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이해
존 버거 지음,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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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론의 고전 중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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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현실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114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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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6년 전 국내에 엘리아데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던 당시에 성균관대출판부 문고본(1985)으로 나왔다가 절판되었던 책인데, 이번에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다시 출간되었다. 당시의 번역자는 지금 이 한길사 번역본의 번역자인 원로 종교학자 이은봉 전-덕성여대 교수. 한길사 시리즈의 또 다른 엘리아데 저서들, <성과 속>과 <종교형태론>의 역자이기도 하다. 

신화와 관련해서, 또 엘리아데와 관련해서 꼭 읽어야 할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지라 재출간 자체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26년의 세월이 지난 후 번역의 품질이 얼마나 업그레이드 되었을지는 책을 직접 살펴보아야 판단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살피질 못했으므로 패스하고, 또 한길그레이트북스의 명성(?)답게 비싸진 책값에 대한 불만도 잠시 접고... 책제목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련다. 

재출간을 하면서 종래의 "신화와 현실"이라는 제목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좀 아쉽다.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좀더 낫게 하자면 "신화와 실재"가 낫다. 불어 원서의 제목은 Aspects dy mythe (신화의 양상들)이고, 영어 번역본 제목이 Myth & Reality 인데, "Reality는 "현실"이나 "실제"보다는 "실재"로 번역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을 좀더 잘 드러내주지 않나 싶다. 신화가 인간 삶의 실재성이나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말하는 게 이 책의 주요 내용이므로... 게다가 "신화와 현실"이라는 단어쌍은 "OOOO, 그 신화와 현실"... 이런 류의 책 제목에서처럼 "신화=허구/기만" vs. "현실=진실/실상"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엘리아데 책 제목을 "신화와 현실"로 번역한 것은 못내 아쉽다. (물론 웬만한 독자라면 혼동할 리야 없을 테니, 큰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신화에 관심 있는 사람, 엘리아데를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독서인 이 책의 재출간 자체가 반가운 건 사실이다. 

아래는 절판된 1985년 문고판 표지. 

미르세아 엘리아드 저, 이은봉 역, <신화와 현실>(수선교양신서 26), 성균관대출판부, 1985, 244쪽, 2,500원 (1994년 2쇄본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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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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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만들어진 신』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리리라는 것은 익히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그의 이름값 덕은 아니다. 그보다는 금세기 전환기에 옴진리교와 9ㆍ11처럼 종교가 얽힌 큰 사건들이 속속 터지면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책이 여럿 나왔고, 『만들어진 신』도 그 중 하나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심지어 과학서와 인문서가 홀대받는 국내에서조차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 그 인기는 사학법 논의, 종교인 과세 논쟁, 이랜드 분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처럼 종교, 특히 개신교가 연루된 일련의 사건이 낳은 효과인 듯하다.

그런데 좀 의아한 구석이 있다. 사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 태반인 책인데 왜 이렇게 인기인 걸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이 방대한 인용과 뛰어난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책의 토대, 즉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는 무신론 명제는 19세기 유럽 사상가들이나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이오니아 학파에게서도 익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포이어바흐, 『종교의 본질에 관하여』).

철학이나 상식을 동원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시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3장의 논의도 다른 이들의 기존 작업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또 황당한 창조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받는 어설픈 지적설계 이론에 대한 4장의 비판 역시 다른 이들이 제기했던 기존 비판과 그리 다르지 않다(호트, 『다윈 안의 신』, 키처, 『과학적 사기』).

더 있다.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학살하는 정복 전쟁과 여성, 성적소수자, 장애인, 타민족, 타종교에 대한 차별로 가득한 성서 내용에 대한 7장과 8장의 비판 역시 기독교 혐오주의자나 혁신적 기독교인 양 진영에서 줄곧 다루어 온 소재다(스퐁, 『성경과 폭력』).

물론 독창적인 부분도 많다. 도킨스 애독자에게는 좀 낡은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자연선택과 밈(유전적 방법이 아닌, 특히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이라는 진화론적 원리로 종교의 출현을 설명하는 시도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5장). 또 도킨스가 책 전반에서 내내 반복하는 말, 즉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정신적 학대라는 경고는 미래 세대에 대한 그의 애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무신론적 반종교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도킨스가 종교를 마냥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수가 적기는 하지만, 어쨌든 깨어있는 종교인들에게는 존중을 표한다. 그가 비난하는 대상은 존중할만한 데가 별로 없는 나머지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다. 도킨스는 그들에게 대결의 도전장을 던진다. 당신들이 종교적이라고? 좋다! 누가 더 종교적인지 견주어보자. 종교가 없으면 도덕이 무너진다고? 좋다! 과연 그런지 따져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또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1장) 그저 교회 같은 데 다닌다고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을 향한 겸손과 진정성을 지닌 삶이 더 종교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종교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도킨스 말고도 많다.
 
또 그는 종교를 빙자해 저질러진 악행들을 나열하면서 종교의 득과 실에 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 결과는 자명하다. 종교는 도덕을 고양하기보다는 훼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도덕이란 인간의 상식과 양심에 뿌리박은 유산일 뿐 종교와는 무관하다고 결론짓는다(6장).
 
독자에 따라서는 도킨스의 도발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자기 종교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예 이 책을 들추어 보지도 않거나, 혹시 읽더라도 애써 흠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종교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더욱이 과학, 철학, 역사, 신학, 종교학을 넘나드는 박식함, 폭넓은 인용, 치밀한 논리, 맛깔스런 문장, 신랄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는 독설은 일단 책을 손에 쥐면 놓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도킨스 혼자의 산물이 아니다. 거기에는 진지하게 종교를 성찰했던 이들, 무신론자이건 종교인이건 인간과 종교의 진정성을 고민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한껏 녹아있다. 그렇기에 달랑 이 책 한 권을 읽고 그 예리한 비판에 박수치며 마냥 우쭐대거나 기가 죽어 마냥 움츠린다면 책을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다.

종교에 염증이 난 독자라면 도킨스가 사려 깊은 종교인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종교적 신념을 지닌 독자라면 도킨스가 제기하는 도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오만과 두려움을 떨치고 도킨스에게 흔쾌히 도발당하는 독자만이 도킨스와 더불어 또는 도킨스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될 것이다.


<(서울대)대학신문>, 07.09.10 에 기고한 본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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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진화한다 - 진화론과 종교, 그리고 사회의 본성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이철우 옮김 / 아카넷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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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04.08.26에 실린 저의 서평입니다.)

과학이 종교를 남김없이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근대과학이 태동한 후 한동안 많은 이들은 그럴 것이라 여겼다. 심지어 그들은 과학이 종교라는 망상을 몰아내길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세기 동안 오히려 이런 기대야말로 망상임이 확인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종교는 인류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건재하다.

하지만 종교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신다윈주의 생물학과 심리학, 그리고 인지과학은 이런 기대를 증폭시켰다. 종교는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유전자의 자연선택에 따른 산물이라거나, 문화적 유전자인 모방자의 산물이라는 등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었다. 지금은 가히 종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백가쟁명 시대다.

여기서 미국 빙햄턴대의 생물학 및 인류학 교수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그만의 독특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해답은 집단선택이다. 집단은 유기체이며, 응집력 강한 집단은 적응력이 뛰어나 생존가능성이 높으며 이로써 스스로 존속해 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윌슨이 자신의 집단선택 이론을 종교라는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한 역작이다. 그는 종교가 헌신, 협력, 자기희생을 통해 집단의 응집력을 높임으로써 집단의 존속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를 입증한다.

첫 번째 사례는 소규모 사회들이다. 그는 인류학을 함께 가르치는 사람답게 다양한 인류학적 연구결과를 끌어온다. 예를 들어 그는 통과의례가 자아내는 집단 응집력을 특징지은 빅터 터너의 코뮤니타스 개념을 토대로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이어서 그는 칼뱅주의를 흥미롭게 분석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이후 칼뱅주의의 성공요인은 예정설이나 근검정신에 있다고 여겨졌지만, 윌슨은 이와 달리 그 요인이 협력과 규율을 강조하는 칼뱅주의의 엄격한 공동체 윤리에 있다고 본다.

또한 윌슨은 역사와 현재 속의 숱한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중에는 미국 한인교회에 대한 분석도 있다. 한인사회에서 교회는 협력을 강화하고 이탈을 방지함으로써 이민공동체를 결속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방대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들로 서술되었기에 책을 읽는 일이 즐겁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종교가 인간 사회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여 왔고, 종교의 그런 힘이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의 본성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보니 윌슨에게 그리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종교와 사회가 유기체이며 종교가 사회를 통합한다는 논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화생물학에 집단선택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사회과학과 결합하는 시도만큼은 독창적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도 종교를 신성불가침의 것으로만 여겨서 믿음 이외의 모든 설명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종교를 한낱 구시대의 유물쯤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바로잡아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원제는 Darwin's Cathedral: Evolution, Religion, and the Nature of Society (2002년).

http://www.donga.com/fbin/output?search=1&n=2004082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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