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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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순간의 꽃>이라는 시집에서 유명해진 시의 한 구절을 담아보았다. 찰나의 시간을 포착하고 담아낸 순간을 ‘꽃’으로 표현했다니,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냈던 시집이었다.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는 고은의 시집보다는 조금 두께가 있었던 책으로, 일본의 대표문학인 하이쿠에 대한 소개와 주석들을 한데 모아놓은 하이쿠 모음집이다.


 

여러 책들을 만났던 올해에는 나만의 책읽기 버릇이 길러진 것 같다. 겉표지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책의 겉표지를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고, 작가 또는 옮긴이의 말이 뒤쪽에 나와 있는 경우에는 가끔은 그것을 먼저 보고 책을 읽는 영악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이쿠라는 것이 5·7·5의 전형적인 일본의 시이며, 또한 세계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로 즐긴다는 것을 몰랐던 나에게는, 이 책의 뒷부분을 먼저 읽어보고 본문을 읽는 것이,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첫 장을 살펴보면, 하이쿠를 읽기 전에 작가가 우리에게 일러두고 싶은 부분을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하이쿠가 한 줄로 끝나는 시라서 이것을 국내에 소개하려는 의도가 퇴색될 수 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그 맛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필히 밝혀두고 싶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쿠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에 작가와 독자 간의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꽃 피기 전에는 기대하는 이도 없는 진달래여라. (하리쓰. p.189)

백 개의 열매 덩굴 한 줄기의 마음으로부터. (지요니, p.239)

한데 모여서 옅은 빛을 내는 제비 꽃. (스이하. p.434)




 

위에 적은 3개의 하이쿠 외에도, 지나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묘사, 풍경에 대한 묘사 등등 참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했다. 별도의 그림과 설명이 없어도 한 줄이라는 경제성 때문이었을까, 읽는 족족 바로바로 연상되는 터라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기뻤다. 만약, 일본어를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의 입장이었더라면, 직접 읽어보고 음수율을 음미하면서 더 재밌게 읽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이것은 류시화 님의 첫 하이쿠 번역 서적이 아니었음에 놀랐다. 첫 서적의 발간을 통해 국내에서 하이쿠의 인기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 감정을 오롯이 전달해주기 위해 직접 이 곳 저 곳을 누볐다는 부분에서는 이 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만큼 제대로 음미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고 밝히는 부분에서는 십분 공감을 했다. 또한, 천천히 마음에 가는 대로 하이쿠를 만나고자 할 때에는 맨 뒷부분의 하이쿠 출전을 통해 나의 감정에 따라 끌리는 시를 골라, 하이쿠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남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하나 있다. 하이쿠를 지은 사람 각각에 따라 목차 분류를 해두면서 그 사람에 대한 소개를 한 쪽 정도 보태놓았다면, 읽으면서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전문가나 전공자의 입장이 아닌 사람이 읽더라도, 류시화 님의 친절한 해설을 따라 읽다보면 한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지가 잘 드러났던 것 같아 좋았다.


시를 한 문장에 담아 표현했던 것이 신선했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 고시조도 이렇게 엮인다면 참 의미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일본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의지가 생겼고, 하이쿠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내게는

이 한 권의 책이

올라갈 때 보지 못했지만, 내려갈 때야 비로소 만나게 된 책이라고 생각된,

그래서

참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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