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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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중명전에 다녀와서 가물가물했었던 국사책의 한 부분들을 떠올려보았더랬습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를 떠올리면 알 수 없는 분노와 우울함이 몰려오는 것은 저만의 일은 아니겠지요?


지금이야 쉽게 일본 여행을 다녀오시고, 개인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교류가 많으니 

옛 감정을 쉽사리 꺼내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기도하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그저 슬프고 억울한 레파토리를 들추어보고 싶지 않아서 생각의 어느 구석에 몰아두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오랫만에 읽은 소설책이었는데 참으로 슬프고 애잔해서 '차라리 빨리 읽어버리자' 하고 결심했건만.

요즘 세상은 사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유행인지... 도통 빨리 읽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제목처럼 길위에 방황하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책으로 유명하신 박영규님의 글이라 

사실 반 허구 반 이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열흘간 도쿄를 방문하기위한 여정을 중심으로 순종의 서글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왕위를 이어받은 일국의 왕이었지만 그는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미움을 사고,

아홉살 나이에 어머니의 시해를 경험하고,

결국 나라가 넘어가는 날을 경험했습니다. 

25세때는 아편을 넣은 커피를 마시고 이를 모두 잃어버린 왕.


권력 없이 책임만 있었던 무거운 짐을 진 왕.

일국을 대표해 원수에게 무릎을 꿇어야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왕.

그에게 고종은 '적들을 안심시켜라, 비수를 품어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시고 맙니다. 



요즘 주위에서 흔하게 듣는 말 중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나라와 왕권과 체면과 형식과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그저 우선 살아남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수없이도 '이렇게 치욕스럽게 살아야하나?' 를 생각했을 그를 떠올려보니 저의 소소한 고민거리들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와중에도 일본으로 끌려간 영친왕 유길을 마음에 두고 어떻게든 위로하려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길아, 너무 애쓰지 마라! 그저 너는 너일 뿐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라."


나의 말에 유길은 힘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힘이 빠졌다.

사실, 나는 내가 한 말들을 믿지 못했다.

그저 암울할 뿐이었다.

유길에겐 그 암담한 심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밤새 계속되었고, 

나는 창을 열어놓고 밤새 소리 내어 울었다.

-책에서


열흘간의 일본방문으로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피폐해진 그의 모습.

움직임과 표정까지 정교한 인형극을 본뒤 자신의 처지가 인형같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도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그자는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그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그의 콧수염을 거쳐 내 얼굴로 떨어졌다.

그자가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아, 안중근!

그자는 꿈에서 본 안중근이었다.

검은 보자기를들은 그자를 내 남편이라고 하였다.

나는 요시히토 인형과 안중근 인형을 모두 남편으로 섬기는 여자 인형이었다.

-책에서


길위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황제의 이야기.

찬찬히 읽어보면서 분노와 우울이 아닌 조금더 진지하게 지난 날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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