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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스 극장의 연인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
자닌 테송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내게 숨넘어 갈 듯한 웃음을 준 것도 아니고, 평범한 문체와 내용에다, 비밀이 있으니 기다리라는 분위기만 간혹 흘리는 소박한 소설이었다. 만약 소설이 짧지 않았다면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소설 막바지에 밝혀지는 비밀이라는 것이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소설을 다 읽고 이젠 비밀을 알게 된 내가, 소설 속 감각에 관한 묘사들이 하나 둘씩 기억이 나고, 작가가 그 같은 표현을 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뤽스극장에서 만난 연인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시각장애인임을 모를 땐 사소하게 넘길 표현들이 소설 곳곳에 숨어있다. 소설이 시작되었을 땐 미약하지만 점점 구체적이고 강해진다. 그리고 뤽스극장의 연인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땐 지나쳤던 소설 속 표현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아주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아~, 그게 그래서 그런 거구나."
비록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지만, 그들은 서로의 독특한 향을 맡고 기억하고, 인상적인 음악에 귀 기울이고 기억하고, 실크스카프가 스치는 감촉을 느끼고 기억한다. 그렇게 서로가 존재함을 알고 기억하고 사랑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할까.
작가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를 비밀로 한 탓에 내 좁고 굳어있는 식견은 이들의 장애를 불행이라고 섣불리 판단했지만 이는 불행이 아닐 것이다.
읽는 동안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지 못해 인내를 갖고 책장을 넘길 뿐이었지만, 읽고 난 후엔 작가가 소설 곳곳에 배려해 놓은 감각적인 복선이 떠올라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