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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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파리 콕도르 구역에서 1년 반 가량을 살았던 조지오웰이 가난에 대해서 매우 사실적으로 그러나 길지 않게 묘사했다. 가난은 가난자체다. 하루 6프랑으로 살면서 늘상 가던 세탁소를 끊고 담배를 줄이며 빵과 버터만으로 살던 3주간의 생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할 때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는 기분은 이제야 말로 진짜 밑바닥까지 왔다고 깨달았을 때 느끼는 안도감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걱정되지 않으면 손안에 3프랑을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 하지 않을 만큼 무심한 돈이 된다. 100프랑을 가지고 있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바닥을 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올라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가난한자는 더 이상 절망이 없다. 돈이 없어 당장 굶게 되는 것도 가난이지만 가난의 종류는 다양하다. 사업실패로 바닥을 친 자도 가난이며, 사랑에 실패한 자도 가난이며 취업에, 승진에, 공부에 실패한자도 가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가난은 우리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지만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밑바닥까지 왔다는 안도감을 줄 수도 있다. 그 슬픈 안도감을 통해 가난한 자들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조지오웰도 세계적인 작가가 되지 않았는가!)




조지오웰은 가난에 쪼들리면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X호텔에서 접시닦이로 일하게 된다.

그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묘사한 주방의 모습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이 실감난다.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시간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과 서로 소리치며 각자의 파트를 맡으며 일하는 사람들, 더러운 앞치마에 대충 손을 닦고는 실수로 떨어트린 재료들은(음식물들과 쓰레기들이 바닥에 널브러진)대충 털어서 다시 쓰는 모습들.

홀로 나가는 음식들은 광이나는 은 식기에 고급스럽게 담기지만 주방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서는 도저히 수십 프랑씩 돈을 지불하고서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름진 얼굴에 있는 사람들, 하얀 분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여자들은 그 음식들을 소위 우아하게 먹어치운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어서 43도까지 올라가는 후덥지근하고 음식물 냄새가 진동하는 주방에 마치 내가 있는 듯하다. 조지오웰의 사실적인 글들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가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처럼 정신없이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는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 매력적이다.

정작 본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는 무심했으나 주변인물은 파리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생생히 썼다고 본다.(겉모습보다는 그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늘 오웰의 옆에 붙어 다니는 보리스라는 인물이다. 늘 절망에 빠져들지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이나 일자리를 계속해서 잃거나.) 믿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희망에 부푼다.

끊임없는 희망에 (물론 내가 보기엔 희망 같지도 않은 터무니없는 것들이지만) 사로잡히는 그의 성격이 놀라웠으며 훗날 오웰이 다른 작품을 쓸 때 꽤나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보리스뿐만 아니라 나는 그 시대 파리의 뒷모습에 대해서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모습을 알게 되었다. 독자들은 아마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글을 읽지 않을까 싶다.




조지오웰은 접시닦이 일을 하면서 접시닦이들에 대한 생각을 사회적, 정치적 관점에서 언급했다.

접시닦이는 노예들이며(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일은하는) 교육자들은 이들을 위해서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나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접시닦이들이 노예생활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부유층, 교육자들은 위협하게 될 것이므로 묵인한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결국 부유층, 상위층에 있는 자들은 하층에 있는 자들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하는 것은 부유층끼리의 집단만이 계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며 상. 하층의 소리 없는 구분은 결국 계속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웰은 파리에서의 접시닦이 생활을 접고 영국으로 돌아가 부랑시설등을 전전하며 지내게 된다. 영국 런던은 파리보다 음습했고 힘들었다.

어느 날 오웰은 길바닥화가 (실제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보조를 만난다. 그는 부랑자들도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한자든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은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나는 이 안이 자유인이다(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면서)’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조라는 인물은 명쾌했다. 그렇다.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은 부자든 가난한자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은 발전되기를 거부하는 자와 게으른 자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들과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




오웰은 접시닦에들에 대해 사회적 관점에서 다루었듯 걸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말한다.

그는 사회적 지위에 대해 언급했는데, ‘우리가 꼼꼼히 살펴보면 걸인의 생계비와 남부끄럽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계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정도 이상을 사회로부터 뜯어내는 일이 거의 없고, 또 우리의 윤리 개념에 따라서 걸인을 정당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걸인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되풀이하여 갚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걸인에 대해서, 부랑자들에 대해서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억압하고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많은 부랑시설들의 문제점들과 어떻게 변화되어 가야하는지도 꼬집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말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들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 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도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 (중략)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조지오웰이라는 작가만을 보고 선택한 이 자전소설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부랑인들이 대해 생각해봐야하며,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행해야 할지를 고찰하게 해주었다. 좋은 글이었고, 괜찮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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