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84)

연휴 기간이어서인지 알라딘에 새로나온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아니, 새로나온 책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도 대개는 휴무일 테니까. 그런 틈을 타서 예술분야의 책들로만 '최근에 나온 책들'을 꼽아보기로 한다. 최근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더러는 몇 달 전에 나온 책도 포함돼 있는 리스트이다.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의 경우가 그러한데, 카파와 건축가 리베스킨드를 꼽은 데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산'이 반영돼 있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의 모차르트와 반 고흐에서부터 '낙천주의 예술가' 리베스킨드에 이르는 여정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갑자기 늘어난 할일들!) 부려보는 '마지막 사치'쯤 되겠다(일상의 시간들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 사실 '휴일의 시간'들은 '예술의 시간'들이지 않은가?).   

 

 

 

 

제일 먼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프로이트 전문 연구자 피터 게이"가 <모차르트>(푸른숲, 2006). 역사학자답게 "기존의 모차르트 전기에 나타난 신화적이고 감상적인 색채를 걷어냈다. 천재 예술가 삶의 주요 국면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그의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모차르트에 대한 낭만적인 추론을 비판한다.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화려한 수식이나 부풀려진 신화 없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한 소개의 글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은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1999)이다. 엘리아스의 유작인 이 책은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근거로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해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저자인 피터 게이에 대해서는 그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2005)을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 관련서로 올해 나온 책으로는 파울 바르츠의 <소설 모차르트>(자음과모음, 2006)가 눈길을 끈다.  

 

 

 

 

두번째 책은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아트북스, 2006). 저자 소개에 따르면 나탈리 에니크는 "사회과학자로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책임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예술가의 화법>, <여성의 지위 - 서구 소설에서 여성의 정체성>, <예술 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 <반 고흐 효과>, <반 고흐의 영광>, <찬미의 인류학에 대해>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성의 상태>(동문선, 1999)로 번역돼 있다. 해서 나는 문학연구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공은 '예술사회학'이라고 해야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공이 무색하지 않은 미모의 학자이다.

예술사회학자답게 저저의 관심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반 고흐 효과'에 두어진다(원제는 '반 고흐의 영광'이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것. 곧, 저자는 "고흐를 실마리 삼아 치밀하게 예술가 숭배의 매커니즘을 밝힌다. 예술은 현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논리의 직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거듭난다. 예술이라는 종교의 첫 번째 성인으로 저자는 고흐를 뽑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이후 고흐 이전과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 틀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 '예술사회학'은 '종교사회학'이기도 하며(에니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구절을 에피그라프로 삼고 있다) 저자는 그 '틀'을 문제삼겠다는 이야기겠다.

뒷표지에 붙어 있는 한 추천사에 따르면, "에니히는 반 고흐를 진화하는 문화현상이자 오늘날의 미술 실천을 강제하는 신화로서 독해한다... <반 고흐 효과>는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에 넘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로 고흐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 고흐 효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사라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소재로 쓴 팩션", <반 고흐 컨스피러시>(마로니에북스, 2006)이다. "사랑, 음모, 배반이 얽힌 긴박한 추격전,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미술품 약탈의 진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빈치의 독자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가난에 쪼들렸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상상력이 무기가 되는 작가들은 형편이 좀 낫지 않나 싶다(거꾸로 자기 얘기만 쓰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빈티'가 나는 걸 감수해야겠지만).  

 

 

 

 

세번째 책은 에곤 쉴레/실레(1890-1918)의 <세상의 하이페리온>(미디어아르떼, 2006). 미술비평가 아투어 뢰슬러가 에곤 쉴레와 나눈 대담집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미디어아르떼)와 나란히 출간됐다. 책을 낸 출판사 '미디어아르떼'의 데뷔작들이기도 한 이 책은 언젠가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볼 만한 도판'에 대한 펴낸이의 욕심이 최초로 얻어낸 성과물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나는 아직 책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 쉴레와 관련하여 내가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프랭크 휘트포드의 <에곤 실레>(시공사, 1999) 정도였다.

<세상의 하이페리온>은 "요절한 천재 미술가 에곤 쉴레와 가족간의 편지, 그리고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대화가 단절되었던 쉴레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 그리고 일상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또 설득했다"고 하고, "편지자료는 쉴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툴른에서 수집한 것들"이라고. 이런 식의 편지들이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그림에는 나의 행복한 상태를 같이 그려놓았어요. 왜냐하면 예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그것들을 일깨우고, 또 풍부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책은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필독서이겠고, 더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독자층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관객들인데, 기억력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서원이 서점에서 훔치려던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화집이 에곤 쉴레의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네번째 책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야기 <로버트 카파>(강, 2006)이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알렉스 커쇼가 재구성했다는데, "피가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후의 이미지들을 건져 올려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원제는 <피와 샴페인>(2002).



저자 커쇼는 "부다페스트의 양복장이집 유대인 청년이 1931년 정치 난민으로 헝가리를 떠나고,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인도차이나 등 전세계를 누비며 '카파이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복잡한 현대사와 극적인 여러 순간들을 영화를 보여주듯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고 하니까 카파의 사진들에 매혹되는 바 없지 않다면 펼쳐들어볼 만한 책이다.

아무래도 그의 사진의 주무대는 전장이었고, '카파이즘(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이란 용어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직분은 '전쟁사진작가'이다. "보도사진계에 신화와도 같은 존재로 남은 전쟁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이다. 이 또한 <로버트 카파>와 나란히 꽂아둘 책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건축 이야기 <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2006)이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건축가 리벤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이라는 좀 장황한 부제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는 듯싶다.

2년에 한번씩 전세비나 걱정하는 처지에 건축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가졌을 리 없는 나는 이전에 리베스킨드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한데, 그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할 만큼. 게다가 국내에선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하니까 우리와 아주 무관하지도 않다.

Daniel Libeskind's original plan

소개에 따르면,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빛, 소리,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한다.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View from south of the Statue of Liberty

아무려나 쌍둥이 무역센터빌딩을 대신하여 들어설 그의 건축물들이 '영적인 울림'을 지닌 건물들,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 곧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살아남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고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상징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 종말의 시대에도 우리를 낙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0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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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달랑베르의 꿈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1784)의 <달랑베르의 꿈>(한길사, 2006)이 출간됐다. 지난주의 일이고, 최근에 나온 책들 '작업실'에 올라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그냥 따로 자리를 만든다. 책의 '명성'만을 알고 있는 탓에 일단은 전문가 서평을 읽어보는 걸로 대신하면서.

 

 

 

 

아직 <달랑베르의 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번역/소개된 디드로의 책들은 <회화론>(영남대출판부, 2004)를 제외하면 다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라모의 조카>(고려대출판부, 2006)가 재출간됐는데, 물론 그것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봐야 몇 권 되지 않는다. <운명론자 자크>(현대소설사, 1992)로 시작해서(밀란 쿤데라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수녀>(장원, 1993)와 <라모의 조카>(세계사, 1998)를 거쳐서 <배우에 관한 역설>(문학과지성사, 2001)을 지나 <부갱빌 여행기 보유>(도서출판 숲, 2003)에 이르는 여정이니까 보유(부록)를 포함한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중 어떤 책은 불어본과 영역본도 갖고 있고, 재작년에 구입한 러시아어본 선집 한권도 소장도서이다. 그 선집은 짝이 맞지 않는 책이지만 디드로의 대표작들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달랑베르의 꿈>을 포함해서.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좀 의아했는데, 서평을 읽어보니까 원래는 3부작으로 구성된 책이고 국역본은 그걸 옮긴 것이다.

교수신문(06. 11. 05)  感性에 대한 철학...꿈같은 서술 매력

중세 신의 품안에서 아직 미지각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주고, 구질서의 편견이나 미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계몽주의의 완결판인 ‘백과사전’의 편찬을 주도적으로 총괄했던 디드로. 기존의 사고체계를 혁신하고 새로운 질서를 기획했던 이 백과사전파 학자는 또 개인적으로 생물과 화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특히 유물론자로서 현상의 총체적 이해, 현상들의 내적 연관성,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우주관을 완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저작물을 생산했는데, 그 가장 중요한 결실이 바로 ‘달랑베르의 꿈’(1769)이다.

이 책은 선적인 명확한 구성을 갖춘 3부작(1부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담, 2부 달랑베르의 꿈, 3부 대담후기)으로 이뤄진, 생명의 기원과 우주 생성론을 다룬 철학 텍스트다. 디드로는 이 텍스트에서 물질의 보편적 속성을 감성으로 보고, 동양학의 氣論이 그런 것처럼, 그 감성의 聚散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면 마치 최한기의 ‘神氣通’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의 분리나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길 거부함으로써 디드로는 관념론적 철학의 논제를 극복하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배제하며, 우주에 대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데 ‘달랑베르의 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당대의 다른 철학 텍스트와 비교해보면, 아주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이함은 대화, 꿈, 은유와 같은 문학적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화라는 문학적 형식은, 디드로가 생산한 작품들의 전매특허이듯이, 이 텍스트 속에서도 철저히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역할을 하고 있다. 텍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모든 대화자들이 하나의 주장을 이뤄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다. 이처럼 대화는, 자칫 단조롭고 따분하며 현학적이 쉬운 철학적 담론에 일상 언어가 갖는 생동감과 현실감과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어, 力說이 逆說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 형식이 된다. 그리고 텍스트 속에 꿈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디드로는 일상적인 담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사실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한 인식과 이성적 분석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꿈’에서 은유는, 다소 역설적이긴 하나, 철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가장 문학적인 형식이 된다. 한 단어나 이미지, 개념의 형태가 원래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마다 유사성에 근거한 은유가 등장한다. 무수히 많은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벌 송이나 인간의 사고 작용과 현의 공명 현상을 비유하는 클라브생, 감각과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거미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것을 물질화하고,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며, 불투명한 것을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처럼 철학적 내용과 문학적 형식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만남의 공간이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이 책의 번역작업은 생명의 기원이나 감각작용, 사고작용 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던 18세기의 사고방식과 표현을 현대적으로 옮겨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텍스트에서 장황하게 우회적으로 설명된 사실들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그래서 그들은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소위 ‘옛날’의 표현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事象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문학적 우회를 통해 표현한 작품의 번역은 특히 용어의 정확성과 표현의 매끄러움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또한 생물학적 유물론을 대화의 틀 속에 담아낸 이 작품의 경우, 개별적인 대화의 분위기와 개념적 이해가 어우러진 특징을 살려내야 하고, 당시 학계와 문단을 풍미하던 이론들과 사교계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디드로 특유의 문체, 즉 확장 지향적이고 즉흥적인, 수다스런 분위기를 살려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컨텍스트의 특징들을 옮긴이가 충분히 살려 내려 노력했지만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현재 출판계의 번역상황을 감안한다면 18세기 작품이 출판됐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소위 장르혼합이 이뤄진 ‘생경하고 어려운’ 작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문재은/  한국외대·불문학) 

06.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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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리차드 세넷과 '현대의 침몰'

결혼식에 갔다가 문학평론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책을 한권 선물받았다. 리차드 세네트의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가 그것인데, 거의 25년전에 나온 책이니 절판된 건 당연하고 헌책방에서나 가끔 눈에 띄는 책이겠다(그런데 내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아 80년대 후반에도 드물었던 책이지 않나 싶다). '헌책다운' 이 책에는 초판을 찍은 날짜만이 박혀 있다.

원서는 1976년에 초판이 나온 듯하고 지난 1992년에 장정을 달리 해서 재출간되었다. 국역본은 그 사이에 나온 것인데, 다소 두툼한 책이지만 재번역돼 나왔으면 싶다. '현대의 침몰'이라고 옮겨졌지만 원제는 '공정 인간의 몰락' 정도가 될 듯하고 원래의 부제는 '현대자본주의의 해부'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사회심리학에 대하여'이다. 1장인 '공적 영역'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데이비드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지 않나 싶다(1950년대에 나온 리즈먼의 책이 훨씬 먼저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리차드 세네트의 책이 더 출간돼 있는데, '세넷'이라고 검색해야 한다. <현대의 침몰> 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그리고 <살과 돌: 서구문명에서 육체와 도시>(문화과학사, 1999)가 있는데, 모두 눈에 익은 책들이고 <살과 돌>은 특히 (제목 때문에) 벼르다가 끝내 구입하지는 못했던 책이다(품절됐군!). 겸사겸사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공적 영역/공간과 관련하여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다. 거기에서 암시받을 수 있지만, '공적 인간'이란 '정치적 인간'이며 '호모 폴리티쿠스'를 뜻한다. 최인훈의 통찰을 빌면, (남한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는 '밀실'만 있고 '광장'은 상실했다는 것. 그것이 세네트의 문제의식이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것 정도로 '공적 인간'의 소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그저 알리바이일 뿐이다. 영어표현을 빌면, 우리의 관심은 '정치(politics)'에서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로 확장돼 나가야 하며 우리의 '행위'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바야흐로 대선과 맞물린 '정치의 계절'을 불과 1년 남겨놓고 있다. 우리가 마저 '침몰'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빨리 챙겨두어야겠다...

06.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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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두 권의 역사서

그리스도와 레닌에 관한 페이퍼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다. 눈 내리는 겨울풍경이나 몇 장 옮겨놓으며 휴식을 취할까 했는데, 손은 어느새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들을 클릭하고 있다(구제불능이다!). 최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옮겨온다.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1936- )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산, 2006)과 앙리 루소(1954- )의 <비시신드롬>(휴머니스트, 2006)이 그것인데, 전혀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권 모두 일단 만만찮은 분량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어찌보면 '태평천국'과 '비시정부'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아들>은 진작에 보관함에 들어가 있는 책이고 <비시신드롬>은 주초에 교보에서 실물을 본 책이지만 생소한 저자인 탓에 어떨까 싶었는데 김기봉 교수의 서평이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경향신문(06. 12. 02) 中태평천국운동 주도했던 그

1836년 청조 말기. 중국 남부 광둥성 화현에 훙훠슈(洪火秀)라는 22세의 청년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갔던 그는 알 수 없는 외국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게 된다. 선교사 량아파가 성서를 번역해 만든 ‘권세양언’(勸世良言)이다. 과거에 낙방한 훙훠슈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세상 요괴들의 사악한 길에서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계몽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완전함’을 뜻하는 취안(全)을 새 이름으로 지어준다.

평범했던 청년 훙훠슈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 완전한 존재인 훙슈취안(洪秀全)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 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한다. 당시 타락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매료되고,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나 군대를 조직하고 근거지를 확산한다. 그리고 1851년 공식적으로 태평천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2천만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초래한 전란인 ‘태평천국운동’의 시작이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중국사의 대표학자로 자리잡은 저자가 태평천국운동과 홍슈취안에 대해 쓴 책이다. 그동안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이 근대화로 들어서는 과정, 혹은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으로써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보다 면밀하게 태평천국운동을 들여다본다. 훙슈취안은 자신의 세력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숙청을 행했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를 자처했지만 그 역시 욕망과 권력에 눈먼 인간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훙슈취안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를 한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의 삶을 통해 태평천국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물론, 개신교가 중국에 유입되는 과정,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그려볼 수 있다.(이윤주기자)

경향신문(06. 12. 02) 佛현대사의 그늘 ‘비시정부’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으로 알려진 비시정부다. 1940년 6월13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 제3공화국 107번째 총리가 된 페탱(Petain) 장군은 22일 휴전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 점령지역과 자유지역으로 나뉘었다. 비시정부란 이 자유지역에 비시를 수도로 하고 페탱을 수반으로 해서 수립된 프랑스 정부를 지칭한다.

당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인들에게는 2개의 정부, 페탱의 비시정부와 드골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세운 임시정부가 있었다. 전자는 나치독일과 협력을 약속했다면, 후자는 프랑스인들에게 나치독일과의 항전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인들에게 전자는 청산돼야 할 과거라면, 후자는 영광스럽게 기억해야 할 역사다.

하지만 비시정부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 정도만 존립했지만, 그 기억은 ‘비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trauma)’로 남아 있다. 비시정부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기억이 역사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신드롬’을 낳았다. ‘신드롬’이란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통성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 곧 증후군을 의미한다. 비시정부는 독일군의 강압으로 세워진 괴뢰정부가 아니라 독일군 점령에 대항해서 싸웠던 전직 각료들로 구성된 정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의 첫 장면처럼 파리가 점령 당하자 거리는 피란민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은 집단탈출을 감행했고,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극도의 공포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 베르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페탱은 한 포스터의 글귀처럼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전을 전제로 한 비시정부를 수립했다.

비시정부는 독일에 대한 협력체제였지만, 무너진 프랑스를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립됐다. 마르크 블로크가 ‘기이한 패배’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패배를 당한 근본 원인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문제에서 비롯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제3공화국의 부패와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좌·우파의 끊임 없는 갈등과 대립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민족혁명’을 꿈꾸는 보수주의자들을 태동시켰다.

죽기 얼마 전 젊었을 때 비시정부에 참여했던 경력이 밝혀져 커다란 충격을 줬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을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프랑스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변명했다. 젊었을 때 열렬한 페탱주의자였다가 레지스탕스 진영으로 돌아선 미테랑이 ‘비시 신드롬’의 전형일 수 있다. 만약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재임 중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면 그것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레지스탕스 미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그의 과거는 억압돼야 했다. 하지만 억압된 과거는 망각되지 않고 트라우마가 된다.



비시 과거를 억압하기 위해 해방된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라는 민족 신화를 만들었다. 그 주역이 드골 대통령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이학수 교수가 번역한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이런 프랑스의 민족 신화가 허구임을 냉철하게 밝혀냈다. 저자는 비시 신드롬이 ‘왜’ 생겨났는가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물음으로써 프랑스 과거청산의 허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드골은 비시 체제의 진실을 은폐하고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 국민을 ‘레지스탕스’로 만드는 ‘기억의 장(場)’을 구축했다.

‘비시 신드롬’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행하는 과거 청산의 무의미함과 위험성을 깨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정치가 역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과거사 정리는 ‘역사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역사화’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관철되는 과거 청산은 다양한 기억들을 억압하고 단순화해서 신화적 역사를 만든다.



앙리 루소는 기억은 복수이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투쟁을 벌이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은 후세대에게 전이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억이란 이미 죽어버린 과거라는 시체를 살아있는 역사로 부활시키는 생명의 숨이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삶은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과거가 돼버린 그들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삶과 연결시켜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다.

우리는 어제의 이성이 오늘의 이성이 아닌 우상이 되기 때문에 오늘의 이성 또한 내일의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공산치하에서 부역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대문자 한국사가 아니라 소문자 한국사들을 쓰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사학)

06 12. 02.

 

 

 

 

P.S. 조넌선 스펜스의 책들은 이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듯한데 <신의 아들>은 재작년에 나온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이산, 2004)에 이어서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러시아사에 관해서도 이만한 '이야기꾼'이 있었으면 좋겠다(내가 과문한가?). 그리고,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관련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아 보인다.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까치, 2002)에 대해서는 얼마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서 독후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해서는 박지현의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책세상, 2004)를 먼저 읽고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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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메리와 앙투아네트(진행중)

두 명의 '퀸'에 대한 평전이 출간됐다.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이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른 한 사람이다. 평전류를 즐기는 독자라면 이 걸출한 여성들과 함께 부듯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겠다. 두 책과 관련한 기사와 관련자료들을 모아보기로 한다.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탁월한 재능을 갖춘 전설적인 미인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진정 불운한 군주였을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지은이 캐럴 쉐퍼가 여왕 메리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들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렸다. 지은이는 여왕 메리의 추종자에 가까운 입장을 견지하며, 그녀를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자료 조사를 통해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여왕 메리를 순교자로 되살리고 있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엘리자베스 1세와 갈등을 빚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일고 있다.

세번 결혼해 남편들을 모두 비운에 죽게 만든 요부, 신구교간의 갈등을 부추겨 결국 자신도 참수된 비극적인 여인, 불운했지만 훌륭한 군주의 자질을 갖췄던 절세 미인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저자는 여왕 메리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여왕 메리를 순교자로 되살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메리는 뛰어난 지도자이자 신앙심 깊은 여인, 시인으로 재탄생한다.

 

 

 

 

 

 

 

 

 

 

 

안토니아 프레이저

역사가이자 소설가이고, 고전기작가로 이다. 현재 극작가인 해롤드 핀터와 결혼하여 런던에서 살고 있다. 1969년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를 발효 한 후에 <크롬웰, 우리의 호민관> <찰스 2세> <나약한 성 : 17세기 영국 여성의 운명> 드의 책을 집필 했으며, 제미마 쇼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련의 미스터리 소설을 써 왔으며, 이 탐정소설은 1983년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다.

 

문화일보(06. 11.24) 그녀는 사치의 화신이었나, 佛 격동의 ‘희생양’ 이었나

젊은 만화마니아뿐 아니라 1970년대 초반 학창시절을 보낸 중장 년층 중에도 마리 앙투아네트왕비, 넓게는 프랑스 혹은 프랑스혁명을 주목하게 된 계기로 일본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지 목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프랑스혁명 직전,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한 오스트리아공주를 둘러싼 격동기의 프랑스를 다룬 이 작 품은 만화영화로도 소개되며 18세기 중후반의 유럽 왕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과 존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다.

앙투아네트는 서른여덟해의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과 비참한 감옥 등 양극을 경험한 인생 역정의 주인공. 1755년 ‘유럽의 열강’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여왕의 열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난 그는 14세때 프랑스 루이16세와 결혼,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1793년 참수됐다. 이같은 연대기 이면에 변혁기 유럽사의 주요 순간을 증언하는 그녀에 대한 세평은 지금도 열성 적인 찬미와 맹렬한 비방이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대중문화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처럼 소개됐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두툼한 전기를 통해 실존했던 역사인물로 생 생하게 되살아난다. 저자는 스코틀랜드 메리여왕, 영국의 헨리 8세와 크롬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 전기 등을 집필한 작가.

보통 책의 2, 3배 분량의 이 책은 앙투아네트와 주변 인물의 초 상화부터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참수 직전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진을 갖추며, 연대기순으로 826쪽에 걸쳐 왕녀의 인생 을 다룬다. 출생 무렵의 유럽 정세부터, 적대국인 오스트리아 출신 아내를 맞은 프랑스 황태자와 프랑스인의 마음가짐, 탐욕스러운 동성애라는 식의 각종 추문이나 참담한 감옥생활을 비롯, “그 오스트리아 여자의 머리를 내놓으라”는 광분한 군중 앞에서 참 수되기까지.

“세상물정 모르는 앙투아네트가 먹을 빵이 없다는 사람에게 케 이크를 먹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지만, 과연 그녀는 사치하고 음란한 성욕의 화신이며 프랑스혁명의 결정적 계기였던 인 물인가.

유럽 각국의 왕실자료보관소 등에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왕녀가 나고 자란 곳을 직접 둘러본 작가는 앙투아네트이야기 중 ‘잔인한 신화와 음란한 왜곡’에 대한 반증을 제시한다. 프랑스속 오 스트리아 여자였던 그녀는 결혼뿐 아니라 죽음까지 국가적 전략 과 이해타산에 좌우된 희생자였다는 것. 당시 유럽왕실의 혼인동맹과 프랑스 왕의 외교적 수완에 따라 비정치적이고 여린 그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타락한 마녀, 기품없는 섹스파티의 상징 처럼 악평을 받아왔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신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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