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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중세 천년의 침묵을 깨는 소리 ㅣ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6
R.W.B. 루이스 지음, 윤희기 옮김 / 푸른숲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읽다 보면 피렌체의 시성 단테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 인상적인 문장들을 종합해보면, 단테는 중세와 근세 혹은 근대를 명확히 가르는 하나의 이정표이자, 그야말로 '새로운 인간'이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길래 이 위대한 역사가가 이 정도의 평가를 했던 것일까. 오래 전부터 이 매혹적인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속에 자리잡았지만, 불멸의 고전이라는 <신곡>에는 감히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방대한 양에도 기가 죽었고, 크리스천도 아닌 내가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집대성이라는 작품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쉬워만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일단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눈에 확 들어오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또 표지에 적혀 있는 "<새로운 인생>에서 <단테>에 이르기까지, 문학적인 전기란 바로 이런 것"이란 문장에 마음이 동했다. 단테를 읽는 동시에, 그동안 겁내기만 했던 <신곡>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단테야말로 처음으로 나타난 완전한 의미에서의 예술가였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룰 때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삶과 사랑과 좌절을 저본으로 삼은 작가였다. 신이 정해준 질서로 꽉 짜인 중세의 세계관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탐구의 의지를 보인 단테에게서 영혼을 바쳐 자아를 구현했던 예술가의 초상, 그 첫번째 초상을 볼 수 있었다.
문학적인 전기라는 표현대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단테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테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새로운 인생>이나 인생의 중반에서 그때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쓴 <신곡>처럼 모든 작품에서 자전적인 요소를 강하게 드러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은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단테의 모든 저작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죽 짚어본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용기를 내어 <신곡>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단테의 작품들이 하나둘씩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고, 뒤이어 이렇게 평전까지 출간되었다. 서양사에서의 그 중요한 입지에 비해, 우리에게는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이 인물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 그에 대한 제법 명쾌한 답을 볼 수 있기에 여기 옮겨 놓는다.
"끝으로, 새삼 '왜 단테인가?'라는 물음이 가능한 것은, 그가 비록 당시 피렌체 사람들을 겨냥하여 그들의 삶의 조건을 추적하고 기록했지만 그의 그러한 행보는 오늘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아니 이상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질서와 조화의 세계, 진정한 자유인을 향한 단테의 꿈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기 때문이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영원히 천상의 영역에 묻어두어야 하는 우리 인간의 안타까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