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문장 -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 이건창
이건창 지음, 송희준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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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최연소 과거급제자. 10살에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문장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나갔던 이건창. 이 책의 편집자는 그런 이건창을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이라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건창의 문장이 얼마나 유려하다거나, 빼어나다거나, 혹은 질박하지만 그 뜻이 심오하다거나 하는 점은 잘 모르겠다. 한문에 익숙치 않은 나로선 당연한 결과이겠거니와, 이 글이 원문의 운율을 파악하기 힘든 쉬운 번역어로 서술돼 있어 더욱 더 그러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훌륭한 문장을 쓰는 방법에 대한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과연 ‘이건창은 문장이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의 문장이론을 소박하게 요약하자면... 속어를 사용하더라도 뜻이 확립되면 빠른 속도로 붓을 놀려 뜻을 얽은 후, 언어를 다듬을 때엔 천만 글자로 이뤄진 장문일 경우라도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들여 짧은 율시 한 편을 짓듯이 해야 한다. 언어를 구사함에 있어 옛사람의 뜻과 자신의 뜻을 명확히 구별되게 하여 진부한 글로 전락함을 막고 표절한 글이 되지 않도록 독자들의 혼란을 없애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기자가 주문만 하면 그 주문과 똑같이 글을 생산해대는 작금의 지식분자들이나 표절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대한민국 아카데미에 그대로 되풀이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건창은 주된 뜻과 이에 대적하는 뜻을 균형있게 다루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여 주된 뜻이 승리하게 될 때, 진정 뜻이 얽어졌다고 언급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그 생각에 부합하는 개념어 사용을 통해 의미를 왜곡하고, 견강부회하는 많은 글들을 꼬집는 생각이다. 반대되는 생각들과 자신의 생각의 그 끝까지 첨예하게 파고들어 상호부정과 상호긍정의 연쇄작용을 거칠 때 진정 좇아야 할 主意가 살아남는다는 것.

그러나 그러한 글일지라도 리듬이 없는 글은 죽은 것이며, ‘귀, 눈, 코, 입’은 있는데 ‘눈썹과 수염’이 없는 밋밋하고 개성없는 글은 좋지 못한 글이라고 한다.

과연 이 시대의 ‘문장가’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나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을까. 누구나 글을 쓰고 읽는 세상이 되었지만, 이는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세상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는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함의한다. 빠르게 의견을 개진해야 하며, 빠르게 읽고 반응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 탓도 있겠지만, 언어를, 고유한 아우라를 지닌 사유가 아니라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간주하는 인식이 우리의 글쓰기를 천박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생각마저 하게 된다.

‘한 글자를 볼 때마다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라’는 고종의 주문.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와,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언어 조탁에 있어 한 글자 한 글자에 쏟는 지대한 정성. 이건창의 글을 부리는 모습을 고종은 이미 간파했던 것이리라. 과연 이 시대에 이건창과 같은 자가 또 있을까.

이건창의 글과 역자의 글, 편집자의 글이 혼재되어 잘 구분되지 않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제목에서부터 구성, 심지어 활자 크기와 줄간격에 이르기까지 모두 100점 만점에 150점을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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