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 5 - 망향편 청춘의 문 5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박현미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3월
품절


인간의 몸은 약이나 주사로 간단히 낫는 게 아니야.
자연의 회복력을 중시하지 않으면 인간의 몸은 엉망이 돼버려.
제약회사나 의학계의 윗대가리들의 비위만 맞추며 아첨하는 녀석들은 의사가 아니지.
의사의 면상을 한 게이샤 같은 거야.


인간의 몸이란 장기요양을 하건 최고의 명의한테 진찰을 받건 달라질 게 없어.
모두 자신의 숙명이야.
뒈질 사람은 호텔 같은 호화로운 병원 침대에서도 뒈지게 돼 있고,
살 사람은 진흙탕 속을 기어 다녀도 살아남지.
나는 옛날부터 그런 철학을 가졌어.
그래서 이대로 지내도 상관없어.

"신스케 오빠. 나랑 처음으로 잤던 날 밤, 기억해?"
"응"
"아주 먼 옛날 같은 느낌이 들어. 실제로는 그다지 오래전 일은 아닌데."
"나도 지금 같은 생각을 했어. 그 무렵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달랐어. 인생, 사회, 나의 미래, 이런 것들에 끝없는 희망을 가졌었지. 하루하루의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명랑함을 잃지 않았어."
"지금? 지금의 나는 겨울의 마른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고목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어른이 돼간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소설이나 영극에서 보는 것처럼 붐비는 가게 안을 노랫소리 하나로 갑자기 쥐 죽은 듯이 고요하게 만드는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리에가 노래를 끝내고 인사를 하면 의무적으로 치는 것 같지만 않은 박수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살며시 다시 한 번 가볍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온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단지 생계를 위한 목적에 그치지 않고, 어느새 오리에의 마음을 채우게 됐다.
유명하지 않아도 좋다.
화려한 무대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많은 상을 받는 영광을 거머쥐지 않아도 좋다.
비록 이렇게 흔해빠지고 쓸쓸한 장소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노래에 의탁하여 소수의 진지한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
그런 식으로 오리에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포기와 닮았다.

저는 지금 혼자 입니다.
다다미 넉 장 반짜리 방을 빌려서 그럭 저럭 살고 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편안합니다.
사람을 미워할 일도 없습니다.
아직 무명 가수라는 사실이나, 인기 없는 가수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비굴해질 것 같은 때도 있지만 그런 때는 '어차피 넌 석탄산 기슭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계집애잖아.'하고 제 자신에게 말을 들려주며 혼자 웃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순진하게 출세나 성공 같은 걸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야.
우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남자한테 그런 식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소소한 행복이라도 좋으니 서로 눈을 마주보고 직접 손을 잡으며 살고 싶어요. 그런 소박하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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