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바쁜 의미가 달랐다. 주말에 쌓인 피로의 질이 달랐다. 문득 서로의 사이를 돌아보니 함꼐 있어도 싱고는 푸념만 늘어놓고 있었다. 유리코가 이별 얘기를 꺼냈을 때, 싱고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순순히 받아들였다. 자신의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자신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불안에 짓눌리고 있던 무렵이었다. 아파트를 나올 때 유리코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58쪽
"무슨, 상대는 아직 스물한 살의 아르바이트 생이야." 그렇게 대답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대답한 순간 자신이 뭔가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 "나를 조금은 믿어,: 내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유야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유야가 아니라 내 자신이다. "나, 제대로 생각하고 있어." .. "그러니깐 당신을 말이야, 앞날에 대해서!"-131쪽
생각해 보면 케이스케는 그날 이후로 비행기를 탈 때마다 소원을 빌었다. 농구 경기로 원정을 갈 때는 우승을 빌고, 대학입시를 치러 갈 때는 합격을,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하기 전에는 볼일도 없는 삿포르까지 일부러 날아갔다 온 적이 있다. 그런지 벌써 20년 이상이 지났다. 이루어진 소원도 있고 물론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착륙해서 안전띠 착용 사인이 꺼지면 게이스케는 거의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손을 모았다. .... "나 말이지, 비행기를 타면 항상 소원을 빌어." "소원? 왜?" "왜라니, 봐, 하늘에 가까우니까 잘 들어줄 것 같잖아." "뭐야 그게." "아무튼 같이 소원을 빌어 보자고." "지금? 싫어. 창피해." "아무도 안 봐." "빌고 싶은 것도 없어." "됐으니까, 자, 얼른 눈 감아." "싫다니까." 게이스케가 먼저 눈을 감았다. 어이없다는 듯이 웃던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살그머니 실눈을 뜨고 보니 그렇게 싫어해 놓고 아내도 눈을 감고 있었다. 게이스케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한 번 더 천천히 눈을 감았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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