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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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가을비 내리던 스산한 어느 가을날,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첫 머리와 너무나도 닮은 배경에 내가 마치 주인공 진이 되어 데번에 있는 어느 명문 기숙 학교로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자신의 어린 날을 추억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1940년대까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 학교의 상급생들은 징병되고 다소 애매한 입장에 있던 진과 피니어스는 "여름 학기 특별 자살 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든다. 그리고 그 모임을 가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표지에서 보듯 나무에서 용기있게 뛰어내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또래들에게 모든 면에서 우수하게 보이는 피니어스의 모습에 본인도 모르게 시기하는 마음이 든 진은 그를 질투하고, 그와 같이 나무에 올랐다가 고의로 사고를 내어 피니어스를 다치게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피니어스는 자신을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이후, 피니어스가 자신의 사고에 비해 치료를 받고 목발을 짚으며 걸어다니게 되고, 이 사고를 목격하게 된 약삭빠른 사람으로 묘사되는 브링커에 의해 또래 간의 재판을 열게 된다. 뒤늦게 나타난 피니어스의 모습을 보고 진은 놀라지만, 의도치 않은 2번째 사고로 피니어스가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의 두께에 비해 더 진행되어야 할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이 책의 느낌은 우리나라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 '엄석대'를 보는 듯 하면서도 전쟁이라는 것이 아이들(또는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집으로 가는 길>의 주인공이었던 소년병을 보는 듯 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직접적인 전쟁을 묘사하기 보다는 그들의 삶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어 독자들이 마치 현실을 풍자하는 우화를 읽는 느낌까지도 받는 것 같다.

 

"우리는 그들에게 평화의 모습을, 파멸당할 숙명에 매어 있지 않은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p.23)"

"평화는 내게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였고, 나를 둘러싼 세상의 혼란은 내 안에 아무 여파도 미치지 못했다. (p.143)"

 

이러한 구절들을 미루어 이 책이 "단독 강화"라고 하는 군대 용어가 아닌, "분리된 평화"라고 번역된 이유를 미루어볼 수 있었다.

문학적 허용을 구하기 위해 고르게 된 제목이지만, 솔직히 그 생각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독자들에게 단독 강화라는 표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분리된 평화보다는 단독 강화 또는 다른 부드러운 느낌의 제목이 더 적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평을 끝내면서 생각해보건데, 이 책을 읽은 후에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이 독후 활동으로 적합해보인다. 급변하던 우리의 아버지들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곧 이 책을 읽은 한국 독자들이 그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음미하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문장은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것 같다. 또한 미국에서 이 책이 불멸의 고전으로 취급되는 이유 또한.

 

 

"전쟁이란 게 특정한 세대에 의해, 혹은 그들의 특별한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으니까.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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