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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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자무시에게는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있다. 몇몇 인물들과 사소한, 일상적인, 삶의 일면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커피와 담배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인물들, 웃고, 서글프고, 치사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여기서 커피와 담배는 그저, 이런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하나의 장소였다. 그들의 인생의 일면을 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동일한 제목의 이 책은 '커피와 담배'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책은 이상하게도 술술, 읽히지만, 담아내는 이야기는 녹녹치 않은 인생경험이 담겨있다. 자신의 세대를 통과하여 살아온 경험을 담담하게 쓰고 있지만. 이 담담함을 얻기까지 어떤 시간을 통과했을까. 하는 질문도 있었다.

'커피와 담배' 라는 건, 물건이기 보다는 시간 같다고 생각했다. 각자마다 자신의 시간을 통과해 나가는 동안, 그 시간 속에 '커피와 담배' 같은 사물은 하나씩 있는 건 아닌가?  너무 사소하고, 너무 일상적이라서 나의 삶에 베어있고 곁에 있는 물품들 말이다. 각자마다의 인생 그래프의  어떤 분기와 꼭지점, 선택의 갈래에 주요한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늘 곁에 있 어떤 물건들. 사물들말이다. 이게 '커피와 담배'처럼 여겨졌다. 나에겐 내 시간을 통과하면서  어떤 사물들이 이렇게 시간을 담고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잠시 멈춰서도록 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떄즘. 하나의 에피소드의 문구가 떠올랐다.

"아메리카노와 여의도비키니"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자신의 인생의 포커스를 '지금. 바로 여기'로  맞추며, 지금을 희생하지 않고 지금을 살겠다고 하는 에피소드,

 

이 책이 주는 여운이 그러했다. 마음도, 시간도 무언가에 휩쓸리듯 살고 있는 생활 속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지금. 바로 여기'의 감각을, 되찾고 싶은.  

그러니 잠시 쉼표. 세미콜론.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내일이 되어도, 먼 미래에도, 타이티에 간다해도 행복은 없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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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포산토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


 

 

 

 

-기이하게 길게 늘어진 그 순간-


캄포 산토의 한 장면. 한적한 바다의 어느 지점에서 정체 모를 화자 ‘나’는 유영을 하고 있으며, 흔들리는 바다의 흐름과 그것에 맡긴 흔들리는 몸으로부터 저 너머의 고정 되어 있는 섬 코르시카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분명 바다에 있었지만, 다음 순간 코르시카 땅 위에 발을 딛고 있으며 죽은 자들의 자리를 배회한다. 이것이 캄포산토의 첫 인상이자 제발트라는 작가를 알고 싶게 한 처음의 순간이다. 화자의 흔들리는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고정 되어 있는 섬은, 마치 제발트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고정된 점의 과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인 고정점의 과거. 화자의 몸과 시선을 흔드는 바다. 부력에 의해 뜨는 몸. 파도의 움직임으로 흔들리는 몸처럼 코르시카 섬 역시 시야 속에서는 흔들거린다.

화자의 몸은 여기지점에서 고정된 과거로 향하고 있다. 이 몸은 저 과거로 부터 무엇을 찾아 읽어내려는 것인가. 흔들리고 있는 이 현재의 몸과 위치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그런 질문을 했다.

화자의 육체는 여행자. 유령. 공기. 바람의 이미지같이 그것들은 거점 없이 이곳과 저곳의 공간을 넘나들고 움직인다. 땅의 중력으로부터 거스르는 모습이다. 중력. 무엇에 매달린 중력인가. 이 몸, 육체는 얽매일 수 없는 몸의 상태로 자신을 일부러 부유하도록. 고정되지 않도록. 움직이도록 하고 있었다.


이 유령은 들판 너머 멀리 밤의 심연을 바라본다. 그 심연 깊은 곳을 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폐허의 어느 장소,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백발의 노인, 너무 멀어 작은 점이 된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한숨도 마지막 말도 들을 수 없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했다(1). 그가 보고 있는 밤의 심연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자 지나간 시간이므로, 개입과 변경이 불가능하다. 그가 서 있는 세상의 가장자리는 흘러버린 시간을 향해서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위치다.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들어보고자 애쓰고 있는 화자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이제는 속삭임으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감을 형성한 시간. 흐르는 시간은 그들의 음성을 마모시키고. 축소하며. 소거하고 있었다.

여기서 흘러버린 시간은 과거에 대해 무능력하다.

그가 시선을 향하고 있는 굳게 서 있는 저 지점의 과거가 실제의 과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런 저런 세계사적 사건의 발생에 대해서도 정확한 인식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어떠한 정확한 지식으로도 어떤 상상력으로도 다가설 수 없는 진리가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2).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여행자 혹은 방랑자 혹은 이 유령은 부유라는 육체의 화자는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하고 지금의 장소에 깃든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추적한다. 이 탐색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것도, 차곡히 쌓아 놓은 세계 역사의 시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는 각각 조각난 과거의 시간의 흔적을 장소 위에 찾아내고, 그것을 현재. 지금의 시간이 베인 공간 위로 겹치고 포개어 놓았다. 마치 이중 인화 사진처럼 서로 다른 시간은 같은 필름 면 위로 포개어지고 새롭게 상을 만든다. 여기서 나는 이미지. 생경한 이미지를 만났다.

나폴레옹의 고향 아작시오의 페슈 미술관, 보나파르트 생가를 화자가 이동하면서, 그가 우연히도 마주하게 되는 나폴레옹을 닮은 매표원의 여인을 통해, 졸음으로 사무용 의자 위로 길게 늘어진 그녀의 육체라는 장소를 통해, 나른한 지방 휴양지 이미지 위로 지난 세기 과거 전쟁, 지나간 시간이 겹쳐진다.

그는 이 기억을 기이하게 길게 늘어진 그런 순간들에 속했다고 말한다(3).

시간이 사라진 듯한 육체와 나폴레옹을 닮은, 역사적 어떤 지점이 흔적으로 남은 얼굴의 이미지의 겹침은 어느 시간적 영역과 공간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 이미지는 간극, 공간-장소-육체를 통하여서 지난 시간을 소환하는 바로 그 순간. 여기 지금이라는 시간과도 부딪히며. 이 부딪힘의 충격이, 간극의 떨어진 ‘사이’ 시간이 만든 공간에 남겨지게 되는 것들. 느끼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도록 이끈다.


이러한 이미지로서 나폴레옹을 닮은 여인의 이미지가 향하고자 하는 장소로서 페소 미술관의 피에르토 파올리니의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여인의 그림을 떠올린다. 이 그림 속 인물 주변으로 발라진 짙은 어둠의 배경색은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지배하고 있는 전쟁의 그림자인 듯, 여인과 아이의 내면 깊이 박힌 불행을 화자는 보았다고 생각하였다(4). 이러한 불행의 그림자가, 나른한 여성.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여성의 이미지가 서로 가 닿았을 때. 이 이미지들의 겹침이 요구하는 상상력. 과거를 향한 사유, 혹은 태도들.

아작시오는 지나가는 시간이 흔들리는 야자수 가지 위로, 빙하처럼 누워 있는 배 위로, 한낮의 졸음으로 늘어진 여인의 몸 위로 마치 시간이 “여기에 존재하지 않다”는 듯한 기이하게 길게 늘어지고 있는 풍경의 장소이다. 이러한 현재적 풍경이 이미 과거의 시간이 풍화되고, 마모. 시간은 모든 것을 흐르고 잊게 한다.

하지만 장소는 시간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육체 위에, 무덤 위에, 그림 속에. 화자의 육체는 장소를 이동하여 걷고, 현재의 그곳 위로 흘러가고 있을 과거의 시간의 흔적을 발굴하고자 하였다. 흘러가버리는 시간이 주는 무력감으로부터 장소에 새겨진 시간을 찾는 것은 망각에 대한 저항의 자세이고 의도이다. 흐르는 시간에 의해 마모된 것으로부터 그가 찾아 내려하는 것. 이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의 어떠한 인생이다. 화폭 속의 여인처럼 끝내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제발트는 무수한 이름없는 이들을 이름없음으로 시간의 망각에 저항하려한다고 생각한다.
무수한 이름없음의 이름없음은 바로 나 자신이기도 했다.  역사라고 선택된 사건들과 연대기 내에서 나는 이름 없이 남겨지지만, 살아 있고, 살아있다. 그리고 걷고 있다.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역사 속에서는 탈락되고 누락된 유령같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 같은 인간. 주요한 역할이 아니었지만, 존재 증명을 하지 못하는 그런 생일지라도, 이런 책, 제발트의 소설은, 이러한 나로부터도 잊어가는 나의 존재를 내부로부터 불러내어  기억하도록 한다. 나는 어디 있고, 어디를 향하고, 어디로부터 왔는지. 이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서 있음을 확인하는 독서 경험이었다.

  




(1) 토성의 고리 (창비, 2011. 이재우 옮김) 7장, 203p, 204p
(2)캄포산토 (문학동네, 2018. 이경진 옮김)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 21p
(3)같은 책, 15p
(4)같은 책, 12p


2018-7. 독서모임_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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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저 너머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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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겐이치로의 팬으로서 이 책은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겐이치로의 식으로  쓴 책이다.(이지만,)그 렇다고 해서, 미야자와 겐지의 그늘이 느껴지는가. 그렇지도 않다. 여기에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있다.

이 책은 고독에 관한 책인가. 읽다보면 느껴지는 깊은 고독은 무엇이지? 깊은 우주를 향해 가는 하나의 우주선을 상상하면서 읽는다. 이 고독이 "은하철도의 밤"과 닮았다. 우주의 그 어두운 깊이 속에 스산하고, 저며들어가는 슬픔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내게로 오는 듯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다카하시와 미야자와 겐지를 찾는 것은. 이 쓸쓸함 가운데에서 발견되는 따뜻함 때문이다. 나를, 당신을, 온 우주를 품어보려는 따뜻함이 있어서이다.(개인적 감성으로) 그 따뜻함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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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 생활만화 1 - 맑은 날, 햇빛에 보송보송 말리고 싶은 나의 일기
오배고 글.그림 / 레진코믹스(레진엔터테인먼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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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자면 생활의 활력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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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머그 -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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