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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혹은 막 대학에 들어갔을 즈음 부모님의 이혼을 받아들여야 했던 친구가 하나 있다. 지금껏 10년 가까이 만나오면서도 그 친구와 부모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묻지 않았고, 친구는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애써 피하거나 꼭 필요하다면 '집'이라는 포괄적인 말로 에둘러 대화를 이어갔다. 어쩌다가 생각 없이 온가족이 했던 나들이나 외식 이야기를 꺼내놓고, 말을 하면서 혼자 식은땀을 흘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친구의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그 친구는 이미 충분히 불행할 것 같아 모른 척했던 것이다.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섣불리 '이혼'이란 말을 입에 담지 못하던 나는, 그래서 이 책 <즐거운 나의 집>을 누구보다도 먼저 집어 들었다. 세 번 이혼의 결과로 성이 다른 세 아이가 한 집에 산다니. 그럼 그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남들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또 그 엄마는...
책의 제목부터 그랬지만, 시트콤처럼 유쾌한 전개에 적잖이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그들은 '유난히' 불행하지는 않았다. 내용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집에도 있고, 우리 옆집에도 있는 불행의 크기나 매한가지였다. 그 크기를 줄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혼한 엄마나 그 결과를 삶의 조건처럼 지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나 현실을 인정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해가는 모습이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사이에서 언뜻언뜻 친구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그 친구도 어쩌면 내가 지레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게 자기 삶을 바로 세워가고 있는 게 아닐까.
주인공 위녕에게서 불행의 기미만을 찾으려 했던 학교 선생님처럼 사회적 편견 속에 갇혀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이제 그 친구와 정말 허심탄회하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왔다고 충고의 말을 건넸다. 그 형태가 어떻든 거기 속한 사람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고민하고 의지하고 지켜가려 애쓴다면 그게 곧 가족이라고.
소설 속 엄마와 위녕이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속 얘기를 했듯이, 나도 그 친구에게 맥주 한 잔을 청하며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물론 이 책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