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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문보영 시인을 아주 많이 좋아해서 그의 모든 글을 읽으려 노력 중이다. 일기를 올리는 블로그를 알림 설정까지 해 두고 방문하며, 가끔씩 발표하는 산문이나 시를 꼼꼼히 찾아 보려고 서점에 가면 문예지를 뒤적거린다. 직접 쓴 일기를 배달하는 일기 딜리버리를 매번 구독한 것은 당연하다.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브이로그는 몇 번씩이나 다시 봤으며 산문집 원고를 정리 중이라는 멘트를 보고 하루하루 시인의 산문집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문보영 시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쓰는 글을 너무나도 '문보영스럽기' 때문이다.

문보영 시인의 글에는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어두우면서도 유쾌하고 슬프면서도 명랑하다. 그걸 딱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문보영스럽다'이며, 여러 사람의 일기와 산문과 시를 훔쳐 본 나는 아직까지 문보영 본인을 제외한 다른 글쓴이에게서 '문보영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즐거운 일기든 아픈 일기든, 일기는 나로 하여금 시간을 건너게 한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中)

 

문보영 시인은 시보다 일기를 쓰는 것이 더 재밌을 때가 많으며, 그가 쓴 상당수의 시는 일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의 일기는 단순히 오늘 하루동안의 일들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은 문보영 시인이 20살 무렵부터 쓴 일기를 다듬어서 묶은 책인데 그 말은 즉슨 그가 시간을 건넌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묶은 책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일종의 일기장인 셈이다. 일기장을 출판할 수가 있다니! 대단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역시, 문보영스러운 글들이었다.

 

내가 겪은 개인적 경험은 문보영 시인의 경험과 어떤 부분에선 지독할 정도로 비슷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선 과하게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책을 읽으며 그 두 부분 모두에서 울었고 내가 문보영의 글을 읽고 운다는 사실이 슬퍼서 또 울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문보영 시인은 2019년의 목표는 아프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내가 아팠던 경험에 대해 떠올릴 수 밖에 없었고 아파서 우는 건지 아팠던 경험이 아파서 우는 건지 모호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것이 마냥 슬픈 글들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이 그렇듯, 아주 즐거운 글도 누군가에겐 아주 절망적일 수 있고, 아주 우울한 글도 다른 누군가에겐 희망적일 수 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이면을 문보영 시인은 본인의 산문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문보영이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 :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렵겠지. 인생이 다시 망할지도 모르니까."

문보영이 타인에 대해서 말하는 방식 : "'겉모습 말고 내면을 사랑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무섭다. 협박에 가까운 말이다. 내 안의 이판사판을 보고도 사랑해줄 사람이라. 도망가고 싶어질 테지."

문보영이 인생에 대해 말하는 방식 : "시를 쓰면서 인생에 관해 말하고 싶다면, 인생에 관해서는 1퍼센트만 말하고 99퍼센트의 쓰레기를 가져오면 된다고. 왜냐하면 인생보다 쓰레기가 인생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래서 내가 문보영 시인의 글을 꼼꼼히 몇 번씩이나 읽게 된다. 어떤 감정에 대해서 늘 열 발자국 정도 멀리 떨어져서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을 가지고 글을 쓰는데, 사실 그는 시력이 좋은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지려 해도 너무나도 잘 보이는 탓에 늘 함께 멀리 온 남들보다 잘 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 문장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문보영 시인의 일기를 기다린다. 다음 시집을 기다리고 다음 산문집을 기다린다. 새로운 날들을 촬영한 브이로그를 기다리고 이번 5월에 신청을 받고 있는 딜리버리 '오만가지 문보영'을 기다린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때가 많고, 그래서 좋을 때가 더 많다. 문보영 시인은 본인이 피자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기다린다는 이유로 오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피자는 기다림 끝에 다다르면 늘 오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게 문보영 시인은 피자 같은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로 오지 않는 사람들과 기대와 희망은 나를 아프게 할 수 있지만 나의 기다림을 알고 언젠가는 와 줄 문보영 시인은 적어도 나와 피자 한 판은 먹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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