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하여
한정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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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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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증정 받았으나 으나책빵의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된 글입니다.



6명의 소설가들이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어 흠뻑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엄마에 대하여”는 6명의 소설가들이 한국가요 한곡씩을 “엄마”라는 소재와 엮어 쓴 단편소설이다. 각 장마다 해당 노래 가사가 일부 기재되어있다.


 


소설들 마다 열린 이야기들로 마무리를 한다.


그 뒤는 독자들에게 맡긴다는 듯.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어떤 결론으로 도달해야 되는지


엄마가 되면 아이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다가게 되는지


엄마로서 자녀에게 바라는 바가 어떤 부분으로 포장되는지.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글들은 엄마로서가 아닌 여성으로서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 엄마의 이야기이다.



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도 엄마라고 불러주는 이가 있다.


문득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엄마라고 불릴 수 있구나


날 엄마라고 불러주는 이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유일하게 내 아들이 있구나


 


"엄마가 가장 유약한 모습이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맥주캔을 따던 친정엄마가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이제 친정엄마가 사무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섯 편의 소설 속의 엄마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이었다.


'딸'이었다.


'엄마'가 된 후 모성애와 희생을 당연하듯 요구당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나에게 내가 묻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소설들.


나의 엄마를, 나를, 그리고 나의 아이를 떠올려봅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 말고 내가 좋은 사람과 살고 싶다., 그렇게 그냥 나는 내가 되고 싶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 말고 내가 좋은 사람과 살고 싶다., 그렇게 그냥 나는 내가 되고 싶다.



엄마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까?


그냥 오롯이 엄마 자신으로만 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여성 소설가 6인이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는 엄마와 딸의 세계


심수봉, 김연자, 나미 등 대중가요를 모티브로 탄생한 색다른 이야기



그 어느 때보다 더 솔직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현실의 ‘엄마’를 그려낸 소설 6편이 모여 『엄마에 대하여』로 출간되었다. 엄마에게서 연상되는 돌봄, 노동, 희생 등의 안팎에서 필연적으로 그려지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고 지금의 나와 엄마, 모든 여성이 지나온 길을 다시 한번 되짚어본다.



나나가 마지막에 결혼을 파토내고 나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이런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저런 남자의 생각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혼자 살아라, 정말이지 혼자가 최고다. 여자는 충분히 혼자 살 능력이 되는 인간들이거든, 왜냐고. 평생 누군가 수발 들어줬거든. 아주 일이 몸에 착착 붙어버렸지. 늙으면 더 잘 알게 돼!”



나나의 엄마가 나나의 결정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둘이 만나는 내용은 안나왔지만 꼭 만나기를 바란다.



생업이 바빠 작은 추억 하나 만들 수 없었던 엄마, 가족의 일이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정작 누구의 챙김도 받지 못하는 엄마, 그럼에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기꺼이 나아가는 엄마가 소설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것도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씩 무너뜨리면서, 엄마와 딸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기존의 역할을 깨고 다시 정립하려는 시도들이 반갑다.


한정현, 조우리, 김이설, 최정나, 한유주, 차현지 등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여성 소설가 6인이 모여 완성된 테마소설 『엄마에 대하여』에는 무수히 넘어져도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여섯 엄마가 등장한다. 딸만큼은 자신보다 편히 살길 바라며(김이설, 「긴 하루」), 때로는 분별없이 자식을 위하고(최정나, 「놓친 여자」), 끝없이 다투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 같은(차현지, 「핑거 세이프티」) 엄마와 우리가 맞부딪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좋은 엄마 대신 좋은 멤버가 되고 싶고(한정현, 「결혼식 멤버, 結婚式のメンバ?) 말없이 뒤에서 응원하며(「조우리,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수없이 엇갈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한유주, 「우리 만남은」) 엄마가 조용히 재회를 기다린다.


엄마를 보여주는 매개이자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음악들도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 대중가요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인 여섯 편의 소설 모두 삶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심수봉, 김연자, 나미, 김완선 등의 대중가요를 녹여내어 소설을 읽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설과 작가의 글이 만나는 지점에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 가사를 실어 엄마 세대의 사랑과 추억,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낸다.



모성과 희생을 강요받는 ‘엄마’에서


고유한 존재인 ‘여성’으로의 탈바꿈



엄마를 재조명하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우리는 곧잘 외면되고 이해받지 못한 채 세상의 절반으로 살아온 여성의 서사에 빛을 밝힌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손 마를 날이 없는, 모성애와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당하는 전형적 엄마의 모습에서 소설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에 강요되는 정상성의 바깥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과 이해를 시도하는 일들의 중심에는 ‘엄마’와 ‘딸’이 있다. 헤어진 지 30여 년 만에 그동안 자신으로서 살아온 모습으로 재회하려는 딸과 엄마, 딸이 여자 친구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놓는 엄마, 그리고 딸에게 강조했던 사랑의 조건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달아버린 엄마까지.


여섯 편의 소설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일반화되어버린 엄마의 삶을 다양한 시공간에서 구체화시키며 그 자체로 생동하게 만든다. 엄마로서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여성들은 이내 ‘누군가의 엄마’였다가 이내 ‘나의 엄마’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나온 엄마의 삶에서 우리 자신을 비추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는다. 저마다의 삶이지만 뚜렷한 교집합이 존재하는 ‘엄마와 딸(아들)’의 관계에서 소설은 평행선을 걷듯 나란히, 그리고 제각각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세상이 말하는 ‘가족’과 ‘엄마’의 기준에는 미달할지라도,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제 삶에 최선을 다한 여성들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엄마’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은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불가능을 인정함으로써 조금씩 가능성을 열어간다. 인물들이 서로 가시를 세우고 진실을 감추는 사이에도 이야기는 모성을 대표해온 ‘엄마’를 고유한 존재의 ‘여성’으로 탈바꿈시킨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제 자신’의 삶을 살기로 선택하면서 말이다. 이로써 같은 길을 걸어온 전우이자 지원군으로서 엄마를 되돌아보는 일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여성 서사의 변화가 되기를 기대한다.



엄마와 딸이라 이름 부르지 않아도,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어 연결되는 여성의 이야기



결혼식 멤버, 結婚式のメンバー … 한정현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소설 보다 : 여름 2021>,<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가 있다.


제43회 오늘의작가상, 제1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한정현 「결혼식 멤버, 結婚式のメンバー」


나나의 메일함에는 언제부턴가 그 사람의 메일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자신을 생물학적 어머니라고 밝힌 이의 메일을 읽으며 나나는 기억조차 없는 엄마의 존재를 떠올려본다. 나나는 그 후로 그의 메일을 계속 확인했지만 답장하지 못하고, 그사이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이대로 함께할 수 없으리라 예감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초대 메일을 받는다.



이 메일을 드디어 쓰기로 결심한 순간들엔 어쩌면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어요. 뭐랄까요. 귀하와 내가 생물학적이 아니더라도, 국적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정한 가족 관계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끝없이 이어지고 반복되는 어떤 틈새에서 연결되고 있다고요. 이 메일은 결국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_「결혼식 멤버, 結婚式のメンバ-」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 조우리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팀플레이>,<퀴어돌로지> …



2011년 제10회 대산대학문학상에 「개 다섯 마리의 밤」이 당선되어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경장편소설 『라스트 러브』,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팀플레이』를 냈으며, 공저로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언니밖에 없네』가 있다.



조우리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여자 친구 상미가 나를 대신해 보호자로 가게 된다. 방콕에 도착한 나는 상미로부터 기타를 치는 엄마의 영상을 받아보고, 엄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는 딸을 대신해 온 상미에게 오래전 12월 31일, 번개버스를 타러 갔던 이야기를 해준다.



엄마의 실패한 번개버스 헌팅 스토리는 나도 몇 번이나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들은 건 그날 돗자리 위에서 합석했던 남자들이 영 별로였다는, 그래서 허무하게 집에 돌아왔다는 결말이었는데 상미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원곡 가수보다도 더 고운 미성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영서와 그런 영서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는 경희.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딱 맞게 밤하늘을 가득 메우며 터지던 폭죽. 그렇게 1년에 딱 하루만 허락된 밤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참이나 서로의 귀에 소곤대던 두 사람…….


_「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긴 하루 … 김이설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장래 희망은 함박눈>,<낯익은 괴물들> …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열세 살」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잃어버린 이름에게』,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있다.



김이설 「긴 하루」


스물아홉 살 딸과 노모를 부양하는 유순은 이삿짐센터와 식당 주방 일을 하며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경제활동이 불안정한 딸의 남자친구가 못 미더운 유순은 둘의 만남을 만류하지만, 딸 혜서는 결국 집을 나간다. 유순은 남편과 이혼하고 힘들게 살아온 자신처럼 딸마저 힘들어질까 걱정하는 한편, 자신에게 시집오라는 장씨의 농담을 흘려듣지 못했던 마음에 씁쓸함을 느낀다.



장씨만 유일하게 유순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식당 일을 마칠 때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장씨가 남편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장씨의 큰아들 결혼식 이후로 유순은 마음을 자꾸 멀리하려 애썼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몸을 섞은 걸로 무슨 큰 인연이나 된 것처럼 여기지 말자. 언제 떠나도 아쉽지 않게, 언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게……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장씨와 함께 있으면 유순은 자꾸 다음을, 내일을, 미래를 희망하게 됐다.


_「긴 하루」



놓친 여자 … 최정나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계속 쓰는 겁니다 계속 사는 겁니다>,<말 좀 끊지 말아줄래?> …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가 있다.



최정나 「놓친 여자」


미연과 상우는 아들 찬성을 첫 데이트 장소에 데려다 주고 몰래 둘의 만남을 지켜본다. 한껏 차려입은 미연과 상우는 공원의 술 취한 노인들을 피해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고, 다른 지점에 가 있는 아들에게 깜짝 선물을 보낸다. 자신들의 첫 데이트를 회상하면서도 대화가 부딪치는 미연과 상우는 찬성을 태우러 주차장으로 향하고, 또다시 노인과 마주친다.



장씨만 유일하게 유순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식당 일을 마칠 때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집까지 데려다주는 장씨가 남편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장씨의 큰아들 결혼식 이후로 유순은 마음을 자꾸 멀리하려 애썼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몸을 섞은 걸로 무슨 큰 인연이나 된 것처럼 여기지 말자. 언제 떠나도 아쉽지 않게, 언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게……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장씨와 함께 있으면 유순은 자꾸 다음을, 내일을, 미래를 희망하게 됐다.


_「긴 하루」



우리 만남은 … 한유주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술과 농담>,<숨> …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달로』 『얼음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연대기』와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를 펴냈으며, 한국일보문학상과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한유주 작가가 펴낸 책들


소설집 『달로』, 문학과지성사, 2006.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2009.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문학과지성사, 2011.


『연대기』, 문학과지성사, 2019.


『숨』


장편 『불가능한 동화』, 문학과지성사, 2013.


단편선 『끓인 콩의 도시에서』, 미메시스, 2018.



한유주 「우리 만남은」


석희는 시애틀에서 서른두 명의 단체관광객이자 누구 엄마, 누구 아버지 들에게 자신을 원석희라고 밝힌다. 처음에는 친절했던 그들이지만 석희가 이름과 직업, 여행의 목적을 밝힌 후로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는다. 딸 상원을 뉴욕에서 만나기 위해 단체여행 코스를 따라 움직이는데, 석희에게 오고 있다는 상원과는 시간도 장소도 자꾸 엇갈리기만 한다.



분홍색 깃발을 어깨에 걸친 가이드가 운전석 옆에 비스듬히 서서 뉴욕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이제부터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가서 푹 쉬실 거라고 말하는 동안 상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금 공항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 버스가 출발했다. 석희는 비틀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갔다. 가이드가 성난 얼굴로 석희를 쏘아보았다. “일정표를 못 찾겠어서 그런데, 식당 주소를 좀 알려주세요.” 가이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병신인가. 석희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석희가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_「우리 만남은」



핑거 세이프티 … 차현지



최근작 : <엄마에 대하여>,<이 사랑은 처음이라서>,<바디픽션> …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차현지 「핑거 세이프티」


열두 살 때의 일을 모두 기억하는 나는 나의 불면을 언제나 그녀의 탓으로 돌린다. 쇼핑몰 매장을 운영하며 바쁘게 돈을 벌던 그녀는 동시에 남편에게 수없이 시달리고 맞서느라 나와 동생을 살뜰히 챙길 여력이 없다. 게다가 서로를 죽일 듯 싸운 뒤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들은 더욱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녀와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두어본 적이 있다. 내가 그녀와 닮은 구석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나는 왜 그녀를 보면 짜증이 날까. 상담을 받기 한참 전부터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이었다. 하나의 어휘로 명명할 수 없는 혼재된 감정의 덩어리를 짜증이라는 부조로 일갈해버린 게 아닐까. 깎여나간 것들, 혹은 오랜 시간을 거쳐 삭은 것들, 그 미세하고 작은 흩날림 속으로 우리가 겪어온 사건의 단초나 명료하지 않은 기억들도 함께 사라진 걸까.


아니다. 나는 열두 살 때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당장 갖다 버리거나 불에 태워도 좋을 일들을, 나는 세공이 잘된 보석처럼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있다. 지금도.


_「핑거 세이프티」



결혼식 멤버, 結婚式のメンバー … 한정현




첫 문을 열어 준 한정현 작가의 <결혼식 멤버>가 여느 이야기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의 메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을 위해 메일 계정을 만든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처음 보낸 메일을 봤던 그날부터 별일이었나... 아니 별일이 아니었나...?


 


자신을 생물학적 어머니라고 밝힌 그녀.


나나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이혼한, 그래서 직업이나 나이는 물론이고 결혼 전 이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엄마'라는 그녀가 써내려간 메일을 읽으면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나나.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는...



그 주말 동안 남자와 종일 집에 있었다. 나나는 남자가 머리를 말리고 난 후 줍지 않은 머리카락을 주웠고 남자가 설거지를 하고 치우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했다. 나나는 끼니마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남자를 위해 쿠쿠 밥솥을 하루 세 번 씻었다. 몇 년째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 나


나에게 몇 년째 고기를 권하는 남자와 집 앞 삼겹살 식당에


갔다. 나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남자에게 권했고 자신


도 좀 먹었다. 나나는 일요일 새벽 혼자가 되어 거실 소파 에 앉으며 그저 주말이 지나갔구나 중얼거렸다. 나나는 남자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다만 나나는 그 주말 화장실을 평소보다 두 배 정도 자주 갔다. 먹지 않은 순간에도 위장은 일을 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의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그저 주말이었다. 싸움도 없는 그 주말이 지나고 나나는 위장 통증을 잊었다. 다만 생각 하나가 통증보다 더 오래 남았는데 경아 씨와 영소 씨를 만났던 그 오키나와에서의 기억이었다. 영소 씨는 그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5·18 때 아버지를 잃고 홀로 영소를 키웠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영소 씨는 하지만 그게 엄마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안다고 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경아 씨가 먼저 반응했는데 영소 씨는 여느 때보다 맑게 웃으며 말했었다. "그해 5월에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엄마 친구 중 한 명도 실종되었거든요. 그 친구가 나를 낳아준 사람이래요. 엄마는 이걸 내가 안다는 사실을 모르지만요.” 그 오키나와 통역 여행의 마지막 날, 사람들과 함께 경자 씨가 한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었다. 실제로 만난 경자 씨에게 나나가 통역을 맡았던 팀의 누군가가 여자 혼자 아이 키우는 게 대단하다, 어쩌다…… 남편을 정말 사랑했나 보다, 어쩌고………를 시작했고 그 말의 끝은 더 가관이었다. “요즘 한국 여자들 좀 배워야 돼, 정절을 지켜야지.” 오키나와 맥주를 한 사발 들이켠 40대 아저씨가 그런 말을 했을 때였다. 한 잔이라도 더 팔면 이익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경자 씨는 그 남자의 술잔을 딱 뺏으며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시작은 그 사람과의 사랑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나, 김경자가 만들었어요. 취하셨으면 그만 가시죠. 그리고 의리는 왜 여자 혼자 지켜요? 그런 건 지키고 싶은 사람이나 지켜요." 그때 나나는 경자 씨에게 경외심마저 느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나는 누가 앞에 있지도 않은데 세차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내가 결혼을? 일단 사랑은 분명히 해, 그냥 시기를 앞당긴 거지! 나나는 그런 혼잣말까지 소리 내어 했다. 그렇게 남자와 나나는 그다음 주말에도 종일 집에 있었다. 남자는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나나에게 등산을 권유했다. 나나는 자신의 아랫배를 지속적으로 찌르는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기분이 되었다. 돌부리를 차며 산을 오르면서 나나는 자신이 이 남자와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알 수 있었다. 나나는 평일에 주로 집에서 논문을 읽고 쓰거나 번역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평일 낮 시간 종일 홀로 있었다. 나


나는 자신이 결혼을 준비하며, 내내 남자와 붙어 있으면서


논문을 한 줄도 읽지 못했고 책 위에는 먼지가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가 되고 싶다. 나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나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남자가 이유를 물었을 때에도 나나는 순순히 그 이유를 답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답답하다고. 나나는 끼니를 갓 지은 밥으로 먹지도 않고 빵이나 김밥, 떡볶이로 먹는 게 무리가 아니라고 말이다. 누군가와 늘 붙어 있는 것으로 다정함을 확인하는 것은 좀 억지인 것 같다고도 했다. 나나의 말에 남자는 마치 공기가 가득 든 풍선에 바람이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피식, 하고 웃더니. “나나 씨.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결혼이잖아요. 당연히 내 절반을 희생 해야죠. 전처럼 내 시간 다 누리겠다는 건 이기적인 거잖아요?” 이렇게 말했다. 나나는 하마터면 그 말에 깊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깊은 마음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치


고 올라왔다. 그러면 너는 내가 너를 위해 날마다 밥을 하


고 집 안을 치우고 살던 곳을 포기하고 움직인 건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건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거야? 나나는 이


말을 끝내 꺼내어 하지 못했다. 남자가 곧장 한마디를 더


얹었기 때문이다. “나나 씨는 그리고 평일에 줄곧 혼자 있


잖아요, 일하는 것도 아니고 책 읽고 번역하는 게 전부인


데 집에서 시간 많지 않아요?” 나나는 잠자코 입술을 말았


다. 남자는 나나가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번역을 하고 집


에서 살림을 하는 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나가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자 남자는 잠시 나나의 기


색을 살피더니, 그렇지만 나나가 원한다면 자신은 결혼 후


에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 보고 카페에 가서 책도 읽어보겠


다고 했다. '다 나나 씨를 생각해서예요.' 남자가 얼마나 이


말을 꺼내고 싶어 하는지 나나는 너무나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생각을 멈췄다. 나나는 남자와 여전히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래, 좋은 사람이구나. 나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웃었다. 그러나 나나는 그 웃음을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나는 최종적으로 그 집에서 나왔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도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역시나 그랬다.



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나쁜 건가? 아니지.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은 '좋은' 사람인가? 그렇게 또 생각했다. 자신에게 묻는 그 물음 앞에서 나나는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어쩌면 좋은 사람의 기준이 '유전자' 일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그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 말고 내가 좋은 사람과 살고 싶다. 그렇게 그냥 나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야겠다.



메일을 보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친엄마라는 건 친한 엄마의 줄임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거요. 그런 의미에서 귀하는 제게 친엄마일 것 같고요.



저는 저 자신과 결혼하기로 했어요. 말로만 한다는 게 아니고 정말, 저와의 결혼식을 하려고 해요. 드레스는 이미 봐둔 숍이 연남동에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의 부탁입니다. 이 부탁을 위해 메일을 썼다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


귀하께서 제 결혼식에 와주세요. 귀하가 '나', 임나나의 결혼식의 멤버가 되어주세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제가 초대한 귀하로서 와주세요. 펑리수만 보내는 것은 사양이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이제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귀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우리는 좋은 '결혼식 멤버'가 되지 않을까요?


 


나 홀로 창가에 기대 앉어 부르는


눈물의 멜로디 가슴을 파고드네


나를 외로움게 하네 지나간 일이라고


잊으려고 웃어봐도 내 맘속에 새로워


지금은 모두가 사라져가는


달빛 파도 같이 푸른빛 속에


내 가슴속 깊이 상처만


남겨놓은 사랑의 그 역사여


- 김치켓


사랑의 역사 중에서



결혼 제도가 주는 강력함


제도에서 벗어날 때 당할 불이익과 위험성은 그 제도에 들어갔을 때보다 크기 때문에


결혼 제도 또한 '이성애' 그리고 '특정 나이대에 인식이 머물러 있기에 이 조건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영원히 사회의 어떤 면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한국 사회는 20~30대의 여성과 남성이 이성애 관계로 만나


자녀를 갖는 형태의 가족을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


나 이 정상 가족은 다른 형태의 모든 가족을 '비정상 가족'으로


만든다. 하지만 생각해봤다. 우리는 정상 가족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전부 불행해질까? 그렇다면 정상 가족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행복할까? 정상 가족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정상 가족이라는 범주가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불행을 촉발시키는 게 아닐까? 퀴어 커플, 재혼 커플, 한부모 가정 등 현실에는 여러 형태의 커플들이 있고 또 이들이 이룬 가정이 있다. 이 중에서 남성과 여성이 만나 이루는 커플만이 환영을 받는다면 오히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형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엄마와 딸에서 나아가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행인의 모습으로 발전해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인정하라고.


뭘 인정해.


잘못 같다며.


말했잖아.


같은 게 아니라 잘못이라고. 엄마가 잘못 살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이게 다 내 잘못이니?


그럼 이 집에서 잘못한 사람이 누구야?


...... 미안하다. 다 제대로 못 키운 내 탓이다.


 


결국 내 모습은...


 


나는 그녀를 쏙 빼닮았다.


 


시대가 흘러도 결국 '엄마'는 '엄마'인가 봅니다.


소설들을 읽고 난 뒤에 가슴이 먹먹한 건...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가장 유약한 모습이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 엄마와 딸, 마침내 함께할 여자들에 대한 소설가 6인의 테마소설. 엄마의 젊은 시절과 현재를 그리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딸, 엄마, 여성을 이이기하는 소설집이다. 자신만의 작품 색깔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김이설, 조우리, 차현지, 최정나, 한유주, 한정현, 6인의 여성 소설가가 ‘엄마’를 중심으로 삶의 빈칸을 채워나가려는 여성들의 단단하고 치열한 여정을 다양한 시공간에서 펼쳐낸다.



1970~1980년대를 청년의 시기로 보내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를 달렸지만 이제는 작은 부속물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엄마 세대를 통과하며, 여러 관계 속에서 가족이라는 프레임 너머의 가능성을 열어본다. 특히 딸과 엄마라는, 여성의 현재와 미래가 될 수 있는 역할 안에서 대부분이 경험하는 모순적 감정과 사건들을 명료하게 포착하여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이 시대의 ‘엄마와 딸’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오해의 간극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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