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맞불
노지양.홍한별 지음 / 동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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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명의 번역가가 있다.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두 문학소녀는 30대 후반에서야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고 40대가 된 지금 같은 번역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는 번역가 노지양과 홍한별이 프리랜서 번역가의 삶과 번역 철학에 관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으로, 동녘에서 펴내는 편지 시리즈 맞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두 번역가의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낸 역서는 알지도 모른다.


나쁜 페미니스트, 트릭 미러등 화제작을 번역해 한국 페미니즘의 경계를 넓힌 노지양과 클라라와 태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등 다수의 역서를 내고 밀크맨으로 섬세하고 가독성 높은 번역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홍한별이 서로에게 띄운 편지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1투명하게 쓰는 기쁨에서는 번역가가 된 계기와 번역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한다. 100억이 있다면 번역상을 만들고 싶다는 농담을 곁들이면서 번역가의 저임금 문제와 출판 업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 책을 쓰는 이유 중 하나로 번역가의 수입 문제에 대한 논의와 변화의 필요성을 든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이지만, 시간당 수입이 최저 시급에 못 미칠 때도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2시간에 낡지 않도록에서는 경력과 함께 번역 실력은 느는 한편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 들어가는 언어 감각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또 원문의 독특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번역할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내야 한다면서, ‘직역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더라도 아름답게 어긋난 상태로남기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낸 경험담을 들려준다.


3옮긴이의 진심에서는 번역가 특유의 겸손함과 유연한 태도를 재치 있게 소개하며, 번역은 애초에 정답이 없고 원문이라는 절대 기준이 존재하기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조용한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4책을 사랑하는 가장 지독한 방식에서는 읽고 해석하고 옮기는 번역가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또 보상이 낮은 일은 그 자체가 평가절하되어 버리는 현실 속에서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일을 하고 번역까지 해내는 프리랜서 번역가의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제5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은에서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한 일화를 소개하며, 쉬운 문장이지만 쉽사리 번역되지 않는 낯선 정서를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이 책은 딱딱한 번역 이론서는 아니지만,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두 번역가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번역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말한다는 점에서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또 워킹맘이나 여성 프리랜서라면, 육아와 집안일과 번역 작업을 병행하는 일이 마치 ‘3단 저글링과 같았다는 그들의 고백과 유쾌한 문체로 풀어낸 일화를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워낙 필력이 탁월한 두 번역가가 주고받은 편지라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마지막 편지까지 읽게 된다. 그러나 친한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 편씩 아껴가며 읽기를 추천한다.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에서 유영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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