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과 5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란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총 64경기가 펼쳐지는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최소한 3경기는 치르리라는 것이고, 이는 곧 한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적어도 3경기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남아공과 한국 간의 시차로 인해 특히 마지막 조별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일전을 보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새벽 시간대를 뜬눈으로 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4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월드컵에서 자국의 경기를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축복받은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작 그 정도로만 만족한다면 이는 4년간의 기다림 끝에 맞은 월드컵을 여전히 꽤나 소박하게 즐기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 대표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여 경기수가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고, 또 꼭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주목해 볼 만한 경기는 충분하지만, 가령 경기가 없는 날이랄지 혹은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어떨까? 주구장창 재방송을 시청하거나 관련 기사를 찾아 읽거나 혹은 목욕재계를 하고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좀 더 월드컵을 재미있고 풍요롭게 그리고 유익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들도 넘쳐난다. 이른바 '월드컵 특수'를 맞아 축구와 관련된 책과 영화 등이 잇달아 선을 보이고 있거니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월드컵 따위를 즐기지 않는다면 모르되, 이왕지사 월드컵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월드컵과 축구 관련 문화매체를 눈여겨보는 건 그래서 추천할 만한 일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진짜로 11배쯤 월드컵이 즐거워지는 건 실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월드컵과 축구가 이루어 온 방대한 역사적,문화적 깊이에 다가가면 갈수록 월드컵이 좀 더 풍성하게 다가오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다가오는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의 품 안에서 그저 '축구'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이 아닐까.

  

1. 포포투

 월드컵을 맞아 월드컵 가이드북들이 더러 나왔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번 달 포포투 한 권만 있으면 굳이 가이드북들이 없어도 월드컵을 즐기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월드컵이 열리는 달인 만큼 기본적으로 이번호는 월드컵과 관련된 특집 기사들이 다수 눈에 띄는데, 그중에는 대개의 가이드북들이 다룰 법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에 대한 분석이나 한국 대표팀과 상대할 팀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한국 대표팀 자체에 대한 분석 등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고, 또한 월드컵에 출전하는 해외 스타들과의 짤막한 인터뷰나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 몇 명의 인터뷰 등 어지간한 가이드북에서는 보기 힘든 기사도 수록되어 있다.
더욱이 이번 달 포포투는 부록만 해도 두툼하다. 제지값 상승으로 인한 부록 제공 중단을 번복하고 여전히 부록으로 제공된 <챔피언스>는 차치하고라도, 이번호에는 각각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관련된 읽을거리들도 부록으로 제공된다. 물론 이러한 소책자들은 기본적으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광고를 위한 것이겠지만, 월드컵의 역사가 본래 축구와 거대 스포츠 기업과의 공생의 역사인 만큼 이 부록들은 그러한 관계를 증명하는 흥미로운 자료라고 할 만하다.

2. 축구장을 보호하라 

 이 책은 2002년 월드컵과 관련한 책이다. 당장 2010년 월드컵을 코앞에 둔 마당에 또 2002년 월드컵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이 책의 의미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 그런 류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2002년에 우리를 환희로 이끌었던 한국 대표팀의 선전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선'이었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2002년 월드컵은 다분히 제한된 수사에 의한 단선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곤 한다. 투혼을 보인 선수들에 대한 환호, 명민한 전략을 보인 히딩크에 대한 찬사, 열광적이고 동시에 질서 있는 응원을 한 국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등, 이런 기억들이 모두 한국 대표팀의 선전과 결부되면서 2002년 월드컵을 여전히 가슴 떨리는 '영광'의 이미지만으로 한정시키는 셈이다.
그에 반해 이 책은 보다 다채로운 수사로써 2002년 월드컵의 다양한 기억들을 풍부하게 펼쳐 놓는다. 단지 '한국팀이 선전한' 월드컵이 아닌, 이런 저런 에피소드와 이면들로 가득한 문자 그대로의 '월드컵'을 저자는 인문학적 깊이와 예민한 감각으로 접근하고, 이는 곧 월드컵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3. 피파의 은밀한 거래

 가뜩이나 월드컵 단독 중계를 고수하면서 축구팬에게 밉보인 SBS는 최근 '전시권(Public Exhibition Right)'과 관련해 공문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연 시방새'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전시권이란 공공장소에서 월드컵 경기를 상영하면 경기당 적게는 수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1억원에 이르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체. 하지만 시방새도 시방새지만, 사실 '전시권'에 대해서 특히나 찬사(?)를 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FIFA'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뜯어내려는 그들의 상업적 명민함을 보라.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 FIFA가 그렇게도 돈을 벌어서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지구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하기 위해서? 분명 일부분은 그렇게 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돈의 용처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해서, 심지어 지난 2007년 제프 블래터 회장이 어느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봉으로 100만 달러를 받고 있다고 말하기 전까지(물론, 이 발언도 FIFA의 공식적인 발언은 아니다) FIFA 회장의 연봉조차도 베일 속에 가리어져 있었다. 이 책은 그렇듯 거대한 권력 속에서 썪어 있는 'FIFA의 은밀한 치부'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4. 존 듀어든의 거침없는 한국축구 

 한국인 아내를 두고 소주와 삼겹살을 사랑하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존 듀어든은 그의 독특한 포지션만큼이나 독특한 글을 쓰는 이다. 자발적으로 한국과 연을 맺은 만큼 그에게는 한국,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이 넘치지만, 또한 태생적으로 한국과는 멀고도 다른 곳에서 온 만큼 한국축구가 지니는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적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할 줄 안다.
이 책은 그렇듯 내국인의 따뜻함과 외국인의 냉철함을 아울러 지닌 그가 네이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연재의 묶음이라는 책의 속성상 시의성 측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그야말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그의 글들은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봄직한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여느 한국의 축구칼럼과 달리 시원하고 명쾌한 것은 물론, 유머러스한 그의 글은 사뭇 재미있기까지 하다.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 

 세계의 도처에서 무시로 벌어지는 무수한 축구경기 중에서도 유독 아름다운 경기들이 존재한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적대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이 잠깐 휴전을 하고 치렀던 축구경기라거나 혹은 비아프리아 전쟁(나이지리아 내전) 중 3일 간의 휴전을 이끌어 낸, 펠레가 속한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와의 축구경기 같은. 물론, 경기가 끝난 이후 짧은 휴전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 있었던 '아름다운 게임'의 의미마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에서 펼쳐졌던 '아름다운 게임'의 자취를 좇는 이 책이 오늘날 여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절망과 고난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존엄'과 '행복'과 '희망'을 되새기는 데에 기여했던 '축구'의 가치는 수용소가 폐쇄된 후에도 여전히 빛나고, 또한 그곳에서 남아공 축구 리그가 배태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래저래 이 책은 남아공 월드컵과 함께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책으로 보인다.


6. Football 축구
 

 3만원 대의 정가에 200페이지도 안 되는 이 책의 스펙(?)을 보면 일단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이 책의 실물을 확인하고는 조금은 납득을 했다. 이 책의 외관은 기본적으로 축구공을 닮은 둥근 형태를 띠고 있는데, 표지의 재질은 마치 스펀지 마냥 푹신푹신하다. 전체적으로 미니 사이즈의 축구공을 압축한 형태로, 외관만 놓고 보자면 이 책은 진정 축구팬을 위한 '맞춤형' 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에 비해 책의 내용은 기실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축구의 역사와 규칙'을 설명하고 '불멸의 스타'들을 언급하며 '주요 대회'를 소개하는 건 이미 축구팬들이라면 익숙한 내용이다. 관건은 익숙한 내용을 얼마나 참신하고 생생하게 다루느냐 인데, 솔직히 말해서 191페이지로는 너무 턱없이 부족할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축구팬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독특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7. 축구란 무엇인가 

 작년에 <야구란 무엇인가>를 무척 감명 깊게 읽고는 왜 축구에는 그와 같은 책이 없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의 북 섹션을 통해 <축구란 무엇인가>가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야구란 무엇인가>와 <축구란 무엇인가>는 실제로 각기 다른 국적의 원서를 번역한 것이고,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실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란 무엇인가>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란 무엇인가> 또한 수많은 축구관련 서적 중에서도 '탁월한' 책을 출판사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일단 충분히 흥미로워 보인다. 다양하고 독특한 소제목들은 과연 그러한 소재로 축구의 어떤 면을 이야기하려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내용도 적잖이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축구 책들 중 으뜸가는 책이다."라는 어느 방송의 소개 멘트는 믿을 게 못 되지만 "독일의 수많은 축구 도서 중에서도 이 책이 최고로 꼽힌다."는 차범근의 추천사는 한 번 믿어 봐도 좋을 듯하다.

 

8. 월드컵 1930-2010 

 이른바 '월드컵 시즌'을 맞아서 나온 책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단 한 권만 고르라면 바로 이 책, 표지부터 익살스럽고 독특한 캐리커처로 흥미를 끄는 <월드컵 1930-2010>을 선택하겠다.
책장을 넘기면 이내 마주하게 되는 캐리커처의 향연으로 일단 눈이 즐거운 이 책은 내용 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10년 제19회 남아공 월드컵까지, 월드컵의 역사를 모두 아우르면서 각 대회를 빛냈던 선수나 결승전의 골 장면들, 혹은 '지단의 박치기'와 같은 흥미로운 사건들과 특기할 만한 단편적인 사실 등이 헤르만 악셀의 재기 넘치는 일러스트로 '재현'되고, 각 대회의 특징을 포착하는 안목도 인상적이다. 게다가 도판의 시원한 크기는 이 책의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가히 축구팬의 보물이 될 만한 책이며, 굳이 축구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난 월드컵의 역사를 흥미롭게 개관하는 데에 상당히 유용하고 즐거운 책이라고 할 만하다.


9. 맨발의 꿈

 월드컵은 지구촌 축제로 명명되지만, 기실 이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국가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동티모르. 200개국 남짓의 피파 회원국 중에서 현재 200위를 기록 중인 동티모르가 월드컵을 즐기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동티모르에도 '기적'은 일어났다. 2004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 대회인 리베리노컵에서 동티모르의 어린 소년들은 일본을 4-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리고 이 기적의 한가운데에 한국인 김신환 감독이 있었다.
<맨발의 꿈>은 김신환 감독과 동티모르가 함께 엮어낸 기적 같은 실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축구선수로서 불운을 겪었던 김신환이 동티모르에 스포츠 용품점을 열고, 거기서 장사에는 실패한 대신 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게 되고, 함께 '꿈'을 꾸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6월 24일 개봉 예정이며, 최근에 김신환 감독이 직접 쓴 <맨발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된 바 있다.

 



10. 축구의 신 : 마라도나

 축구에 관하여 21세기를 20세기와 비교하여 정의 내리자면, 나는 21세기는 '신들이 사라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21세기에도 여전히 호날두와 메시 같은 경이로운 선수들이 존재하지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20세기 선수들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유일무이한 '축구황제'로 추앙 받는 펠레나, 혹은 '신'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마라도나와 같은 선수들이 21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실제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축구의 신 : 마라도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와 조별 예선에서 만나게 되면서 더욱 많이 들리게 된 이름인 마라도나에 관한 영화다. 아직까지는 과연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마라도나의 '신적인 행적'일지, '인간적인 면모'일지, '악동의 기행'일지, 아니면 이 모든 모습을 망라한 것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신들의 시대'인 20세기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던 한 위대한 축구 선수에 관한 영화는 축구팬들이 놓치기 아까운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11. 피파 피버(FIFA FEVER)
 

 "17번의 월드컵을 종합한 FIFA공식 최초의 영상물"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외관과 구성은 그렇게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FIFA라는 든든한 배경을 소스로 하는 DVD답게 총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피파 피버>는 축구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혹은 흥미를 끌 만한 동영상들이 가득 들어 있다. 예컨대, 각종 '베스트10'이나 '최고의 팀', '최고의 선수'에 관한 영상처럼 익숙하지만 여전히 또 보고 싶은 동영상들이 있는가 하면, '여자축구'와 '악동', '풋살'에 관한 동영상 등 흔히 접하기 어려운 자료들도 있고, 또한 한국팀의 경기('이변의 명승부 :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이탈리아전')나 한국 선수의 활약상('헤딩골 베스트10 : 안정환')처럼 한국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동영상도 FIFA에 의해 선정되어 수록되어 있다.
한국팀의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기에 이 DVD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고, 특히 지난 2006년에 출시된 이후 가격이 착해졌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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