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담연 >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전문역사서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소설가 김영하는 한 소설에서 ‘압축할 줄 모르는 자는 뻔뻔하다’고 했는데, 다 써놓고 보니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역사적 사유도 좋지만 서평이라면 압축도 필요한 법인데 …. 어떤 옛 시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긴 글을 보냅니다.’ 이 시는 어떤 부인이 변방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는 애절함을 노래한 것이다. 이 서평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시구절을 채용하고자 한다. 오늘은 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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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가 나는 전문역사서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백승종 2006 푸른역사)의 서평 -



역사적 사유


오랜만에 역사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마치 지하철 안내방송처럼 정보만 제공하고 사라지는 역사책은 많아도 역사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책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적 진실에 대해, 역사적 상상력에 대해, 역사서술이라는 것에 대해, 이제는 너무 멀리 돌아온 역사의 과학성과 문학성에 대해,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에 베인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것들을 역사라고 총칭하는 것이 허락이 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사유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추상적 역사인식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의 심연에서 나오는 역사인식론이 펼쳐진다.


지적인 역사대중서


그리고 지적인 역사대중서의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역사학계에서는 강단의 역사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역사서술을 바꾸자는 흐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특히 1990년대 하반기부터 많은 역사대중서가 출현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체로 가볍고 흥미본위의 역사대중서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없지 않다. 사실 ‘그 대중’이 역사가들보다 지적인 수준이 낮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타 분야의 학자들이나 대학원생들, 사회 각 방면에서 역사적 사유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적인 수준은 높다.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쉽게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역사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을 뿐이다. 심지어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역사가들보다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이들은 역사적 사건들의 나열에서 발견할 수 없는 역사의 어떤 깊은 맛을 음미하고 싶은 것이다. 국사교과서의 정형화된 역사도 아니고, 역사드라마의 화려한 영상도 아닌 역사, 그래서 차분하게 역사적 상상력을 펼쳐보면서 지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역사. 역사대중서가 필요하다면 이런 지적인 역사대중서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내가 도서관의 전문사서라면 이 책을 지적인 역사대중서로 분류할 것이고 왜 그렇냐고 묻는다면 ‘삼미식품’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역사의 재미, 역사의 의미, 역사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미시사의 또 다른 좌표점


속표지에 실린 문인방의 얼굴은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 인물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어진(御眞)을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고, 신윤복의 그림에서 삶에 지쳐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농민들의 표정을 본 적은 있었다. 위대한 선비들의 단아한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문인방과 같은 ‘평민지식인’의 지향과 좌절이 뒤섞인 표정은 낯설었다. 세상의 모순에 정면으로 응시한 충혈된 눈, 울분이 분노가 되고 다시 우수가 되어버린 눈빛, 멀리 이상세계를 갈망하는 듯한 약간 벌린 입술 … 문인방이라는 18세기 한 인물의 살아 있는 표정에서 인간의 복합적 욕망을 볼 수 있었다.


문인방은 이 책의 2장에 등장하는 인물로 1783년 정감록 역모사건의 주모자이다. 그는 서북지역의 술사였다. 지역적으로도 신분적으로도 그는 18세기 당시 조선의 주류에는 도저히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글을 알았고 글을 통해 세상을 알았고 세상의 모순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그를 ‘평민 지식인’ 또는 ‘유랑지식인’으로 분류한 후 ‘삶의 전략’이라는 시각으로 그를 추적한다. 결국 저자는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다방면의 분석을 한 후 역사적 해석을 내린다. “문인방의 등장은 한국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저자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종교적․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19세기~20세기의 일련의 사건들(동학-원불교 등의 신흥종교 계열, 1894년 갑오농민전쟁-1919년 3․1운동 등의 저항운동 계열)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니까 19세기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려면 17-18세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해명이 되어야 하는데, 18세기 정감록 역모사건을 파헤치다보면 비밀결사체의 존재, 종교적 카리스마의 존재, 성리학이라는 주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대항이데올로기의 형태 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건이 분출하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배경과 원인을 일정한 역사적 흐름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한다. 저자 역시 이런 맥락에서 문인방의 등장에 주목한 듯 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나에게 그 문구는 다르게 다가왔다. 문인방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18세기적이라기보다는 21세기적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니까 문인방의 등장은 한국역사학계에서 미시사의 또 다른 출발점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본다.


20세기 사학사를 개관한 이거스에 따르면 서구 역사학계에 주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1970년대이다. 근대화에 대한 반성적 흐름이 1950-60년대에 다방면에서 일어나다가 1970년대가 되면서 보다 집약적인 흐름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거시사에서 미시사로의 전환에 주목하였다.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미시사를 상징하는 것은 《치즈와 구더기》(1975)의 메노키오이다. 메노키오라는 한 방앗간 주인(물론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관이 있었음)이 역사에 등장하여 말하고 숨기고, 움직이고 멈추었다. 긴즈부르그가 그런 역사서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삶의 전략에 주목했기 때문이며, 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그전까지 국가, 민족, 경제구조, 주도세력 등으로 서술된 근대역사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요컨대, 한 개인의 삶의 전략이 충실히 역사화가 되면서 이제 역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서 그렇다는 것이다.


문인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에 한국역사학계에서도 근대화에 대한 반성으로 여러 형태의 역사실험이 있었다. 여성주의적 역사서술, 일상사적 역사서술, 미시사적 역사서술 등 대체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 계열로 분류되는 흐름이었다. 이 가운데 미시사에 대해 말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미시사에 대한 오독(誤讀)이 적지 않았다. 미시사를 일상사와 동일시하여 신변잡기나 나열하고 일상의 풍경을 그리는 것을 미시사라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시사적’이라고 운위하는 글을 읽어보면 도대체 미시사에 대한 고민을 하였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진지한 미시사 서술도 있었다. 저자도 이 계열에 속하는 역사가이다. 그가 쓴 여러 편의 미시사는 그런 면에서 정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방의 등장이 특별한 것은 사건과 더불어 등장했다는 점이다. 역사학은 무엇보다도 사건이다. 미시사는 역사적 사건에 마주친 한 인간의 삶에 대해, 그가 어떻게 그 사건을 바라보았으며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전에도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2003), 《그 나라의 역사와 말》(2002)을 쓴 바 있다. 이 책들은 한국역사학계에서 선구적인 미시사 작품들로 위치지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열을 가릴 성질은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 문인방의 등장에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영조와 정조의 시대에 벌어진 역모사건’이라는 흥미로움이다. 무릇 하나의 사건에 여러 사람이 참여한다면 각자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접근전략을 달리한다. 저자는 문인방과의 가상대담에서 다양한 층위에서 사건의 전모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면서도 이경래(양반), 박서집(평민), 정조 등의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도 놓치지 않았다. 미시사는 구체적인 개인에 주목하고 그 사람이 당대에 겪는 모순과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 그리고 그것은 유일무인한 단일성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인 중층성들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문인방(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김원팔, 문양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의 등장은 한국 미시사의 또 다른 좌표점이다. 물론 하나의 상징으로서.


역사적 진실과 역사적 상상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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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누구나, 책을 집어들면 표지부터 유심히 보지 않을까. 이 책을 집어들고 나는 한참이나 표지를 보았다. 거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살아 있는 표정이 실려 있었다. 표지는 대체로 무언가를 상징한다. 저자와 편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표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역사의 다양한 진실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몇 개의 모습을 띤다.” 저자의 핵심적 주장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으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왜 이런 말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선 저자가 동원한 몇 가지 서술장치에서 기인할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사건관련자들 각각의 시각에서 해당 사건을 바라보려고 하였다. 예컨대, 1785년의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에는 6명의 인물들 각각의 관점과 각 인물에 대한 저자의 생각까지 합쳐 총 12개의 관점이 주름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치 관점들의 향연이라도 펼쳐지는 듯 하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그러나 이 유명한 명제가 이렇게 미묘하고 섬세한 대화까지를 범위에 넣어야 하는 것임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복합적인 대화를 통해 여러 빛과 그림자로 수놓아진 한 편의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역사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된 역사는 본 적이 없었다.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에는 6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정조까지 치면 모두 7명이지만 일단 정조는 여기에서 독립된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일단 6×2=12개의 진실에 한정하였다. 만약 이를 신분으로 구분하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각각의 진실과 역사가의 시각 등 총 3개로 좁혀질 것이다. 기존의 역사서술이라면 이 두 개의 시각이 팽팽하게 대립되면서 시종일관 긴장된 흐름이 노련한 역사가에 의해 이끌려갈 것이다. 역사가는 종국에 가서 어느 한 쪽의 현실적 승리와 다른 한쪽의 현실적 패배를 선언할 것이다. 나아가 당장의 승패에 안주하지 않고 긴 역사적 안목으로 결국 역사의 승자가 누구인가를 결정지을 것이다. 그 동안 역사연구는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시각을 그대로 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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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다. 그런데, …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설령 저자의 주장처럼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하는 근대역사학은 이미 진부해졌다고 치자,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역사에는 다양한 진실이 존재하며 역사가는 그것을 드러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치자, 그래서 이 책이 그것을 성공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자는 그 동안 여러 편의 미시사 책을 간행한 바가 있고 이 책 역시 미시사로 분류될 수 있다. 미시사가 추구하는 바와 같이 “역사적 사건과 행위에 담긴 중층성이 제대로 밝혀질 때 역사 속 인물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생존전략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가.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듯이 그동안의 역사서술에서는 금기시되었던 허구의 세계를 역사가의 상상력으로 밝혀냈다고 해서, 그 동안 한국역사학계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이런 파격적인 실험이 과연 성공한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것인가.


독자로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분명히 독자에게 무언가를 강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돌려주었을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한 동안 이런 물음들 앞에서 망설였다.


이 책은 전문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역사이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허구의 세계로 가득찬 소설’이 아닌 것이다. 이 책과 함께 나온 《한국의 예언문화사》(푸른역사 2006)를 보면 저자는 무려 1,350년에 걸친 한국의 예언문화를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추적하였다. 이 책에는 모두 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7편 모두 역사학계의 관행적 서술방식에 따라 서술되었다. 사료가 제시되고 선행연구자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비판하는가 하면 여러 사건들을 이리저리 대입시켜가면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결론을 내린다. 역사가가 역사적 해석을 내리는 방법 그대로를 충실히 따른 셈이다. 따라서 그가 “역사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상상이 개입된 허구는 말 그대로의 허구가 절대 아니”라며 역사가의 자부심을 표방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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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역사가는 우리네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한 인간의 삶에서 독립과 자유, 그리고 신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많은 장면들이 준 감동은 아직도 마음에 남아 훈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처럼 영화를 보거나 또는 소설을 읽으면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한 영화는, 수기가 아닌 한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소설은 감동을 준다. 왜 그럴까.


허구와 거짓은 분명히 다르다. 기본적으로 감동은 진실된 것들에 가 닿을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거짓말에 감동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접할 때 공감하게 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와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다루지만 거짓말로 포장된 허를 결코 다루지 않는다. 얼마 전 줄기세포 사건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듯이, 오히려 이런 일은 ‘과학’을 한다는 곳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역사를 조작하는 대열의 전위에서 심심치 않게 전문역사가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짓은 윤리와 관계되고, 허구는 학문적 방향과 관계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과학을 하는 사람들을 영화와 소설의 허구적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삶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길이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진실이 있다. 자주 망설이고 때로 숨긴다. 그러면서도 주체적인 시각으로 삶의 전략들을 수립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모습들을 내면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역사가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건이며 흐름이며 사실이며 의미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에 경도되어 사물과 인간의 중층적인 면모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영화와 소설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캐랙터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하나의 캐랙터만으로는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없다. 여러 캐랙터가 등장하여 삶의 여러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태백산맥이나 장길산과 같은 소설이 오랜세월 고전으로 남는 것도 삶의 복합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삶을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외부현실’과 ‘내면세계’가 그것이다. 인간은 내면에 허구의 세계로 간직한 채 외부현실과 조응한다. 병리적 현상까지 이르는 것이 아니라면 허구의 세계는 삶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심리학은 내면의 세계를 다루면서 허구의 세계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결국 그들은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루는 것이 비과학적이고 비사실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역사학이 정신분석학에 비해 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심리학은 내면의 허구의 세계를 무시하고 외부현실의 몇 가지 사실만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인간의 삶에서 상상력이 배제된다면 과연 진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의 삶에서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한 요소이지만 거짓말이 역사를 추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거스는 역사학에서 역사적 상상력이 갖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긴즈부르그 자신의 상상력이 메노키오의 사고과정을 재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긴즈부르그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연구전략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중단하곤 하였다.” 말하자면 역사적 상상력이 복원됨으로써 메노키오가 역사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노키오의 등장은 새로운 역사를 가능하게 한 것이고 그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었는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은 현재 주어진 조건들을 껴안으면서 새로운 경지를 모색할 때 가치를 지닌다. 그런 것들을 초월하는 그런 류의 망상은 역사가가 다룰 상상력과는 거리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역사가의 역사적 상상력, 또는 개연성 있는 역사적 상상력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하나의 진리가 있어 그것을 추종하는 것이 삶이 아닐 것이다. 설령 그것을 향해 가더라고 그 여정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역사라면, 역사가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진실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내린 역사적 해석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반출하게 해준다. 예컨대 저자는 홍복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권력을 탐하되 못내 멀리하는 듯한 애매함’, ‘누구도 자신의 흉중을 꿰뚫어 알 수는 없되, 인자함을 느낄 수 있게 처신’ 등. 이 책이 거의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중층성과 삶의 전략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문학의 향기가 나는 전문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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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의 목표는 역사학을 학문적으로 훈련받은 역사가들에 의해 실행되는 엄격한 과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의 주제였던 투키디데스처럼,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여 과거를 진실되게 구성하는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였다.”(이거스 《20세기 사학사》). 랑케는 근대역사학의 출발을 알리는 사람이다. 이거스의 주장처럼 랑케는 전문분과로서 역사학을 성립시켰다. 다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역사적 분기점에서 그래도 랑케는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근대역사학은 문학적 우아함이 탈색된 채 전문성 높은 엄격한 과학으로만 진화가 되었다. 높은 수준의 역사가들이 역사에세이를 쓸 때 문학적 우아함이 등장하기는 해도, 젊은 역사가들이 ‘전문적인 역사서’에서 문학을 표방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이 책이 박사학위로 제출이 되었다면 통과를 낙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문학박사학위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가 그 라이센스를 가지고 현장에서 종사할 때는 정작 하라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 특정한 분야의 특정한 주제에 매달려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정작 ‘본업’인 문학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역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경향과 정반대로 문학의 길로 나아갔다. 역사의 과학성과 문학성의 조화는 랑케 이래로 역사학의 오랜 숙원이었다. 여기서는 이 둘의 조화를 간략하게 문학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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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존의 전통적 역사서술은 대체로 사건사적 서술과 구조사적 서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사건사적 서술에 따라 사건의 전개과정을 충실하게 서술한다. 사건의 발단, 배경, 주요 변수들, 마무리 등 사건의 전모를 먼저 밝힌다. 그리고 나서 구조사적 서술을 통해 사건의 성격과 의미를 밝힌다. 여기에는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가고 당시 사회구조와의 연계도 제시되며 궁극적으로 어떠한 역사적 흐름으로 읽어야 하는가가 제시된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문양해 역모사건은 이 책과 함께 나온 《한국의 예언문화사》(푸른역사 2006)의 제4장으로 실려있다. 저자는 전문역사가답게 전통적 역사서술 방식으로 사건의 전개과정을 충실하게 서술한 뒤에 18세기 지하조직의 문화적 성격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책이 문학인 이유는 우아한 문학적 표현이 있어서도 문학적 묘사가 있어서도 아니다. 예컨대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영조 9년 4월 중순, 마침 비가 그쳤지만 남원성 안팎은 낮게 드리워진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달빛조차 희미한 깊은 밤이었다.” 마치 소설의 도입부와 같은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해서 문학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문학의 향기가 난다는 것은 소설구성의 장치들 때문이다. 다양한 인물묘사, 내면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기법, 화자를 등장시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앞의 두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세 번째 기법을 설명해보자.


저자는 김원팔 일가의 <남사고비결> 역모사건을 다루면서 실존하지 않았던 ‘최정도 이방(吏房)’을 등장시켜 사건을 재구성하게 한다. 기존의 역사서술에서는 이런 방식은 매우 낯설다. 거의 채용될 수 없는 일다.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문제인데 그 인물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더욱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종래의 역사서술에는 그런 화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분명히 ‘어떤 최정도 이방’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물론 최정도 이방은 역사가 자신이다.


3

전문역사가는 주관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하며 주관성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관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사건을 재구성해야 하지 않는가. 결국 전문역사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건을 재구성하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방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객관성이란 불가능하며 주관성을 완벽하게 탈색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칸트가 취했던 전략처럼 전문역사가는 객관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주관성은 가치를 발하는 것은 보편성을 획득할 때이다. 최정도 이방의 이야기가 보편적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실존인물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사의 과학성도 빼놓지 않았다. 역사의 과학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역사적 흐름을 제시하는 것, 기존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변화의 의미와 해석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18세기에 광범위한 비밀결사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19세기 ‘홍경래의 난’, ‘동학의 전국적 조직망과 갑오농민전쟁’ 등의 역사적 흐름과 연결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저자는 영조와 정조대에 일어난 역모사건을 다루면서 이 시대에 대한 기존의 해석에 반론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나아가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가 단순한 예언서가 아니라 당시 성리학적 질서에 저항하는 대항이데올로기였다는 새로운 해석도 내놓았다. 이처럼 저자는 주관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도 근대역사학이 추구했던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요컨대, 근대역사학의 문턱에서 초월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 그 문턱들을 껴안으며 새로운 것을 지향한 셈이다.


최정도 이방의 등장은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오랜 숙원에 대한 하나의 문제제기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인방의 등장이 갖는 의미만큼 최정도 이방의 등장이 갖는 의미도 크다고 본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라면 그것이 1인칭이든 3인칭이든 화자가 등장하여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정도 이방의 출현 자체에 시선을 빼앗기기 보다는 그가 하는 ‘주관적인 말’이 얼마나 보편적인 해석에 어떻게 닿아 있는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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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 개정판 이매진 컨텍스트 8
김원 지음 / 이매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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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저자 김 원입니다. 부족한 글을 너무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이번에 초판을 상당부분 고친 <개정판>이 곧 출판됩니다. 관심있으신 독자들을 위해 '개정판' 서문을 올려드립니다. 저의 다른 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블로그(http://blog.naver.com/labor2003)를 방문해주세요^^

 

 

개정판 서문



먼저 ꡔ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ꡕ에 관심을 가져준 모든 독자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나치게 두꺼우며 방대한 과거와 현재 지배적 담론과 익명적 지식들의 실타래를 복잡하게 얽어놓은 ꡔ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ꡕ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이 글이 ‘다시 쓰여지는 텍스트’가 될 수 있도록 계속 수정과 보완을 약속드린다. 특히 2006년 ꡔ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ꡕ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 기여하셨던 고 김진균 선생을 기념하는 제1회 김진균상 학술부문을 수상하게 되었다. 부족한 글에 과분한 상을 주신 김진균 기념사업회에 개정판을 내면서 감사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또한 여러 사정으로 출판 자체가 어려워졌던 이 책의 출판을 맡아준 도서출판 이매진 정철수 대표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개정판에서나마 건네고 싶다.

굳이 개정판을 내면서 다시 ‘개정판 서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은 그간의 관심과 이것을 반영했던 여러 서평과 비판 등을 부족하나마 개정판에서 담아내려고 했음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 책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에게 이 책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과 반론을 소개함으로써, 이 글이 좀더 논쟁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러 언론 지상, 인터넷 매체 그리고 잡지 등에 ꡔ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ꡕ에 대한 소개가 실렸지만, 여기서는 그 가운데 몇 편의 구체적인 서평을 선택해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개정판에 이런 평가들을 일부 반영했음을 밝히고자 한다.1) 주제별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하나씩 언급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민주노조 담론의 모순과 균열 문제를 살펴보자. 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2005년 11월 서강대학교 정치철학연구회 2005년 학술발표회에서 ‘담론 분석의 방법들’이라는 주제로 김익경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김익경(2005)은 민주노조 담론의 균열과 모순에 대한 내용과 관련,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다소 길지만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강조는 인용자).


“……김원의 글은 이렇게 역사적 내용을 도구로 하여 기존 서사를 뒤집는다. 기존 서사가 또 다른 서사를 억압하고 성립한 사후적으로 구성된 담론임을 익명적 지식을 통해 드러내며(푸코의 계보학적 방법), 더 나아가 익명적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미시사의 방법). 즉 계보학과 미시사를 결합하여 텍스트의 서사성이 가진 이중의 위협에 대응한다. ……(그러나 ― 인용자) ……청계천 피복노조(청계피복 노조를 지칭 ― 인용자)와 동일방직 노조를 기술할 때와는 달리 YH 노조를 기술할 때는 노조가 선택의 주체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즉 YH 여성노동자들은 ‘부차적이고 비자율적인 주체’가 아니었던 셈이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주체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YH 노조를 주체로 만드는 이와 같은 서사는 약간 당혹스럽다. 이전 두 노조의 신화화를 익명적 지식을 통해 비판하는 곳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전복의 힘을 상실한 것 같아서이다. ……YH 노조 이야기는 차라리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노조에 관한 서사처럼 읽히는데, 청계천 피복노조와 동일합성 노조에서처럼 ‘노조’와 주도하는 주체(지식인의 담론 혹은 도시산업선교회)의 위치가 분열되어 있지 않고 일치하기 때문이다. 소급하여 앞의 두 노조에 대한 서사도 다시 구성할 수 있다. 그 서술에서 김원은 노동조합의 기본 기능을 지적하고 이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구성한 기존 서사를 비판하였다. 그 노조들은 자신의 본질적 기능과 분리되어 있었으므로 진정한 주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YH 노조는 자신의 현실적 위치와 일치하는 진정한 주체였으므로 YH 노조는 행위할 수 있었다. ……”


김익경이 정확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초판 7장의 YH 노조에 대한 부분은 민주노조를 둘러싼 지배적 담론(혹은 서사)을 비판하는 방향과는 틀어져 있었다. 바로 ‘진정한 주체’로서 YH 노조가 하나의 모델이자 행위자처럼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텍스트의 모순은 내가 은연중에 지냈던 ‘주체에 대한 강박증’과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는 김익경의 반론을 받아들여서, 개정판에서는 민주노조 담론의 균열 부분에서 YH 노조 부분을 삭제했고, 교회단체와 여성노동자 사이의 균열을 다루었던 초판(8장)을 같은 장으로 합쳐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둘러싼 지배적인 해석을 둘러싼 익명적 지식의 드러내기 효과를 강화시켰다.

두 번째,  남성성과 폭력성을 둘러싼 화두다. 나는 초판에서 프롤로그 가운데 일부(「여성전사」)와 초판 4장에서, 작업장 폭력에서 그간 부각되지 않았던 남성노동자들에 의한 무의식적인 작업장 폭력을 남성지배 공동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했다. 이 문제에 대해 ‘남성성=폭력성’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구체적인 쟁점으로 제기된 점은 남성 노동계급이 중산층 남성에 비해 남성다움에 대한 강조가 강하고, 이것은 남성 노동계급이 계급적으로 무시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남성의 폭력성을 일반화했다는 것이다. 바로 남성 노동계급이 중산계급에 비해 남성성에 집착한다는 근거도 없거니와, 주요 논지로 제시되는 것은 폴 윌리스(P. Willis)의 연구 등 외국 사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여성성이 하나로 규정될 수 없듯이, 남성성도 단일하지 않으며, 단적으로 여성노동자가 여성노동자에 대해 작업장 안팎에서 가하는 폭력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폭력성=남성성’으로 등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김준 2005).

이재성·김혜영(2005)도 ‘남성성=폭력성’이라는 비판과 흡사한 맥락에서, “……‘자매애’는, 운동의 구호로는 사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남성성을 이성, 정신, 폭력성, 전쟁지향 등으로, 여성성을 감성, 육체, 비폭력성, 평화지향 등으로 정의하는 오래된 근대적 이분법을 수용함으로써 고정된 여성성을 정당화 혹은 강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여성을 ‘남성적 질서 속에서 호전적 전사’로 만드는 것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여성성=평화·탈전쟁으로 읽어야 한다’(91쪽)는 주장은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여성을 산업전사로, 희생양으로, 투사로 만드는 것이 여성을 특정한 담론 속으로 밀어 넣어 담론생산 주체의 이해에 복무하도록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마찬가지로 여성을 ‘평화·탈전쟁’의 맥락에서 읽어내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지배적 담론의 내용만 바꾸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논박하고 있다. 

일단 나는 초판 텍스트 가운데 일부분이 ‘남성성=폭력성’ 혹은 ‘여성성=평화, 비폭력’으로 독해될 수 있는 여지에 대해 인정한다. 프롤로그와 글의 일부를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했다. 다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단일하게 환원될 수 없는 복합성 혹은 환원 불가성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남성공동체의 지배의 욕망이 관철되는 장으로서 작업장이 지니는 위치에 대한 해석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이러한 남성지배, 남성공동체로서 작업장을 유지하기 위한 의례적 실천이 남성노동자들의 작업장 폭력과 여성다움을 여성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었다. 특히 남성들에게 집단적 폭력이나 학살 등의 기억은 스스로 ‘망각’되어진 기억이며, 여성들에게도 ‘감추기를 강요당한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경험적인 논거나 사례’라는 차원으로 논의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싶다.

세 번째 화두는 ‘자매애(femal solidarity 혹은 sisterhood)’를 둘러싼 문제다. ꡔ여공 1970ꡕ과 관련된 평가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자매애’라는 여성노동자들 간의 연대의 문화를 둘러싼 문제였다. 바로 여성노동자들 사이의 관계, 문화를 ‘자매애’라는 개념어로 규정하는 것이 지배적 담론을 뒤집는 책 전체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혹은 여성노동자간의 차이, 균열 등을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선 이재성·김혜영(2005)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강조는 인용자).


“……‘자매애’는 여성주의 진영에서 적지 않게 논쟁을 불러왔던 개념이다. 여성운동사의 맥락에서 ‘자매애’는 단순히 ‘여성들 간의 친밀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 전체 여성의 공통된 이해’임을 주장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연대할 것’을 촉구하는 개념이다. 오늘날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그러한 ‘자매애’ 개념이 여성들 간의 ‘차이’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하여 매우 신중하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저자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기존 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석하고, 저자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밝혀주어야 한다. ……저자는 여성노동자들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견하려 노력했고, 특히 이를 비공식적 영역과 주변적 범주(수다 등)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제목과 본문을 보면 여성노동자들의 문화가 ‘자매애’로 규정되는 듯 보이다가(636쪽), 다른 부분에서는 이를 단순히 노동자문화와 연대의 ‘기초’라고 정의하는 등(639쪽) 일관되지 못한 개념 구사를 하고 있다. 저자는 남성중심주의에 대항해 온 ‘자매애’ 개념 속에 담긴 많은 이들의 고민을 더 진지하게 다루었어야 했고, 새롭게 재정의하여 ‘자매애’ 개념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연구 과정에서 이 개념을 보다 일관성 있게 적용했어야 했다.”


비슷한 논지로 정지영(2005)도 초판에서 사용된 자매애에 대해, “……여성 노동자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자매애’의 문제에 대해 좀더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성노동자의 문화를 자매애로 쉽게 설명하기보다는, 여성노동자의 ‘자매애’에 대한 논의 자체를 또 다른 담론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강조한 불연속성과 익명적 지식을 고민할 때, 기숙사 안에서 형성한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게 된다. 친밀한 관계가 있었던 만큼 그 안에 갈등과 배신, 타협과 협상이 존재했을 것이다. 기존의 노동사가 ‘노동자’ 내부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보지 못한 것처럼, 김원의 여성노동사는 ‘여성노동자’ 내부의 불균질성을 간과하는 것 같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내가 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매애’에 대한 문제다. 두 개의 서평이 정당하게 지적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자매애 자체가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자매애는 여성노동자들 간의 차이, 균열 등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판 9장에서 자매애로 규정한 여공들의 소모임 부분을 삭제하고, 개정판 7장의 ‘여공의 문화’의 일부분으로 처리했다. 또한 개정판에서는 7장에서 자매애 자체에 대한 초보적인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제기되었던 문제에 대한 답을 대신하고자 했다. 하지만 ‘연대의 문화’ 수준으로 모호하게 처리된 여성노동자들 사이의 문화 그리고 내부적 차이에 대한 규명은 좀더 시간을 가지고 탐구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었다.

다음으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둘러싼 담론에 대한 쟁점이 제기되었다. 나는 1970년대 여성 민주노조운동을 경제주의, 조합주의, 낮은 의식성 등으로 규정한 것은 남성 노동사가와 활동가들이며, 이것은 여성노동자들을 부차적이고 낮은 수준의 주체로 전락시켰음을, 또한 여성노동자들의 주체적 구성을 은폐했음을 주장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이 조합주의라는 지배적 해석에 대한 ‘반비판’과 연관해서 제기된 문제는 1970년대 여성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을 남성 노동사가들의 편견으로 돌릴 수 있느냐는 문제다. 비판의 요지는, (1) 1980년대 혁명적 노동운동은 1984년 대우자동차 파업에서 중공업 남성노동자의 진출을 환호하는 동시에, 이 운동의 성격을 조합-경제주의로 규정했으며, (2) 1970년대 여성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특정 지식을 은폐함으로써 편향된 담론을 생산했지만, 마찬가지로 ꡔ여공 1970ꡕ도 여성주의적 담론에 기초, 70년대 기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평가를 난폭하게 재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김준 2005, 292).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가지 해명과 한 가지 반론으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일단 내가 여성주의적 담론 ― 정확하게는 방법론 ― 만을 통해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을 비판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배적인 담론과 공식적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있어서 푸코의 계보학을 매우 매력적인 틀로 사고했다. 바로 과거에 사료로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 하찮고 잡스러운 자료를 가지고 역사를 비틀어 보는 것은 공식적인 서사/흔적을 남길 수 없었던 주변부 집단을 드러내고, 동시에 지배적 담론을 전복시키는 데서도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성주의적 노동사 해석과 반대편 입장에 있는 여성주의 입장과 ‘친화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성주의 인식론을 지니신 독자들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글이 초지일관 ‘여성주의적 담론’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일부분은 이미 여성주의 연구에서 제기해온 것들이다. 더불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푸코 자신의 ‘몰성적인’ 면은 여성주의에 의해 비판의 대상 혹은 불편함을 주었으며, 푸코의 방법론이 여성주의와 결합하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편 나는 ꡔ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ꡕ에 대한 전복성, 해체적 성격 혹은 불편함 등의 ‘언어’ 혹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일정한 입장, 다시 말해서 남성중심적인 지배적 담론에서 쉽게 탈출하지 못하는 ‘주저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물론 나는 내 인식론이나 방법론을 강요할 생각이 없으며, 다만 여공을 둘러싼 자명하다고 여겨졌던 담론을 뒤집고, 흔히 과학적 해석, 이분법적 인식에 기초해서 정통으로 간주되어온 역사라는 문제 틀을 반박할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마도 아래 글이 좀더 정확한 반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조합주의, 경제주의, 민주화 담론 등 지배적인 담론은 아직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가 계보학을 선택한 이유는 이런 지배적인 담론이 형성되어온 역사와 이것을 구성해온 힘들의 역사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바꾸어 말해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개념, 이제는 보편화된 혹은 사라진 단어, 언어가 가진 신비성, 물신성物神性, commodity fetishism을 벗겨내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고고학자가 근대의 지층을 발굴하며, 근대 담론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이다. 나는 1970년대 여성노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지녔던 과학, 인과관계에 대한 지나친 집착, 운동사의 전통에 대한 무비판적인 인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연구들은 이론에 대한 맹목 혹은 실증에 대한 과도한 애정’ 탓에 역사적 현상을 협소화·도구화시키는 경향이 강했다. 오히려 나는 익명적 지식과 담론에 관한 연구에서는 내러티브, 바로 서사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공장 동경과 실질적 가장으로서 여공을 둘러싼 문제다. ꡔ여공 1970ꡕ에서 나는 희생양 담론을 비판하면서 여공이 희생양이나 생계보조적 노동력이 아닌 실질적인 가장임을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은 ‘경험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구체적인 논거로, (1)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은 남성의 이분의 일에 머물렀으며, 최대한 가계보조를 했다고 해도 수입의 절반 이상을 넘지 않았으며, (2) 통념과 달리 가족에 대한 송금보다 자신을 위한 저축과 소비에 사용했던 노동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주체적 자아로서 여성노동자들의 자기정립은 실질적 가장이었다는 무리한 주장보다, 여성노동자들의 가계에 대한 기여와 도시체험이 여성노동자들과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김준 2005).

물론 위에서 지적한 실질적 가장으로서의 기여도, 자신을 위한 수입의 사용 등에 대해 나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내가 희생양 담론과 다락방 담론이라는 한 쌍의 지배적 해석을 비판한 맥락을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 ‘경험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젠더 불평등이 관철되어온 가족질서 아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지배 담론이 강조하듯이 자신을 버린 ‘희생적인 주체’도 아니었으며, 다락방 담론이나 ꡔ전태일 평전ꡕ에서 서술되는 것같이 보호의 대상도, 성별이 삭제된 중성적 주체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여공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과 역사 해석을 뒤집기 위해 ‘공장 동경’이라는 ‘익명적 지식’을 드러냈던 것이다. 어쩌면 ‘경험적인 논증’의 차원으로 이 문제를 귀착시킬 때, 여공들은 다시 지배적 담론의 세계 혹은 과학적 역사 서술이라는 타래로 빨려들지도 모르겠다.


정치학, 그리고 한국정치를 전공으로 한 나는 늘 ‘과연 나의 학문적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곤 한다.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그리고 여성학, 문학 등에 걸쳐 있는 나의 연구는 주류 학계의 흐름이나 질서와는 한 걸음 떨어져 있고, 지배적인 해석과도 거리를 두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 막 연구에 첫발을 뗀 한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글쓰기, 그리고 주류적인 것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내가 나름대로 ‘세상에 말을 거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전히 내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내 연구가 공식적이며 주류적인 역사 해석으로부터 배제되고 타자화되어, 결국 잊혀져버린 개인과 집단들을 ‘불러내는’,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이 잊어버린 그들과 세상이 ‘대화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이다.


끝으로 앞으로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너무 긴 서문을 맺고자 한다. ꡔ여공 1970ꡕ에서도 스치듯 말했지만 나는 이야기체 역사를 다시 복원하고 싶다. 과학적인 역사가 폄하한 ‘서사의 부활’을 통해 또 다른 실험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 그래서 요즘은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소설들을 보는 중이다.


2006년 3월 25일


김원

 

*각주1) 여기서 거명하는 서평은 김준, 「남성주의적 한국 노동사 인식과 서술에 대한 해체적 폭로」, ꡔ민주사회와 정책연구ꡕ 통권 9호, 2005; 이재성·김혜영, 「“당신에게 나, 은혜 입은 거 없어 ―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서평」, ꡔ진보평론ꡕ 겨울호 2005; 정지영,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 서평」, ꡔ한국여성학」 21권 3호 2005; 김익경, 「흔적, 서사, 담론분석의 방법들」, ꡔ역사읽기의 새로운 모색ꡕ 서강대학교 정치철학연구회 2005년 학술발표회(2005년 11월 18일)이다. 그 밖에 신문, 잡지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에서 좋은 비평과 지적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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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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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계급 개념의 문제

구해근은 톰슨을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파악, 계급형성론을 전개한다. 그럼에도, 맑스주의의 계급과 베버주의의 신분 개념의 공존을 주장한다. 그 논리를 추적해보면, 한국 계급형성에서 신분(혹은 전근대적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며, 그 중심에는 교육(혹은 사회적 이동성)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왜 전근대적 유산을 다루면서 신분개념을 가져다 쓰는지 이해가 안된다.

사회적 이동성에서 한국이 유럽형보다 미국형에 근사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나, 이를 전근대성내지 신분제 유산으로 파악함은 본질을 흐리는 논지이다. 생산현장과 가족 장치 내에서 강제된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전근대적 유산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상에 불과하다.

이는 국가주의, 가족주의, 가부장제 등의 지배이데올로기가 계급형성 과정에서 작동한 결과이자, 계급형성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계급투쟁의 결과, 현상화된 것이지 전근대적 유산으로 해석될 수 없다. 특히, 구해근은 '문화적으로, 육체노동에 대한 천대의식, 가부장제적 전통, 성차별주의, 강한 신분의식과 사회적 상승이동에 대한 열망이 노동자의식을 지배하는 중요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해근의 주장은 한국 계급형성의 신속-탄력성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들은 전근대적 유산이 아닌, 노동자를 기업형 주체로 형성시키려는 자본 및 국가의 노동이데올로기의 일환이다. 특정한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 이데올로기 및 담론이 결합해서 주체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들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해근의 계급 개념 및 형성론 안에는 이런 요소들이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구조적인 장애에도 불구, 70년대 초반 이후 제2세대 노동계급이 형성된 사실이다.

두번째, 70년대 후반 계급형성설과 민중문화의 구성적 역할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구해근은 70년대 '후반' 노동계급 형성설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역사적 계기 혹은 '결정적인 국면'을 통해 노동계급 형성이 본격화되었는가의 문제다. 이는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촉진하는 흐름이 어떻게 특정한 시기에 나타나느냐의 문제다. 본 연구는 70년부터 75년대 후반까지 이르는 신규 민주노조 건설, 어용노조의 민주노조화, 다양한 형태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세력과의 결합 그리고 이에 동반한 국가, 자본에 의해 노동문제가 사회문제화되는 시점을 노동계급 형성의 결정적인 국면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해근도 좀 더 명시적으로 이 점을 밝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재구성된 민중문화가 저항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 자원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 없으나 몇 가지 차원에서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우선 구해근의 민중문화가 노동사에서 언급하는 장인의 급진적 전통 등을 포괄하는 '계급문화'인지, 아니면 조합문화, 조직문화 등을 포괄하는 엘리트에 의해 재발명된 '운동문화'중 어느 차원인지의 문제다. 전체적으로 구해근은 후자의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듯 하다.

이 두 가지 차원은 괘를 달리 하는 문제이다. 재발명된 전통문화의 급진적인 변용과 이를 조합문화로 활용하는 경우는 YH물산, 동일방직, 원풍 등의 70년대 민주노조의 일상활동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문화양식이 얼마나 노동계급의 일상적 경험과 생생하게 결합했느냐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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