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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 사이코 북스 04
줄리아 보로사 지음, 홍수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히스테리의 어원은 ‘자궁’이다. 고대인들은 아이 낳기를 열망하는 자궁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때, 온몸을 휘젓고 돌아다니고 이 때 히스테리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근대의학이 등장하면서 히스테리의 원인은 뇌와 신경계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여성적인 것’, ‘여성성’이 문제였다. 이를 테면 남성 히스테리는 동성애자에게서 발견된다. 줄리아 보로사는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 초까지 히스테리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여성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이끌어낸다. 즉, 가부장제 아래에서 목소리가 없는 여성들이 자신을 재현할 수 있는 몸 언어가 히스테리다.(여이연,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하지만 최근의 논의를 수용하면서 저자가 취하는 입장은 어정쩡하다. 인종주의자, 동성애혐오자, 총기난사 범죄자, 축구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 팝 스타에 열광하는 십대…. 관용어구로 사용되는 모든 현상을 히스테리 목록에 집어넣을 때, 히스테리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개인(!!)의 저항과 도전 행위’가 되고 만다.(82면) 히스테리 범주 안에 교차하는 파시스트적인 요소, 부르주아적인 요소, 혁명적인 요소의 모순에 당황한 저자는 '개인의 영역'으로 서툰 박음질을 하였다.

다이어트로 인한 섭식장애나 명예퇴직한 중년 남성의 실어증 같은 사례를 가지고 현재의 히스테리를 구성했다면 일관성과 정치성을 담보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하면 히스테리가 혁명적인 힘으로 전화될까’(예를 들면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들의 집단 히스테리)하는 고민을 보여줬다면 훨씬 깔끔한 마무리가 됐을 것이다.

마지막 장(13장)에 대한 불만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1장에서 12장까지는 히스테리의 역사를 간략히 잘 정리해서 문고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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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인의 현대사상
김우창 지음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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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욕심을 내 본 사람이라면 그 방대함에 기운부터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현상학…. 이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남들은 어느새 저런 걸 다 알았는지. 어렸을 때 책 좀 읽어둘 걸 하는 생각도 들고. 괜히 세련된 교양인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이런 못난 자의식을 단숨에 메워줄 것 같은 책이 시중에 제법 나와 있다. **인의 사상가들, **의 현대사상, 세계를 움직인 *** 사상가, 이런 류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단숨에 커다란 지적 도약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나도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권 구입해보았는데 비싼 돈만 낭비하고 활용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다양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요약하고 저서를 소개하는 형식인데 일단 재미가 없다. 수 십 명의 요약본을 가만히 앉아서 읽고 있기란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게다가 읽는다고 해도 각각의 사상가들이 잘 구분되지도 않고 바로 잊어버리고 만다. 또 좀 안다싶은 사람은 너무 간소해서 얻는 게 없고, 모르는 사람은 읽어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여러 권 사봤자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왕도’를 찾을 목적이었다면 일찌감치 맘을 접는 게 좋다.

그래도 추천하고픈 책이 있는데 그것은 민음사에서 나온 <103인의 현대사상>이다.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또 민음사 30주년 기념 도서로 기획된 만큼 국내에서 내놓으라 하는 학자들이 이 책에 참여하였다. 다른 서적들은 대부분 외국의 필자가 쓴 책을 번역한 것에 불과한데 국내의 학자들이 우리말로 각 사상가의 사상을 직접 소화해서 썼다는 것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번역서가 아닌 국내 필자가 직접 쓴 책으로는 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책동무 논장), 정재왈 기획 <세계 지식인 지도>(산처럼)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성일의 책은 도서신문에 연재된 만큼 도서안내서의 성격이 짙어서 공부하고픈 학생이 참고하는 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세계 지식인 지도>는 현재 살아있는 소로스, 마르코스, 후쿠야마 등을 다루고 있어 최신 경향을 알아두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직접 참고하기엔 활용도가 낮다.

<103인의 현대사상>은 시기상으로는 맑스, 니체, 베버부터 데리다, 백남준까지 다루고 있고 전공자들이 썼기 때문에 위 두 책의 단점을 잘 극복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인 학부생이 가지고 있으면 좋은 책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사상가가 나왔을 경우에 다른 책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고 <103인의 현대사상>만 참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요즘 <철학의 탈주>(새길)를 읽고 있는데 2장은 알튀세르에 관한 것이다. 알튀세르에 일자무식인 나는 『103인의 현대사상』 알튀세르 편을 펼치고 전공자가 꼼꼼하게 쓴 소개를 읽는다. 주요저작과 참고문헌까지 읽으면 ‘내가 알튀세르에 대해 더 살펴보고 싶을 때엔 윤소영의 책을 찾아보면 되겠군’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한번 훑고 난 후, 그때서야 백승욱의 「루이 알튀세르: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를 읽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공부방법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욕심에 앞서서 폼 나는 책을 구입하고 낑낑대면서 읽고서도 ‘문자만 읽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물에 뛰어들기 전에 심장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을 시켜주는 셈이다. 준비운동을 하고난 후 뛰어든 물엔 덜 긴장하게 된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진득하게 파고들고픈 학부생에게 권하는 책. 무리하게 한 번에 보려하지 말고 책장에 꽂아두고 있으면 두고두고 써먹을 일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구입할 때 서지사항을 꼭 확인할 것. 쇄를 거듭해서 낼수록 새로 소개되는 저서나 참고문헌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참고로 2003년 1월에 9쇄를 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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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고병권 지음 / 소명출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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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니체는 자신이 어떻게 이용되기를 원했을까. 『차라투스트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 진정 너희들에게 권하노니 나를 떠나라. …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이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들뢰즈의 지적대로 니체의 텍스트를 분석 수준에서 논하는 것은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니다. 니체를 가지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니체주의자이며, 그런 의미에서 저자 고병권이야말로 ‘니체주의자’이다.

이 책이 기존의 니체 연구서와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니체의 눈썹 하나하나, 수염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에 관심이 없다. 대신에 그는 니체의 어떤 얼굴이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사랑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책이 어설프게 억지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니체가 주목했던 인물들의 사상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힘’ 개념의 토대로서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소개하는 5장,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에서 영원회귀를 이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6장에서 저자가 얼마나 니체를 치열하게 파고든 연구자인지를 알 수 있다.

1부는 니체의 다양한 개념들을 소개하면서 니체가 병까지도 삶의 상승을 위해서 이용하는, 삶을 사랑하는 철학자였음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주워들은 것이 조금 있어서, 내용 자체가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으나 3장에서 관점주의가 절대주의․상대주의와 같이 ‘분류해야 할 또 하나의 항목’이 아니라 생성이라는 ‘태도의 문제’임을 밝혀줘서 모호했던 부분이 분명해졌다.

2부는 니체의 정치철학이 현재에 갖는 의의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2부야말로 저자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다. ‘니체는 파시스트다’를 방어하는 기존의 수세적인 태도가 아닌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니체가 제안하는 ‘더 큰 자아로서 기능하는 신체’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훈육된 근대인에게 해방의 전략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버-근대 허무주의 비판의 딜레마) 정치적인 동물에서 사회적인 동물로 변해버린 인간에게 ‘아곤의 정치’는 정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한다.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 차이의 아상블라주, 그 전망에 대해서 저자는 생태계와 퀼트를 예로 들고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감질맛 나는 답변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주문은 또 다른 니체주의자인 ‘들뢰즈’에게 요청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들뢰즈만큼 니체를 ‘혁명적으로’ 이용한 사람은 없으니까. 실제로 들뢰즈는 “미시정치의 관점에서 사회는 탈주의 선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다이나마이트’인 니체의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문헌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쓴 니체 연구서이다. 니체 정치철학의 급진성을 맛보고 싶다면 1부의 3,4장, 특히 2부를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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