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 ABC북 시리즈 /고양이 편 중 발췌

●마녀 집회
고야가 그의 작품 '변덕'에서 묘사한 것처럼 마녀는 고양이의 존재를 은연중에 암시한다.
고대의 여사제관들은 대지의 힘을 상징하는 달을 숭배했다. 그래서 달을 연상시키는 듯 한
눈동자를 지닌 고양이를 선호했다.
그 뒤로도 고양이는 여사제관의 후손 격인 마녀의 친구로 여겨졌다. 고양이는 10세기부터
마녀의 친구로 여겨졌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이교도를 근절시키려 애쓰던 13, 14세기에 그런 현상이 극에 달했다.

야행성에 방랑자 기질이 있고 과격한 성욕을 지녔으며, 모든 권위에 반항적인 고양이와 마녀는 절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민화 속의 고양이는 벽난로 가까이에 앉아서 마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고양이의 지방으로 만든 고약을 몸에 붙이는 마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녀의 뒤를 쫓아 집회장소까지 날아간다.
고양이의 모습을 한 악마를 찬양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교도들(발도파 신도, 카타리파 신도)과 마녀들에게서 얻어낸 자백에 따르면, 고양이는 증인으로 또는 악마 자신으로 그 집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고양이도 자신들만의 집회를 열어, 야간에 서로 어울려 야옹거미며 울기도 했다.
이런 소란스러운 회홥은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주도 했는데, 침회 화요일(사육제의 마지막 날) 밤이나 대림절(크리스마스 전의 4주 동안)에 숲의 갈림길에서 열렸다.
당시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나 귀를 자르지 않는 한 이런 마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양이의 '꼬리'와 '귀'를 잘랐다. 사제들의 생각에 의하면, 고양이는 동물의 모습으로 변장해 자신의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위장한 늘 사람 가까이에 있는 '악마' 였기 때문이다.

●바스트와 그녀의 추종자들
바스트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고양이의 '머리'에 여성의 '몸'을 하고 있다.
이집트 제 12왕조 때인 기원전 2000년경 숭배의 대상으로 신전에 등장했다.
고양이가 길들여지고, 사자가 사라진 후의 이집트에서 바스트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즉 잔인한 세크메트(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사자의 모습을 한 여신)의 자리를 다정한 바스트(그리이스어로 부바스티스)의 뒤를 이어 숭배받은 이 새로운 여신은 북이집트의 지상권(地上權)과 교원이 나일 강 삼각지로 이동할 것을 예고한다.

이집트 왕실의 아이들의 보호자이며 수유자(授乳者)인 바스트는 곧 음악, 춤, 모성의 여신이자, 마술사, 의사, 산파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다. 사이스 왕조(기원 전 950)에 부바스티스가 왕국의 수도가 되었을 때, 바스트는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며,
헤로도토스가 서술한 것처럼 1년에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참배했다.

고양이가 1년에 여러 번 임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산을 상징하는 여러 여신들과 이 동물의 연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다산의 여신인 프레이야는 고양이(현재의 '노르웨이의 숲' 고양이)가 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스도교의 몇몇 성녀들 역시 고양이의 수호자이다.(시칠리아의 마르트 성녀, 독일의 게프트루드 성녀)

●화형대와 제물
목 부분이 골절된 흔적이 있는 고양이의 미라가 입증하듯,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제물로 바쳤다. 이것이 바스트의 은총을 받기 위한 행위의 일종이라면, 유럽에서 중세와 18세기까지 고양이를 제물로 바친 것은 악을 쫓아내려는 의도에서였다.
과거에는 불운을 피하기 위해 또는 기근이나 전염병 등 재해에 대한 심리적 배출구로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마녀 또는 악마의 대리자인 고양이는 정해진 속죄양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를 불에 '던지는 행위'는 고대 행사와 관계가 있는 종교적이거나 비종교적인 축제의 날에 행해졌다. 이 날들은 모두 달력의 주기와 연계되어 있다.
사순절의 제1일요일(사육제의 끝), 성 요한 축일(하지), 크리스마스(동지) 등이다.
폴란드에서는 재의 수요일(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에 고양이가 희생되었고,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는 성 금요일에 유다로 의인화된 고양이를 교회 꼭대기에서 던졌다.

엑상프로방스에서는 '고양이의 날'에 성체첨레(聖體瞻禮)가 거행되었다.
벨기에의 이프로에서는 사순절 둘째 주에도 도시의 탑에서 고양이를 집어던졌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상징적으로 고양이의 날에 인형을 제물로 바치는 형태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는 파리의 그레브 광장에서였다. 행정관들에 둘러싸인 왕이 직접 장작에 불을 붙이고 고양이를 불 속으로 던졌다.

1648년 루이 14세가 이 행사에 마지막으로 참석했다. 고양이를 매우 사랑했던 루이 14세는 이 '야만스런' 관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른 형태의 희생인 생매장도 똑같이 평가되었다. 중세부터 고양이는 건축물의 영속성과 관계가 있었다. 건축물이 오래 보존되기를 기원하며 산 짐승을 벽 속에 가두거나. 주춧돌 밑에 생매장하는 풍습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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