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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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이런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인 허블 망원경으로 바늘구멍만 한 하늘을 확대해서 보았더니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은하가 찍혔다는 동영상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그저 까만 밤하늘 속에 몇 십억 개의 별들이 모여있는 수만 개의 은하가 존재했다니... 가장 가까이 있는 위성인 달 표면을 보려고 해도 맑은 하늘과 망원경이 따라줘야 하니, 하늘 너머 저 우주는 얼마나 광활할까? 대놓고 보여주지 않기에 더 신비롭고 궁금했던 아득한 우주이기에 더 예술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의 신, 파도의 신 포세이돈을 너무나도 창의적이게 묘사한 웰터 크레인의 <넵튠의 말>


 이 책은 예술을 공부하는 저자가 천문학을 공부하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펴낸 책으로, 어릴 때부터 과학을 너무 좋아했던 나이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예술과 과학의 조합이라니... 굳이 따지면 예술은 인문학이나 철학에 가깝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예술의 시각으로 과학을 들여다보는 것부터가 나의 흥미를 매우 당겼기에 이틀 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기도 하다.


 태양계의 8개의 행성의 이름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주피터, 넵튠, 플루토라고 하면 조금 낯설겠지만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라고 하면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린다. 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파트 1에서는 이처럼 행성에 이름에 따른 신들의 이야기와 이를 담아낸 예술작품을 소개한다. 파트 2에서는 반대로 예술작품에 담긴 천문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인 헤르메스의 이야기는 수성에서 시작한다. 수성은 태양과 가장 가까이서 공전하는 행성으로, 대기가 없어 밤낮의 일교차가 매우 큰 수성의 이름은 "머큐리", 로마 신화로서는 "헤르메스"이다. 작은 체구에 재빠르게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는 수성의 모습에서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지상과 지하의 세계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제우스의 전령을 전달하는 헤르메스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러한 헤르메스의 모습은 다양한 작품에서 경쾌하고 밝은 색채로 묘사된다. 반대로 공전 속도가 매우 느리고, 덩치는 크지만 밀도가 낮아 중력이 낮은 토성은 한때 하늘의 제왕이었지만 노쇠하고 무기력해진 "사투르누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로노스는 예언이 두려워 자식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고야의 그림에 등장한다. 어둡고 징그러운 이 그림에서 겉은 묵직하지만 속은 텅 빈 토성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크게 감명받았던 그림.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이처럼 그리스·로마 신화와 이를 담은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지하에 질척한 메탄 바다가 가득한 해왕성의 이름이 넵튠(포세이돈)이고 왜 태양계에서 가장 큰 목성의 이름이 주피터(제우스)인지, 그리고 목성 주변을 도는 4개의 갈릴레이 위성이 제우스의 연인들의 이름을 딴 것임을 알 수 있다.


 설명과 함께 예술 작품을 들여다보면 대개 어떤 기법이 쓰였는지, 화가의 일생과 연관한 그림의 색채, 그리고 대부분 종교적인 것과 관련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중점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천문학이 담긴 예술 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 조토의 그림 "동방박사의 경배"는 아기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아기 그리스도에게 시선이 빼앗겨 미쳐 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 처음으로 별의 모습이 꼬리가 달린 혜의 모습으로 그려진 부분이다. 조토는 1301년에 나타난 핼리혜성을 보고 그것을 이 그림에 담았으며, 별이라는 것은 단순히 빛나는 점이 아닌 마치 점성술과 같은 모습도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마젤란 은하 위성 사진에서 언뜻 고흐의 그림이 생각난다.


 핼리혜성을 탐사하기 위한 탐사선의 이름이 '조토'라는 점, 바람둥이 주피터를 감시하기 위한 탐사선의 이름이 여신 '주노'의 이름을 땄다는 점 등에서 생각보다 천문학에서 예술과 신화가 많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 많은 화가들의 상상 속 우주의 세계는 고스란히 예술 작품을 통해 드러나 있고, 눈부신 발달을 이룬 현대의 과학으로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는 몇 시였고, 어느 부분이었는지까지 유추해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천문학만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자칫 따분해질 수도 있고, 예술의 이야기만 담겼다면 나처럼 예술이나 신화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금방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림 속 천문학 포스트


https://m.post.naver.com/my/series/detail.nhn?seriesNo=595929&memberNo=144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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