개 이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고 시종 흥미를 자아내는 멋진 문장들이 가득해요.






2. 


  책의 구성을 보겠습니다. 책은 총 600여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첫번째 파트는 방금 소개드린 빅뱅을 비롯해 생명의 탄생, 판 구조론에 이어 공룡과 진화에 관한 자연과학 이야기를 다루게 됩니다. 저자의 이력을 봤을 때, 사실 금세 구심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기우였달까요. 빌 브라이슨에 이어서 이처럼 밀도 높은 과학적 지식을 맘껏 뽐내는 저널리스트는 또 오랜만입니다. 두번째 파트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유발 하라리가 즐겨 얘기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세번째 파트는 문명의 탄생. 저자의 스펙트럼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시점입니다. 문자와 고대 문명, 심지어 중국 문명과 로마 제국을 동시에 다루기도 하면서 네번째 파트로 넘어갑니다. 마지막 파트는 종교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근현대사라고 할까요. 이슬람교로 시작해 중국의 과학기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쟁취등을 다루면서 미래를 그리며 글은 끝나게 됩니다. 실로 자연과학과 인문학, 종교와 문명을 유려하게 넘나들며 '역사'를 다루고 있는 잘 빠진 책입니다.




3.


  책은 저자가 수년간 모아온 일러스트 자료와 많은 컬러 사진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확실히 소장용으로 훌륭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미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순간이 있고, 또 이처럼 거시적으로 조망해야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을 텐데요. 이 책의 경우, 특히 후자에 있어서 굉장한 강점을 보이는 책입니다. 우선 빌 브라이슨의 책만 해도 어디까지나 자연과학적인 얘기까지만을 담고 있기에 '거의 모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이고.... 문명이나 종교에 대한 애기까지 외연을 확장해내는데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포기했죠. 연결고리를 찾기도 힘들고요. 이 책의 경우, 그 불가능해 보이는 거리를 좁혀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니까 한발짝 더 멀리서 역사를 멋진 관점으로 조망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의 경우 '거의 모든'이라는 수식어 대신에 '지구 위의 모든'이라는 수식이 붙었습니다. 이왕 칭찬을 시작한 김에 조금만 더 책의 장점을 덧붙여 볼게요. 제가 특히 놀랐던 점은 이런 식의 역사서가 대개 빠지곤 하는 함정, 바로 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서양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예컨대 중국의 과학기술에 주목한다거나 하는 식의 시선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이런 것까지 실을 꿰 가자면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어질 것임을 본인도 잘 알았을 것인데 저자는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4.


  벌써 글이 이렇게 길어지다니, 아무래도 줄거리를 간추리는 건 제 역량으로는 무리인 것 같아요. 앞부분에서 파트 1,2에 해당하는 자연과학사에 대한 본문을 보여드렸으니 그럼 파트 3,4에 해당하는 인류와 문명에 관한 본문을, 특별히 이 책의 강점을 쉽게 보여주는 부분을 소개드리며 글을 정리해볼게요. 



"빈에는 유럽의 군인들이 이 튀르크 군의 천막을 약탈한 뒤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다는 전설이 있다. 천막에서 커피콩 자루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크루아상도 빈에서 빵 굽는 사람들이 밤늦게 일하다가 튀르크 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발견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빵 굽는 사람들이 승리를 거두는 데 이바지한 것을 기념해 이슬람의 초승달을 본 떠 크루아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본문 p453

"




그러니까 이 부분의 경우, 오스만 제국과 유럽열강에 대한 얘기를 하는 과정에 나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서부 유럽에 파도처럼 밀고 들어가려다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마저 이런 이야기를 깨알같이 담아내고 있는 책이에요. 오스만 제국을 설명하면서까지 깨알같을 수 있다면 본문에 수많은 역사들이 어떻게 반짝이고 있을지 쉽게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지구 위의 모든 역사>는 역시 미시사를 다루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역사를 큰 관점으로 조망하고 싶은 독자들을 비롯해, 얼마간 학술적인 목적으로 접근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걸작입니다. 많은 분들께 마음을 담아 추천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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