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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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어떤 속성을 가졌을까. 이를테면 태풍이나 장맛비. 나는 그의 앙심을 모른 채 하며 발끝으로 시선을 두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내가 웅크리고 있던 공간에는 각기 다른 복수의 형상들이 다녀갔다. 두 남자가 생면부지의 한 남자를 지하철에서 폭행했고 한 여자는 지하철 보관함에 아이를 낳아 두었다.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역 어디서 연탄불을 피워 함께 죽었고, 부모가 자식을, 다시 자식이 부모를 살해했다. 어떤 이는 용역 깡패에게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고 어떤 이는 다른 누군가 목매달아 죽은 크레인에 올라야 했다.

비가 이렇게 많이 내려도 되는 것일까, 싶었다. 악몽이야 서른 해가 넘도록 계속 되었던 것이지만 나 역시 나에게 점점 더 미련하게 굴고 있었다. 아침에 매운 카레를 먹고 실컷 배를 앓고 나서 다시 점심에 매운 카레를 미어지도록 밀어 넣는 소심한 형식. 혹은 그 이상으로.

묻지마 살인, 이라고 부르지 말자. 이유 없는 살인도 이유 없는 폭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패륜이나, 생명경시도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스스로 절망할 수 있는 자는 신(神)일 뿐, 우리는 이 모든 복수극의 공범이고 또 원인 제공자니까.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A가 B에게 선물을 하면 B는 다시 C에게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하더니, 우리의 절망은 난사의 형태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던 어떤 날에 김선우의 오로빌 편지를 읽었다. 잠시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불에 덴 자국에 잠시 찬물 찜질을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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