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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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돌아왔다. 


 가부장제의 경로에 탑승하는 것을 잼민이 시절부터 강하게 거부해 온 나는 (드라마 속에서 결혼에 목숨걸고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여주인공들이 바보같아 보였고, 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강한 의지에 불타 있었다. 로맨스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가 뜻밖의 결과를 낳은 셈.) 친한 친구가 이른 결혼을 택할때에 비로소 그와 나의 삶의 경로가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여성으로서 결혼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꿀 수 밖에 없는 이벤트이고 이를 기점으로 삶도, 생각도, 방향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중고 대학시절까지 함께 공유해온 친구가 나와 다른 루트를 선택했고 이제는 더이상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을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 청첩장을 받아들었을때 신기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친구와 비로소 다른 갈림길에 섰음을 직감했다. 이제는 다른 경로에 선 친구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반드시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친구가 돌아왔다. 나 이혼해. 한마디와 함께.

 순둥이 그자체였던 나의 친구는 작가의 말마따나 개밥쉰내나는 시가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뿜어내며 분노의 화신이 되어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친구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결혼의 무엇이 친구를 이토록 극한의 감정으로 밀어 넣었을까. 어떤 것들이 친구가 결혼제도에 대해 이토록 치를 떨도록 만들었을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친구의 아픈 순간을 공갈빵 같은 공감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본질적인 어떤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작가는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 놓았다. 

스토리는 달랐으나 결은 비슷했다. 시가. 남편.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순응에 지쳐버린 사람들. 


 작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버티기를 멈추었다고 했고, 

내 친구는 스스로가 말라가는 것을 더 버티지 못해 도망쳤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같은 부분을 보았다.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상황을 박차고 뛰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일생에 몇 없을 큰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용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쉽지않았을 선택은 모두 그들이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친구는 이번 명절을 넷플릭스와 함께 행복하게 보냈다. 지난 명절의 기억이 너무도 지독해 지금의 시간이 전생체험 같다고 친구는 키득거렸다. 전화기 너머로 빠작빠작 과자를 씹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친구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평범한 사람이 이혼 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일상을 회복해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친구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며. 

결혼 실패가 아니라, 이혼을 성공해 낸 친구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이건 가부장제의 실패다. 한 집안의 가부장제가 균열을 일으키다 무너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이혼이라는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혼은 한 여성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결혼과 이혼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옭아맬 수 있던 시대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은 오직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는 낡은 사고방식과 제도 뿐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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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사랑하는 세계의 명시 365
윤종호 엮음 / 북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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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를 하루에 두세편씩 음미하기 좋은 도서입니다. 작지만 제법 무게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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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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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시인이 정갈히 엄선한 시를 읽고있자니 마음이 따스하게 데워지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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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 물리학과 천문학의 위대한 업적들
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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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과학자가 말하는 천재과학자들의 생애와 업적. 소장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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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 책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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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아쉽게 떠나보내야만했던 분에 대한 생생한 기록. 감사합니다, 윤태영 비서관님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기록을 제 책장에 담을 수 있게 해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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