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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 대표시 100
용혜원 지음 / 책만드는집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 노래가 잘 어울리는 계절
오늘도 만원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정말로 맡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사람들에 힘에 밀려 군중의 하나가 된다.
여기에 있는 모두는 특별하지만, 똑같다.
처음에는 너무나 정신없게 - 혹은 너무나 멍하게 있느라 한 동안 너무나 건조했다.
한 동안 길을 헤매는 것도 부기지수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가방안에 시집이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출근길, 퇴근길에 시집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럴 때면 정말 나 홀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시를 읽고 있는 시간 만큼은 나는 오롯하다.
어떤 시는 어렴풋이 누군가를 불러내고, 이런 시를 쓰는 남자의 마음은 정말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본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집.
모든 게 새로운-
너무 새로워서 '새롭다'는 말이 무뎌진 이 곳에서.
과연 나를 나답게 지키면서- 다시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까?
나도 사랑의 노래를 하고,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사랑노래가 빚어 놓은 말이 무슨 뜻인지, 어떤 멜로디를 씌웠는지 알고 싶은 _
그런 하루의 짧은 출근 길.
용혜원 시인의 시집은 마음을 조였다 놓는 100개의 사랑의 시 이다.
하나 같이 모두 사랑하고, 기다리고, 기대하고, 설레고, 아름답고 그리고 슬프다.
무겁고, 손이 아픈 다른 책보다 작고 가벼우며 따뜻하다.
이렇게 말로 풀어 놓을 수 있는 사랑의 깊이는 어느정도일까,
특별한 양념을 친 히트작도 아닌데, 하나같이 바보같아, 너무 착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
짧지만, 여운의 꼬리는 길다.
하,
사랑 노래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어쩌면 모든 시가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스스로에게 부족 함을 느낄 때 만큼 책을 읽기 좋은 날은 없다.
뒤의 남자가 어깨 너머로 나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시를 한줄한줄 읽어나간다.
어제 무슨일이, 오늘 아침에 대단한 일이 일어난 건 잘 모르겠지만,
내 눈 속에는 싯 구절이 흐르고, 마음속에는 심상이 새겨진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천천히 시를 읽을 수는 없을까?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외로울 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자꾸만 와 닿아
마음이 동하는데
가슴 깊이 울릴 사랑을 하자
훌쩍 떠나가 버린 후에
네 사랑이 너무 강렬해서
고통인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은 지워지고
남은 것은 구슬픈 곡조뿐이다
고통의 시곗바늘이 숨차게
째깍거리며 소리를 질러대도
짓궃은 운명조차 훼빙하지 못하도록
마음 움직이는 대로 가자
칠흑 어둠의 절망 속에
피곤이 끼어들어 핏발 선 눈빛도
머물 곳을 찾았으니
시련의 먹구름을 뚫고 밝아오는
이 화창함이 얼마나 좋으냐
용혜원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