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양혜원 지음 / 포이에마 / 2012년 11월
구판절판


'바름'에 집착하던 젊은시절, 그리고 비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는 말이 사무치게 와 닿지 안던 시절에는 선택도 빠르고 화끈했다. 내가 정말 그러한 삶을 감당할 수 있는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감이나 시기심 없이 온전히 내 삶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마음과 삶으로 다 받아들이고 끌어안았나, 나는 정말로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24쪽

내 땅을 충분히 고르지 않은 상태에서 바른 것만 찾아다녔나 보다. 그래서 그것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공허한 선언으로만 남았나 보다. 내 토양이 준비된 만큼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이뤄가며 살았더라면, 덜 위태하고 더 겸손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25쪽

하나님의 선한 뜻이 온전한 아기로만 확인된다면 이 세상에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나는 교회가 아이의 생명 앞에서까지 이런 성공주의를 보여주지 않길 정말로 바란다. 10주 된 아이건, 7개월 된 아이건, 10개월 된 아이건, 생명의 상실 앞에서 느끼는 비통함은 여느 성인 남자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무게다. 엄마의 몸에 그리고 아빠의 마음에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고 떠나간, 미처 태어나 자라지 못한 아기의 무게나 건강하게 잘 살다 간 성인 남자의 무게나, 우리가 새 몸을 받고 부활할 것을 생각하면 같은 무게다.-33쪽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어정쩡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제도가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제도의 혜택을 다 누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주의 인식론에서 중요한 점이 주변인으로서의경험이다. 모든 사람에게 정의롭고 평등한 제도는 아직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제도가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를 알려면 중심이 아닌 주변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45쪽

억지로 눌러놓은 것들은 언젠가는 튕겨 나오기 마련이다.아마도 더 이상 누를 힘이 없을 때 튕겨 나올 것이다. 나이 들어 힘이 빠져서든, 상황이 어려워서든, 눌러도 더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저장 공간이 다 차서든, 언젠가는 튕겨 나온다.

아무래도 처음의 이해가 잘못되었지 싶다. 성화의 길은 모든 인간적 욕망을 거세하고 무감동의 자세로 가는 길이 애초부터 아니었다.-120쪽

문제는 언제나 맥락이고 선이다.
어느 맥락과 관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 욕망인가. 그것이 나와 너의 선을 어떻게 지켜주고 때로는 기꺼이(자발성과 합의하에) 서로 넘어가는가가 우리의 욕망을 추하게도 아름답게도 할 것이다.-121쪽

자기화되지 않은 지식은 쉽게 무기가 된다. 판단하고 재단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하는데, 사랑이 되기 전에 진리를 말한다.-126쪽

번역서를 읽을 때의 함정은, 저자가 일차적 독자로 상정한대상을 잊어버리고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저자가 염두에 둔 일차적 독자라고 착각하는 것이다.-190쪽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고통 없는 마취제가 아니라, 고통을 직면할 수 있게 해주는 은혜다. 그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고통을 직면하기 힘들다.-203쪽

나를 지으신 분의 부름에 따라, 자기로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은 모든 인생에 주어진 부름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 삶을, 그 생명을 격려하는 동지였으면 좋겠다. '무서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을 살되 함께 대화하고 격려하고 지지하고 때로는 조언하며 같이 가는 인생길이면 좋겠다.-2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