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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평점 :
첫째, 계급 개념의 문제
구해근은 톰슨을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파악, 계급형성론을 전개한다. 그럼에도, 맑스주의의 계급과 베버주의의 신분 개념의 공존을 주장한다. 그 논리를 추적해보면, 한국 계급형성에서 신분(혹은 전근대적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며, 그 중심에는 교육(혹은 사회적 이동성)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왜 전근대적 유산을 다루면서 신분개념을 가져다 쓰는지 이해가 안된다.
사회적 이동성에서 한국이 유럽형보다 미국형에 근사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나, 이를 전근대성내지 신분제 유산으로 파악함은 본질을 흐리는 논지이다. 생산현장과 가족 장치 내에서 강제된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전근대적 유산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상에 불과하다.
이는 국가주의, 가족주의, 가부장제 등의 지배이데올로기가 계급형성 과정에서 작동한 결과이자, 계급형성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계급투쟁의 결과, 현상화된 것이지 전근대적 유산으로 해석될 수 없다. 특히, 구해근은 '문화적으로, 육체노동에 대한 천대의식, 가부장제적 전통, 성차별주의, 강한 신분의식과 사회적 상승이동에 대한 열망이 노동자의식을 지배하는 중요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해근의 주장은 한국 계급형성의 신속-탄력성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들은 전근대적 유산이 아닌, 노동자를 기업형 주체로 형성시키려는 자본 및 국가의 노동이데올로기의 일환이다. 특정한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 이데올로기 및 담론이 결합해서 주체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들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구해근의 계급 개념 및 형성론 안에는 이런 요소들이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구조적인 장애에도 불구, 70년대 초반 이후 제2세대 노동계급이 형성된 사실이다.
두번째, 70년대 후반 계급형성설과 민중문화의 구성적 역할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구해근은 70년대 '후반' 노동계급 형성설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역사적 계기 혹은 '결정적인 국면'을 통해 노동계급 형성이 본격화되었는가의 문제다. 이는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형성을 촉진하는 흐름이 어떻게 특정한 시기에 나타나느냐의 문제다. 본 연구는 70년부터 75년대 후반까지 이르는 신규 민주노조 건설, 어용노조의 민주노조화, 다양한 형태의 노동쟁의와 민주화세력과의 결합 그리고 이에 동반한 국가, 자본에 의해 노동문제가 사회문제화되는 시점을 노동계급 형성의 결정적인 국면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해근도 좀 더 명시적으로 이 점을 밝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재구성된 민중문화가 저항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 자원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 없으나 몇 가지 차원에서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우선 구해근의 민중문화가 노동사에서 언급하는 장인의 급진적 전통 등을 포괄하는 '계급문화'인지, 아니면 조합문화, 조직문화 등을 포괄하는 엘리트에 의해 재발명된 '운동문화'중 어느 차원인지의 문제다. 전체적으로 구해근은 후자의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듯 하다.
이 두 가지 차원은 괘를 달리 하는 문제이다. 재발명된 전통문화의 급진적인 변용과 이를 조합문화로 활용하는 경우는 YH물산, 동일방직, 원풍 등의 70년대 민주노조의 일상활동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문화양식이 얼마나 노동계급의 일상적 경험과 생생하게 결합했느냐 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