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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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고요하지 않다. 단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나 회화 속에서도 많은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글로 묘사된 바닷가 마을 '더닛'은 생동감 넘치게 소란한 곳이다. 일상이 펼쳐지는 동시에 풍경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남다른 존재감은 조용한데 시끄럽다는 이중적인 감상을 낳는다. 


여름이란 원래 마냥 느긋한 시기가 아니다. 더위로 인해 휴가철로 자리 잡았지만, 누구나 부지런해야 하는 계절이다. 책 속의 사람들도 동식물도 각자의 할 일 때문에 바쁘기 그지없다. 심지어 여름휴가를 온 화자조차도 써야 할 글이 있어 학교 건물로 출근한다. 

물론, 소재의 정체성을 증명하듯 (혹은 휴가를 온 프리랜서 화자의 목적에 맞게) 휴식의 장면들이 자연스러운척하며 계속 등장한다. 틈만 나면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잔치에 참석하느라 바쁜 화자를 보며 학교 임대료가 살짝 아깝다는 불필요한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휴가의 일부답달까. 원래 게으름도 피우고 주머니도 가벼워지는 것이 쉬는 사람의 덕목인 법이다.        


『뾰족한 전나무의 땅』에서 버릴 장면이란 없다. 스위트브라이어, 코스트메리, 발삼과 세이지, 보리지와 민트 등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 잡은 땅 그리고 오래된 부두와 햇살 아래의 배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다. 자잘한 것도 놓치지 않는 집요한 묘사들이 시퀀스를 이루며 역동성을 선사한다. 이토록 '움직이지 않음'과 대척점에 있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지 상태의 반대를 향해 질주하는 글은 드물다. 이 질주는 문자의 음 소거를 해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떤 책보다 유쾌하게 시끌벅적하다.



***출판사 도서 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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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루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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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은 오늘날 아주 익숙하면서도 상상을 더 할 필요가 없는 진부한 공간이기도 하다. 익히 알고 있는,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마천대루』에서 또다시 재현된다. 사람들의 말로 재생되는 이 공간 속의 삶은 숨 막히도록 현실적이다. 누군가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누군가는 평범함의 기준선에 도달하고 누군가는 운 좋게 부를 얻는다. 이 모두의 합을 흔히들 '일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일상의 껍데기는 너무도 얇아 금세 삭아버린다. 


문짝은 비틀어지고, 부식된 벽에서 떨어진 흰 가루가 백일몽 속 눈처럼 흩날렸다.  - 본문 69쪽



허울뿐이라도 일상을 영유할 수 있다면 삶은 계속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고 있어도 합리화가 가능하다. 



『마천대루』 속 인물은 모두가 서로의 관찰자이다. 때문에 부분적으로 모두 목격자이며, 중심인물인 메이바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배턴터치하듯이 메이바오에 대한 증언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 말들로 쌓아올린 인물이 정말 그녀 자신인지 확신할 수 없다. 메이바오는 누구에게도 오롯한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들의 자기 연민과 욕망 속에서 타자화된다. 

마천대루와 메이바오는 닮아있다. 인간 소굴 속에서 자기 욕구는 무시된 채 욕망의 대상으로만 이용된다. 당연하게도 문제는 메이바오가 사람이라는 것에 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 말만 하면서 그녀 혹은 그녀의 행동을 재단한다. 아니면 공감한다고 착각하면서 자신과 그녀를 동일시한다. 


누군가의 삶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자주 무례한 결과를 초래한다. 타인의 역사를 완전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이해라는 개념은 환상에 머물기 일쑤다. 하지만 독자인 우리는 시도해 볼 수 있다. 소설 바깥에서 인물의 내면을 읽고 인물과 공감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가까이. 

그러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 아니겠는가. 



*** 출판사 도서 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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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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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신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그 뿌리는 신화로 불리는 옛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면 인간이 이야기란 개념을 창조한 순간부터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인간은 신을 찾았으며, 그 속에서 신과 관련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생겨났다. 초창기에는 신성한 존재로 인간이 마땅히 우러러봐야 할 무언가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 위로 많은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모순된 설정들의 끝은 인간 그 자체였다. 신성의 껍질을 두른 불완전한 존재는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그 형상 너머로 건너갈 수 없는 한계는 당연했다.


신화 속에서 신들은 전력으로 사랑과 전쟁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 위로 우리의 모습을 다시 덧씌우거나 벗겨낼 수 있다. 하필이면 '신'이란 존재로 포장한 나머지 일종의 나르시시즘처럼도 보이지만, 이 일련의 행위는 일종의 타자화 과정이다. 재밌는 점은 이 모든 게 우연성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의도치 않게' 인간 표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장치로 발전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도달한 신의 이미지는 장르적 이야기와 만나면서 빛을 발한다. 신화의 토대가 판타지이기 때문에 조화롭게 맞물리며 탁월한 성과를 내놓는다. <유산시리즈>가 그중 하나다. 이 소설 속에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신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이 된 신과 신이 된 인간을 관전하면서 '익숙한 낯선 맛'을 즐길 수 있다.


어서 책을 펼쳐라. 미쳐버린 사랑꾼(싸움꾼)의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출판사 도서 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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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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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인 걸 누구나 안다. 이 앎은 본능에 가깝다. 알고 싶지 않아도 타인과 접촉한 순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여느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쉽게 무기로 화한다. 주로 다수자들에 의해서. 정상성의 범위에서 나가보지 않았거나, 나가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실체 없는 총칼로 약자를 억누른다.


이들은 무도하게 소수자의 언어를 강제로 빼앗는다. 의미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꾸어 소수자를 그 언어 안에 가둬두려 한다. 하지만, 이 감옥은 견고하지 않다. 언어라는 개념에 물리적 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애초에 이 개념은 한 집단만의 것이 아니다. 탄생부터 모두의 도구로 발명됐으며 예견됐다. 그러므로 빼앗긴 언어조차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


『복수의 여신』은 이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장이다. 문자를 이용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언어는 사회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들의 힘으로 끝없이 변태하고 변신한다. 보다 자유롭고 편견 없는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해.


재구성된 땅 위를 발 디디는 것은 결국 독자이다. 그 결과가 이전보다 더 나은 도약인지, 이전만큼이나 가망 없는 제자리걸음인지는 당사자인 독자에게 달려있다.




*** 출판사 도서 협찬을 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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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식 - 우리가 지나온 미래
해원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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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뚝딱 본 것 같은 명쾌한 전개. 거침없는 흐름을 가진 무시 못 할 페이지 터너. 익숙한 sf 소재가 익숙한 영화 연출과 만나 대중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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