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 폐달을 밟으며 땅과 사람의 생김새를 온몸으로 느끼던 작가 김훈이 이번엔 개의 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책을 덮고 매일 밤 자전거에 올라 밤 공기를 가르던 난, 이번엔 주변의 개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저들도 보리처럼 말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세상살이를 배워가고 있을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개로 사는 법'을 혼자 깨우쳐가고 있을까? 외롭겠구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로.

세상은 그렇게 말 없이, 덩그러니 주어지지만 삶의 진리는 그렇지 않다. 그런 건 없다. 보리는 보리대로 자기 땅을 밟고, 옆집에서 짖어대는 개는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자리를 찾는다. 나 역시도 뜻하지 않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까, 살 길을 찾는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질책을 해도, 너 제대로 살고 있다고 한껏 추켜세워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세상은 살아야 하는 거고,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보리가 그러지 않았나.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리와 달리 난 가끔은 내가 배워 익힌 게 아닌, 남들이 말하는 '진리'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사람이니까.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이니까. 

문득, 어렸을 적 우리 집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개들이 떠오른다. 쇠줄에 묶인 채 세상을 배우던 그들이, 혹시 내가 건넨 그 수많은 말들을 모두 알아들은 건 아닐까? 혹시 나에게 뭔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닐까?   

슬퍼서,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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