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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아주 특별한 여행 - 물구나무 그림책 047 ㅣ 파랑새 그림책 47
아구스틴 코모토 지음, 송병선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등장하는 작은 아이, 그 아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 못 다 구경한 세상을 돌아보는 것은 아닐까? 옛 말에도 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있고, 집안 내력이라는 말도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길어보이는 약간 마르고 구부정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에서 악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할아버지가 부자로 사는지 가난하게 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가 신밧드같은 부자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금을 찾아, 자원을 찾아 신대륙을 찾아 바다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꿈을 찾아, 인간을 찾아 여행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쓴 작가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분이라고 하는데 이 책을 보는 순간 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제제의 아빠(바스콘셀로스)는 브라질 분이다. 남미 작가들에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흐른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꿈과 이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체 게바라의 영향일까?
이 책, 그림도 굉장히 좋고, 글도 참 좋고, 느낌도 좋은 책이다. 따스한 손난로를 쥐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의 모습, 착하고 다정할 것 같지만 출세를 위한 야망이나 기름기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감으로는 무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별'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같이 순수한 느낌을 준다. 할아버지의 꿈의 씨앗, 손자 또한 때가 묻지 않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둥근 아이의 모습도, 뱃고래가 큰 아이의 모습도, 왕관처럼 그려진 할아버지의 침대도 인상적이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말랐는데 할아버지의 침대는 작고 동글다. 바다 위를 떠 다니며 새로운 안식처를 찾는 씨앗의 모습도 인상적이고, 나무 위에 얹혀진 작은 집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할아버지가 그 나무같고 아이가 작은 집 같다. 앞 장에서는 메마른 나무였는데 마지막 그림에서 울창한 나무가 된 것을 보니 아이가 할아버지의 씨앗이 되어, 마음 속에 할아버지의 눈을 가지고 할아버지가 못 다 한 여행을 하며 할아버지를 기억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심었으나 싹을 틔우지 않았던 나무도 손자는 그 싹을 보게 될 것 같다.
세상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는 죽어서 지금 심고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겠지만 후손들을 위해 씨앗을 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있다. 지금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잠든 아이가 분명 할아버지의 꿈의 씨앗이 되어 줄거라고 믿는다.
과일,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은 원래 씨방이다. 씨앗을 보호하고 있고, 그 씨앗이 땅에 떨여져 싹을 틔우려고 할 때 영양분이 되는 것이 과육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과육은 먹고 소중한 씨앗은 그냥 버린다. 사실 중요한 것은 씨앗인데 말이다. 예뻐지기 위해서,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서 과일을 많이 먹고 있지만, 정작 하느님이 과일에게 준 사명은 씨앗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들이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이 종족을 보존하듯이 식물들도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꿈을 꾸고, 자기 임무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인간들은 가끔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을 주는 경우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