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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노을이 지고 나자마자 우리에게 찾아오는 푸르스름한 빛깔을 담은 표지에는 어딘가로 향하는 야간 열차에 몸을 싣기 위한 역 풍경이 그려져있다. 나는 밤에 운행하는 열차를 타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 여행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온전히 나 자신을 맡기고 목적지를 향해가는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던가, 아니면 무심코 발길 닿는 데로 가보자는 마음에 기차표를 끊었던 여행이었는가.
6일이라는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던 이 책은 한참 더딘 속도를 자랑하면서도, 내용은 인생 선배가 주는 아낌없는 조언을 오롯이 받아내야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스위스 베른에 사는 그레고리우스의 이야기이다. 고전문헌학자로서의 그는 '문두스(라틴어로 세계, 우주, 하늘을 뜻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학문과 자신의 삶에 대해 완벽함을 추구하며 그 고지에 이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비 내리는 어느 날 자신이 매일 출근길로 지나다니는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읽은 편지 속 자신의 잔상에 남은 전화번호를 적을 데가 없어서 그레고리우스의 이마에 적는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도 모른 채 학교에 출근을 하게 된 그는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리지만, 실제 그녀가 자신이 수업하는 교실에 등장하자 그녀에게 이끌려 자신의 수업도 내팽겨쳐버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교실 밖을 나선다.
평소 자신의 학문인 그리스/라틴어 등등이 있었음에도, 그녀가 단지 '포르투게스'라고 남긴 말을 좇아 들른 헌 책방에서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발견하고 그에게 매료되어 리스본행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으로 떠나게 된 것이었다. 아마데우는 매우 똑똑하고 냉철한 성품을 가진 의사로, 포르투칼의 독재자 살라자르를 환자로 간주하고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인물이며,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을 믿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참여한 저항운동을 하는 인물이다.
그를 그리워 하는 여동생 아드리아나, 헌책방 주인의 소개로 알게된 90세의 헌책방을 운영했던 노인, 그로 인해 알게된 그의 절친 조르지와, 삼각관계를 유지했던 완벽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우체국 직원이었던 에스테파니아 등등 등장하는 인물과 성격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는 반복되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들을 더 세세하게 알아갈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담고 있는 주제는 이 책의 쪽수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인생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언어가 태초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 등등이 그렇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는 책, 나로 하여금 한 주라는 시간에 걸쳐 읽었던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교양서적처럼 읽혀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이 나기는 할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p. 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