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고 우는 까닭 - 옛 노래에 어린 사랑 풍경
류수열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타임머신 타보고 싶다는 상상, 한 번쯤은 해본 적 있지?

내가 어렸을 때 <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가 유행했었어. 20여 년 전에 개봉한 작품인데, 지금은 많이 늙어버렸지만 당시는 너무 풋풋했던 마이클 J 폭스라는 배우가 '마티' 역을 맡아 인기몰이에 성공 했더랬지. 극중 마티는 우연한 사고로 타임머신을 타게 되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만난 마티의 부모님은 마냥 철없는 철부지야. 특히나 마티의 어머니가 과거로 돌아간 마티에게 반하는 바람에, 마티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 했지 뭐야.

시간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종종 내 나이를 떠올리면서 깜짝 놀라곤 해. 아무리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다지만,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데 내 부모님은 지금 나이에 ‘부모’라는 이름으로 삶과 자식을 책임지며 살았더란 말이지. 당시 내 부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끔은 역사책에 나오는 시대로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해. ‘광주 대학살’이 일어났던 80년 광주에 내가 있었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편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궁중 무수리나 상궁마마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들은 현재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싶다는 욕망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우리에게는 ‘타임머신’이 없잖아. 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잠수함을 떠올리는 거야. 비틀즈의 노래로 유명한 ‘노란 잠수함’ 같은 것. 나는 거대한 수압을 견디는 잠수함을 타고 거대한 심연을 가로질러. 마치 한 마리 물고기마냥. 동그란 창문을 통해 처음 보는 물고기와 눈을 마주치고, 흔들리는 해초 사이를 유영하는 상상을 하면 잠시나마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시간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에게 잠수함이 있다면 그 잠수함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아주 먼 곳으로 떠나볼 수 있겠지.

류수열 선생님이 쓴 『꽃보고 우는 까닭』에서는 ‘시’가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잠수함이야. 고려가요의 대표작 ‘서경별곡’에는 ‘대동강이 넓은 줄을 몰라서 배를 내어 놓았느냐 사공아 네 아내가 음탕한 줄도 모르고 떠나는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라는 구절이 있잖아. 지금 우리는 고려시대 대동강 이편에 숨어있어. 저편에서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임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한 남자가 보이네. 그런데 그 남자는 임을 향해 화를 내지 않고 애꿎은 사공을 보고 화풀이를 하고 있어. 그 남자에게 왜 사공에게 그러냐고 물어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끓는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고 이해하지 않을까? 지켜보는 나도 괜시리 가슴이 미어져 하늘의 구름을 바라볼 지도 모를 일이야.

이번에는 민요의 한 구절을 살펴볼게. ‘나중에는 오마더니 오만 말도 허사로다 딸각딸각 끄는 소리 우리 님의 짚신 소리 쌀랑쌀랑 부는 바람 우리 임의 한산 바람.’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 옆에 앉아볼 수 있어. 남자/여자 친구가 오기를, 부모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본 경험 있지? 괜히 딴청을 부려보지만 먼 데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귀를 세우게 되잖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타고, 화가 나고, 결국에는 앙금을 남은 체념을 하게 되지. 결국 우리는 민요의 화자가 이런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치 그이 옆에 앉아있는 양 느낄 수 있는 거야.

시간여행을 할 때는 지켜야 할 사항이 두 개가 있어. 하나는 최대한 마음의 창을 활짝 열 것.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을 의심해대서야 어디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또 한 가지는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현재로 돌아와서도 잊지 않을 것. 그래야 여행한 보람이 있지. 이번 겨울 방학에는 ‘시’를 타고 시간여행을 해보지 않을래? 앞에 말한 두 가지만 지킨다면, 그 어떤 해외여행 부럽지 않은 장대한 세계를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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